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책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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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책 두 권
  • 환희
  • 승인 2019.08.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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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정원' 연재 (4)
수요일마다 서울을 오가며 명상 강의 들어..
온전히 수행에만 몰입하던 '초발심'의 시기
[편집자 소개글]

여수시 돌산읍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적어 나간 작가 최미숙(55, 필명 '환희')씨는 여수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 전북 익산에서 10년 정도 약사로 일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접고 고향 여수에서 15년간 가꾼 정원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작가는 “정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적었고, 또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여수 시내에서 거주하며 돌산읍 봉수마을로 출퇴근 하듯 10년 넘게 3천평의 정원을 가꾼 이야기를 연재한다.
 

 

'운명의 책' 저자 강의 들으러 서울 오가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명상과 수행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어디서 명상을 시작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운명의 책 두 권을 만났다. 비교적 젊은 중문과 교수가 쓴 책이었다. 한 권은 오랜 단식 끝에 얻은 깨달음의 개인 체험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한 권은 명상 입문서였다. 내 앞에 드디어 ‘스승’이 나타난 것 같았다.

그때까지 나는 주로 불교 계통이나 인도 성자들의 책을 접했을 뿐 국내 현직 교수의 책은 처음이었다. 50여 일간의 극단적인 단식 끝에 깨달음을 얻은 저자가 선포한 수행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 흥분되는 것은 그가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명상 강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깨달은 분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니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을까. 주저 없이 강의를 신청했다.

당시 나는 익산에서 약국을 하고 있었는데 매주 수요일이면 관리약사에게 약국을 맡기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때만 해도 명상을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이 많아, 남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명상 공부를 하러 다닌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교수님의 강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 깨달음에 대한 명쾌한 해석들로 가득 찬 명강의였다. 강의를 듣고 온 수요일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 다시 태어난 듯 환희로 가득 찼다. 다른 배움도 마찬가지겠지만 명상 공부에서는 특히 스승이 중요하다. 자칫 잘못 공부했다간 삶이 더 왜곡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욕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종교와 수행은 욕망을 죄의 근원으로 여겨 금욕적인 성향을 장려한다. 그러나 내가 강의를 듣는 교수님은 욕망을 긍정적인 수행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삶의 원동력은 바로 우리의 욕망이고, 개인의 목표도 내면에 있는 욕망을 활짝 꽃피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수행의 궁극적 목표도 깨달음이 아니라, 내면의 욕망을 삶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거품욕망’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하지만 욕망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자연과 조화 이루는 욕망 추구

문제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욕망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게 되어 있다. 이 조화에서 벗어나면 자연히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얼핏 보면, 이러한 욕망을 긍정하고 추구하는 삶과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명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수행 초기 시절, 오히려 이전보다 욕망을 더 당당하게 드러내고 충족하기를 열망했다. 마치 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퇴행적이고 돌출적인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가 잦았다.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 할까. 삶의 비약을 위한 영적 여정에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강의를 접하고 나의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수행의 길에서 헤매지 않고 직진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들을 교수님으로부터 배웠다. 무엇보다 수행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총론적인 관점’을 충분히 공부한 것이 이후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총론적인 관점은 이후 여러 수행단체를 전전하면서 경험한 영적 체험들을 스스로 객관화하여 이해하고 분석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강의가 끝나고 뒤풀이까지 참석하고 나면 어느새 새벽이었다. 운전을 못하던 나를 위해 남편은 항상 익산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는 그야말로 수행에 완전히 몰입하던, 불교용어로 말하자면 ‘초발심’의 시기였던 것 같다.

정원을 가꾸면서 이름도 ‘해다운’으로 바꿨다. 스스로가 부여한 최초의 이름이다. ‘물다운’이 개인 수행이 강조되는 시절의 이름이었다면 ‘해다운’은 그 수행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밝고 따뜻한 이름이다.

정원을 가꾸면서 내 스승은 ‘자연’이 되었고 이제 그 첫 스승은 마지막 스승이 되었다. 매일 매일 자연 속에서 말없는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것, 나아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사라지는 것, 이것이 내 수행의 최종 목표이자 궁극적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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