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여순항쟁, 소설가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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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여순항쟁, 소설가가 나섰다
  • 전시은
  • 승인 2019.07.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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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제 작가 ‘여수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무엇인가’
높은 교육열이 자연스럽게 항쟁의 토대 마련,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항쟁 주체로 나서
한국 최초의 해병대 창설은 여순항쟁이 원인
양영제 "여순사건의 역사적 의의 깨닫고 민주시민으로 자라길 바라"

 

여천고등학교 소강당에서 열린 양영제 소설가 강의

소설가 양영제가 여순사건을 '동포는 못 죽이되 대신 친일 경찰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항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10일 오후 3시 여천고등학교 초청 ‘작가와의 만남’ 에서  ‘여수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

“지금은 여수 하면 사람들은 여수밤바다, 버스커버스커를 떠올리지만 제가 어릴적 여수는 여순반란이 일어난 곳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양 작가는 자신의 세대에 대해 “당시 전국의 고등학생들은 교련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군사교육을 받는 ‘학도호국단’ 이 있었다"며,  여수의 학생들은 당시 '여순항쟁'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자세한 정보를 듣지 못했고, '반란'이라며 쉬쉬했었다고 회고하며 '여순항쟁'을 풀어나갔다.

항쟁이 일어나기 전 여수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 서울서 공부하다 방학에 내려온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은 여수경찰서 근처 청년회관에 야간학교를 만들어 여성을 교육시켰다. 이렇게 시민 전체의 의식이 높아지니 자연스럽게 항쟁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게 양 작가의 설명이다.

 “여순항쟁과 제주4.3은 친일파의 행위에 분노를 느낀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친일경찰이 총을 겨누자 분노한 도민들이 대항했고 이로 인해 제주도민 3만명이 죽었다. 이승만은 도민들의 거센 저항에 결국 여수14연대(대부분 광주 여수 사람들)에게 제주도 출동을 명령했다.

그러나 14연대가 ‘우리는 동포는 못 죽인다, 차라리 친일 경찰을 죽이겠다’며 불복하고 1948년 10월 19일 여수경찰서를 습격해서 친일경찰을 사살했다. 다음날인 20일, 지금의 진남관 건너편 파리바게트 자리에서 열린 인민대회에서 여수 시민들은 소련과 미국 모두 한국에서 물러갈 것을 주문하며 미군이 공출해간 쌀이 있는 창고를 열어 국민들에게 나눠줬다. 이게 바로 여순항쟁의 시작이다“

여순항쟁에 참가한 여수중학교 학생들
양영제 작가가 여순항쟁이 일어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여순항쟁의 포문은 14연대가 열었지만 적극적 항쟁의 주체로 나선 사람들은 여수시민들이었다. 특히 여수중학교 학생들은 14연대 군인들이 고작 며칠 만에 지리산과 순천으로 도망간 뒤에도 총을 들고 현재 해양공원 쪽으로 들어오려는 진압군들을 저지했다.

결국 육지에 상륙하지 못한 진압군들이 해병대를 창설하여 시내 진입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한국 최초의 해병대가 창설됐다.

양 작가는 “여순항쟁은 매우 평화롭게 진행됐다. 시민들은 주민센터를 침략하여 공무원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진압하러 와서 박격포를 쏴서 여수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여수 시내 길이 좋은 이유도 당시 완전히 불타버려 모두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했다.

여수시민들을 학살이 일어난 서초등학교 뒤편 창고

이후 여수 서초등학교 뒤편에 시민들을 불러세우고 부역자라 해서 사람들을 죽였다. 당시 여수 인구 8만명 중 이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시민이 1만 명에 달했다.

양 작가는 여순사건 이후 이승만 대통령 당선과 4.19 혁명, 박정희 집권, 전두환 대통령과 5.18민주화 운동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학생들의 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양 작가는 나치의 감옥을 설계한 헤르만 괴링의 말을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침략을 당한 국가의 국민이 취할 수 있는 태도에는 콜라보, 레지스탕스, 메스 이 3가지 유형의 태도가 있다. 콜라보는 협력자, 레지스탕스는 독립군, 메스는 일반 대중을 뜻한다. 즉 대중을 콜라보에 얼마나 빨리 흡수시키느냐가 그나라를 식민지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러면 여천고 학생들은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

마지막으로 양 작가는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 “어떤 사건을 이해하고 공감한 뒤에는 반드시 실천을 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 시간 강의로 여순사건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거기서 배운 깨달음을 실천하여 민주시민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치고 사회를 본 여천고 1학년 배현호 학생은 “여천고 학생들 대부분이 여수역 책을 읽었다. 여순사건은 역사책에서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갈 뿐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작가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순사건을 자세히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강의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한 학생이 강의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강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양영제 작가에게 질문하고 있다

함께 사회를 본 주민성 학생은 “강의를 계기로 여수역 책도 읽고 작가님과 소통한 체험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번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한 이현종 교사는 "여수에 살면서 여수의 역사를 아는  것,  그리고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며, 살아있는 배움의 길이라고 생각되어 역사적 현실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작가 양영제 님을 초청하였다"며 "다수의 학생들이 강의를 진지하고 의미있게 받아들여 많은 배움이 있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여천고등학교는 양영제 소설가 초청에 이어 앞으로 꾸준히 ‘작가와의 만남’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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