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만 작가 그림과 함께한 '여순항쟁' 뮤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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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만 작가 그림과 함께한 '여순항쟁' 뮤직토크
  • 전시은
  • 승인 2019.10.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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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노마드 박금만 초대전 '되찾은 기억'
주철희 역사학자가 작품 설명하며 전시 관람객들의 깊이 있는 감상 도와
화해와 상생 이전에 진실규명이 먼저 되어야
당시의 잊혀진 노래 공연 겸한 역사 토크 진행
사회를 맡은 김유화 방송인(오른쪽)과 주철희 박사

여순항쟁 71주년 특별기획전 ‘박금만 초대전-되찾은 기억’ 전시장 갤러리노마드에서 19일 오후 3시 뮤직토크가 열렸다.

뮤직토크는 해상화 밴드의 '여수야화', '여수블루스' 공연을 시작으로 주 박사와 방송인 김유화씨의 토크가 이어졌다. 
마무리는 상록부 밴드의 '부용산' , '꽃물의 든다', '여수는 항쟁이다' 로 마무리 되었다.

주철희 박사는 "여순은 '사건'이 아니고 '항쟁'이다"고 주장했다.

"여순항쟁은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국가의 기저에는 민중적 저항정신이 항상 사회 전반에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권력의 속성상 지배 권력자는 부패에 가장 근접해 있으며 권력의 남용인 '폭력'을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민중의 저항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행하는 당연한 권리이다.  여순항쟁은 당연한 것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났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뮤직토크에 앞서 전시장을 돌며  전시된 작품 앞에서 주철희 역사학자가 작품 배경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

박금만 작가 '오동도'를 설명하는 주철희 역사학자

작품 ‘오동도’는 여순항쟁 과정에서 가장 많은 학살이 벌어지기도 한 오동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손목이 묶인 채 걸어가다 뒤돌아보는 그림은 작가 자신을 모델로 했다.

당시 여수역이 있던 이곳에는 큰 창고가 많았다. 이 창고에 사람들을 모아두고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당시 여수여중 교장인 송욱은 반란의 주동자로 몰려 체포됐다. 그러나 민간인이 반란을 주도했다는 점에의문을 품은 부산신문 기자가 송욱을 찾아 나서 관련 기사를 세 차례 연재했다. 결국 기자는 송욱을 만나 그가 아무 잘못 없이, 단지 사람들의 신망이 두텁다는 이유로 주도자로 몰렸음을 알게 됐다.

기사 말미에 그는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밥 한끼라도 먹고 가게 해주는 것 뿐이었다”고 쓴다. 송욱은 오동도에서 체포된 후 대전에서 군인 집단처형장소에서 처형당한다.

유독 섬에서 학살이 많은 이유는 “육지에 비해 바다에 수장시키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형태를 남기지 않으려 하기 위함”이라고 주 박사는 설명했다.

붉은 보자기로 아이를 업고 있는 여인은 박 작가의 할머니를 모델로 하여 그려졌다. 그리고 여인의 손을 잡는 아이는 박 작가의 아버지다. 이 그림 역시 무참한 학살이 자행된 순천 주암 감천교를 배경으로 했다. 1949년 4월 황영환(일명 황몽둥이) 지서 주임이 주도하여 주민을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애기섬' 작품 앞에서 설명하는 주철희 박사

작품 ‘애기섬’에는 나무를 하던 아이가 바다 건너 남해 애기섬(소치도)를 향해 누군가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애기섬은 1950년 한국전쟁 시기 보도연맹자들이 끌려가 수장된 장소다. 이곳의 해류가 일본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순항쟁과 제주4.3, 한국전쟁 당시 총살된 조선사람들이 대마도와 나가사키 지역에서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여수에서 보도연맹 학살지는 애기섬 외 오천동의 백도 등에서도 시신들이 수장됐다.

갤러리노마드에는 부산에서 온 김도영(45) 씨도 있었다. 과거 주철희 박사의 저서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를 읽고 여순항쟁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김 씨는 뮤직토크를 계기로 역사적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여순민중항쟁이 제대로 규명된다면 이 일은 한국 근현대사가 제대로 자리잡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며 “지금껏 왜곡된 사실이 진실로 알려져왔고, 이는 진실을 감춰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여수 뿐만 아니라 부산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부마항쟁도 올해서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심지어 부산 시민들도 부마항쟁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제 과거의 정치적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를 바라보고 더 이상 억울하게 숨죽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전민경 작가가 팸플릿을 보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민경 회화작가도 이날 관객으로 참여했다. 
그는 “그동안 책으로만 알아온 진실을 그림으로 확인하니 더욱 와 닿았다”며 “여순항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하며 인간이란, 또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 작가는 “앞으로 여순항쟁을 더 깊이 공부하고 가슴으로 느껴 이를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주철희 박사는 토크를 통해 '빨갱이'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에 대해 중요한 얘기를 들려줬다

“‘빨갱이’라는 단어에는 죽여도 되는 사람, 죽여야 하는 사람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들은 국민이면서도 스스로가 국민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빨갱이'는 여순사건이 불러온 비극을 정확히 설명한 단어다.

주 박사는 마지막으로 “화해와 상생 이전에 역사적 정의를 바로세워야 한다. 그려면 치유와 상생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고 말했다.

15년 전 한 어르신의 말 한마디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박 작가는 작품을 그리면서 “무엇보다 작품 대상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여순항쟁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그 사건을 너무 이야기하고 다니지 말라’는 경고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작은 모두 그 결과물이다.

이날 뮤직토크를 공동주최한 여수넷통 엄길수 이사장은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시민들은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해아 한다”고 말했다.

토크 중간에 작가 박금만(가운데)이 출연해 자신의 작품 제작 과정과 그간 '길거리 전시회'를 했어야 했던 사정을 풀어 놨다.
토크 중간에 작가 박금만(가운데)이 출연해 자신의 작품 제작 과정과 그간 '길거리 전시회'를 했어야 했던 사정을 풀어 놨다.
해상화밴드 공연 모습
해상화밴드 공연 모습
뮤직토크 관객 모습
뮤직토크 관객 모습
작품 설명하는 주철희 박사
작품 설명하는 주철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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