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들은 왜 무덤 앞에 이 돌을 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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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들은 왜 무덤 앞에 이 돌을 세웠을까
  • 오문수
  • 승인 2019.07.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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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에서 몽골 강톨가 박사를 만나다
6개월 동안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몽골과 한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있는 강톨가(J. Gantulga)박사가 사슴돌 사진이 있는 책을 들고 있다. 그는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몽골 사슴돌 연구의 대표학자이다 ⓒ 오문수

'사슴돌'은 돌 표면에 주로 사슴을 표현하기 때문에 고고학계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사슴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슴돌은 선사시대 청동기 및 초기 철기시대 유목민들의 역사·예술·문화·신앙 그리고 사회조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기념물이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실험결과로 밝혀진 사슴돌의 역사는 히르기수르와 유사한 기원전 14~8세기로 후기 청동기시대이다. 대부분의 사슴돌은 히르기수르 앞에 세워져 있다. 히르기수르는 몽골 초원에 있는 돌무덤을 말한다

지난 6월 2일부터 7월 1일까지 한달간 몽골(약 8000km)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슴돌로 가장 유명한 사슴돌 중 하나이다 ⓒ 오문수
칭기스칸의 고향 마을 인근에 세워진 사슴돌 모습 ⓒ 오문수

사슴돌은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현재 몽골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우랄산맥에서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넓은 고원에 약 1500여개의 사슴돌이 있다.
 
사슴돌 분포의 중심이자 출발점은 몽골이다. 등록된 사슴돌 중 80% 이상이 현재 몽골에 있다. 몽골 국경 넘어 부리야트공화국 지역인 남 바이칼에 20개, 사얀 알타이 산악지역에 약 80개, 카자흐스탄에 약 20개, 러시아 오렌부르크 지역, 우크라이나까지 총 20여개, 중국 신장 알타이에서 텐산산맥까지 약 100여개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부리야트족들이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슴돌은 사람을 대신한 석상
 
국립제주대학교에서 열린 전국해양문화학자대회(7.4~7.7)에는 몽골에서 온 강톨가(J. Gantulga) 박사가 참석해 '몽골의 사슴돌에 대하여'란 주제발표를 했다.
 
6개월 동안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몽골과 한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있는 그는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몽골 사슴돌 연구의 대표학자이다.
 
작년에 이어 올 6월 한 달 동안 몽골 동부 초이발산에서 서쪽 끝 타왕복드까지 8000㎞를 돌아보던 중 여러 개의 사슴돌과 수많은 적석총 및 선돌을 보았던 필자는 J. 강톨가 박사의 주제 발표내용이 흥미로워 참석했다. 하지만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며칠전(7.23)에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찾아가 궁금한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강톨가 박사의 얘기다.
   

고조선 유적답사단 일행과 함께 국립부여박물관을 방문해(7.23) 강톨가 박사와 함께 기념촬영했다. 필자가 몽골 사슴돌에 관해 공부하며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고 2018년 6월 일행과 함께 몽골을 방문한 후 출판했던 책 <솔롱고스가 이어준 몽골>을 선물로 줬다. ⓒ 오문수

"기존의 몽골 연구자들은 사슴돌 윗부분의 문양이자 표현물인 둥근 링 모양을 해와 달, 그 아래 여러개의 작은 파임은 별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해석을 거부하고 사람 머리 부위의 장식을 묘사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파임은 목걸이를 의미합니다."

사슴돌은 청동기시대 유목민 사회의 특정 집단인 부족, 민족의 우두머리나 귀족들을 위해 세운 석상이 분명하며, 그 위에 새겨진 문양, 제단의식에 유목민의 세계관과 샤머니즘의 관점이 깊게 배어있다.

강톨가 박사는 사슴돌 윗부분에 사람머리를 묘사한, 혹은 묘사하기 위해 특별히 조각해 준비한 사슴돌이 10개 이상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사슴돌에 묘사된 얼굴 형태는 작은 눈, 볼록 튀어나온 뺨, 넓은 이마, 즉 몽골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가 사슴돌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대부분의 사슴돌은 바위에 사슴을 새겼지만 이 바위에는 말을 새겼다. 안내문에는 말을 새긴 경우는 아주 희귀하지만 사슴돌로 간주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 오문수
형태가 온존하게 보존된 사슴돌 모습으로 여러가지 동물형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 오문수

"사슴돌은 일반적으로 상, 중, 하의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맨 윗부분은 사람이나 사람 얼굴 또는 하늘과 우주가, 중앙부위는 동물들이, 맨 아래 허리띠 아래로는 무기 및 기타 도구가 있습니다."

 


영원불멸을 꿈꿨던 옛 선인들이 만든 사슴돌

당시를 살았던 유목민들은 왜 무덤 앞에 왜 사슴돌을 세웠을까? 인류는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창안했다. 글자가 없던 당시는 그림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청동기시대를 살았던 카라수크인들은 사슴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동반자로 간주했다. 고대 북방민족의 사슴 관련 신앙과 습속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 황금뿔 전설이다. 전설 내용 중 하나는 태양이 사슴뿔에 얹혀 하늘을 지나다녔다는 전설이다. 강톨가 박사는 사슴돌 유형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했다.

사슴돌의 4가지 유형. ⓒ 강톨가

▶양식화된 사슴이 표현된 사슴돌 – 이흐타미르, 아르항가이
▶동물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사슴돌 – 쉬네 이데르, 홉스골
▶동물문양이 없는 사슴돌 – 운두르 울란, 아르항가이
▶혼합된 표현물들이 새겨진 사슴돌 – 이흐타미르, 아르항가이


사슴돌은 죽은 자를 위해 사람을 상징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하며, 제작하기 전 미리 4면을 조각한 석판 위에 사람 얼굴, 장식품 등을 표현했다. 석상 맨 윗부분이 주로 경사진 모양으로 제작되며 동쪽을 향한 좁은 면을 정면으로 삼고, 윗부분에 사람 얼굴을 상징하는 3열의 선, 양쪽 넓은 면 윗부분에는 원형 귀걸이 문양, 아래쪽으로는 원형 및 타원형 구슬 모양의 작은 문양이 전체를 감싼다.

일반적으로 북방 몽골인들이 한민족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나면 몽골 사슴돌을 만나 옛 선인들의 숨결을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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