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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신정국가로 만든 79년 혁명, 그 한계를 짚은 영화

[리뷰] 애드리언 브로디 주연의 영화

  • 입력 2019.07.03 00:33
  • 수정 2019.07.03 00:45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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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당하는 이삭 괴한들에게 납치 당해 몹시 어수선한 도심을 빠져 나가는 중인 이삭

▲ 납치 당하는 이삭괴한들에게 납치 당해 몹시 어수선한 도심을 빠져 나가는 중인 이삭ⓒ (주) 케이알씨지

  
영화 <악의 도시>는 유대인 보석상 이삭(애드리언 브로디)이 그의 가족과 함께 1979년 9월 이란 혁명의 도가니를 헤쳐 나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란 혁명이란 미국에 종속된 팔라비 왕국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발발한 이슬람 혁명이다. 이란은 팔라비 왕정기에 대략 한 세대 동안 서구화·도시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시아파 고위 성직자 출신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을 거친 뒤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고 이슬람 신정국가로 변신했다.
 
호메이니가 만든 종교 민병대인 '혁명수비대'는 1978~1979년 사이 반외세·반서구화를 위해 무수한 납치·고문·살상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극 중 이삭도 혁명수비대에 납치돼 모진 고문을 당하다 극적으로 살아나왔다. 그가 끌려가 고문당한 까닭은 왕실 특혜를 받아 보석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서구화의 첨병 노릇을 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사실 이는 표면적 이유이고 그 이면에는 이삭 재물을 둘러싼 혁명수비대의 탐욕이 작동한다.
 
이삭은 악랄한 고문과 총살 위협 끝에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대부분을 혁명수비대 대장에게 다 넘긴다. 자신의 아름다운 저택마저 포기한 채 국경을 넘어 이란을 목숨 걸고 탈출한다. 이 영화의 핵심 조연은 이삭의 집에서 약 20년 간 일한 가정부 하비베(쇼레 아그다쉬루)와 그의 아들 모르테자(나비드 아카반)다. 이삭의 아내 파네즈(셀마 헤이엑)는 남편이 납치당해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자, 하비베와 함께 그를 찾아 나선다.

사라진 남편 찾으려는 아내, 그리고...  
 

파네즈와 하비베의 대화 장면 납치 당한 이삭을 찾고자 이동 중인 자동차에서 이삭 아내 파네즈와 가정부 하비베가 대화하는 장면

▲ 파네즈와 하비베의 대화 장면납치 당한 이삭을 찾고자 이동 중인 자동차에서 이삭 아내 파네즈와 가정부 하비베가 대화하는 장면ⓒ (주) 케이알씨지

 
극 중 자동차로 이동 중에 파네즈와 하비베가 이란 혁명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특히 인상적이다. 하비베는 자신의 아들(모르테자)도 "혁명수비대에 들어가 활동한다"며 "혁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삭 부부를 나쁘게 여기진 않는다"는 모호한 입장을 피력한다. 모르테자는 이삭네가 지금껏 그들을 억압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비베는 아들 말이 일부 맞는 것 같으면서도,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그는 자신이 이삭 집에서 긴 세월 일했으나 파네즈와 단 한 번도 식탁을 같이 사용한 적 없음을 서운하게 여긴다. 이삭 부부가 친절하게 대해주긴 하였으나 자신을 그저 하인으로 생각할 뿐 친구처럼 대해 주진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 이삭 부부는 길거리에서 꽃을 팔던 모자를 거둬 자신의 집에서 일하게 해줬다. 그들은 이삭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생활이 크게 향상됐다. 그런데 혁명이 발발하자 하비베 모자는 지난날 처지를 까맣게 잊고 이삭 부부에 대한 적대감과 서운함을 말한다. 이는 해방 직후 북한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북한은 소련을 등에 업고 유산자들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는 등 공산화 과정을 거쳤다. 오랫동안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들이 새 세상을 만나 그 주인을 멸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평소 머슴들을 잘 보살핀 사람들이야 별 탈이 없었겠지만, 학대하던 자들은 제 머슴들 손에 처단되는 일도 적지 않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래서 대개 혁명은 비정하고 잔혹한 법이라고 하는 걸까. 이 영화는 부유층에 대한 빈자들의 모든 적개심이 과연 반드시 정당하고 옳기만 한 건지 묻게 한다.

평화와 멀어 보이는 이란 사회의 풍경
 

모르테자와 이삭 가정부 하비베 아들 모르테자와 이삭. 이삭이 감옥에서 빠져 나와 모르테자와 다투는 장면.

▲ 모르테자와 이삭가정부 하비베 아들 모르테자와 이삭. 이삭이 감옥에서 빠져 나와 모르테자와 다투는 장면.ⓒ (주) 케이알씨지

  
이삭은 합법적으로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된 사람처럼 나온다. 하지만 가정부 하비베 아들의 시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이삭이 꼼꼼 숨겨둔 한 서류를 찾아냈다. 팔라비 왕가가 이삭의 보석을 크게 칭찬한 내용의 편지였다. 이 편지가 외부에 알려진 뒤 이삭네 보석상에는 귀부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고, 이삭은 부자가 됐다는 게 가정부 아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이삭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삭은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해 그들 덕에 보석상으로 크게 성공했다. 유대인의 뛰어난 상술이겠으나 이슬람 혁명 주도 세력이 볼 때 이삭은 서구의 스파이로서 서구의 귀금속으로 팔라비 왕가를 꾀어 갑부가 된 불의한 자였다.
 
이란 혁명이 성공했는지는 아직 평가가 엇갈린다. 호메이니는 팔라비 왕정을 무너뜨린 뒤 성직자들이 통치하는 신정국가인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고 왕정 당시 부패와 학정을 저지른 자들을 응징하였다. 하지만 이슬람 생활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보수 반동의 혁명이 지속되는 동안 숱한 무고한 자들이 죽거나 다치기도 하였다. 사회 분위기가 각종 종교적 규제로 크게 경직됐고 여성들의 인권이 크게 후퇴하였다.
 
이란 사회는 지금도 혼란스럽다. 미국과의 오랜 갈등으로 최근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란 혁명은 당초 민중이 기대했던 삶의 질 개선에 그다지 기여하지도 못했다.

이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면서도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 빈곤 문제가 혁명 전에 비해 더욱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경제 제재와 압박 영향이 크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혁명 이후 '민주 공화국'이 아닌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해 종교 근본주의가 판치는 신정국가로 나아간 탓도 분명 톡톡히 한몫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란 혁명의 거센 모래 폭풍 속을 헤쳐 나오는 이삭 가정을 통해 그 혁명의 한계와 문제점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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