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만난 '명상'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주기와 리듬이 있다. 내 삶은 명상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명상을 만난 이후의 삶으로 확연하게 나뉜다.
명상을 만나기 이전 내가 약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주부였다면 명상을 만난 이후의 삶은 비록 겉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 스스로는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만 약 10여 년 동안 약국을 운영했다. 그 당시 내게 약국은 거의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지금은 의약분업이 되어서 근무시간이 짧아졌지만 그때는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약국 문을 닫았다. 토요일도, 공휴일도 장시간 근무는 내게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러나 장시간 근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약을 파는’ 일이었다. 약사가 약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약이라는 ‘상품’을 팔아야만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이 당시 사회 초년생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얼마 전 우연히 외국의 정원 전문잡지를 본 적이 있다. 화려하고 컬러플한 꽃들과 세련된 정원 소품들에 매료되어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글귀가 눈에 확 들어 왔다.
‘Garden is the best pharmacy(정원은 최고의 약국이다)’
영어로 쓰인 글귀였는데도 마치 우주가 나에게 내려 준 메시지처럼 의식에 강렬하게 꽂혔다.
‘아, 먼 길을 돌아와 어쩌면 정원에서 진정한 약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 없듯이 어쩌면 내가 약사였던 것도 다 의미가 있는지도 몰라.’
긴 시간이 흘러 이제 약사라는 직업을 바라보면 다른 직업과 별 다를 바 없이 이런저런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직업으로만 보인다. 생각해보면 약사라는 직업이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어떤 직업이든지 그 세계를 감옥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유난히 고집 세고 강한 에고의 소유자인 내가 성격만큼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으니 주변의 세상과 얼마나 많이 부딪혔겠는가. 세상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감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통 때문에 명상을 만났고, 그 명상의 길에서 지금의 정원을 만났다.
일상의 모든 것은 내게 '수행'
정원과 도시의 아파트를 오가는 두 일상이 세상의 고정관념의 눈으로 보면 그저 여유로운 유한마담의 놀이 같은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온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두 개의 일상을 수행하듯 살아간다. 예술가에게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의 재료가 되듯 내게는 일상의 모든 것이 수행이다.
언제부터인가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두 개의 다른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이 두 번째 두 개의 삶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절묘하게 굴러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 이 두 개의 삶도 서서히 통합되어 갈 것이다. 난 무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목표로 달려가기보다는 현재를 누리면서 상황이 펼쳐지는 대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