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가장 높은 산은 타왕복드(Tavan Bogd)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1,820㎞ 떨어진 산으로 높이가 4,374m에 달해 만년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이다.
명칭이 타왕복드인 것은 몽골어 타왕이 '5'를 의미하고 '복드'가 산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왕복드에는 한여름에도 만년설에 둘러싸인 5개의 봉우리가 있다.
북위 49° 08.38', 동위 87° 49.31'에 위치한 '후이텐'(Khuiten 4374m)산 아래로 '버게드'(Burged 4068m), '말친'(Malchin 4037m), '울기'(Ulgi 3986m), '나란복드'(Naran Bogd 3884m)의 다섯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
타왕복드를 향해 떠나기 전 울란바토르에 사는 한국인 몇 분을 만나 "타왕복드에 갈 예정이다"고 했더니 "정말이냐?"며 "그곳은 몽골인들이 평생 한 번 정도 가보고 싶어하는 로망의 산이다"라며 부러워했다.
타왕복드는 중신세기 초기와 고생대에 형성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몽골 서쪽 도시 올랑곰에서 여수로 시집온 채랭한드가 말하길 "고향인 올랑곰을 떠나 울란바토르를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3일 동안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올랑곰에서 타왕복드의 기반 도시이자 서쪽 끝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바얀올기(Bayan-Ulgi)를 가려면 며칠을 더 달려야 하니 몽골이 얼마나 큰 땅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타왕복드에는 514㎢에 250여 개의 크고 작은 빙하가 있다. 알타이 산맥 26개 빙하군 중에는 '포타닌'(Potanin), '알렉산더'(Aleksander) 등과 같은 빙하가 있고 포타닌 빙하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빙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포타닌 빙하는 1876년부터 1899년까지 여러 번에 걸쳐 몽골에 있는 산과 땅을 조사한 러시아 지질학자 포타닌에서 유래했다.
몽골인들이 평생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 타왕복드
몽골 최고의 축제는 나담축제다. 지난 7월 11일 여수 이순신공원에서는 나담축제가 열렸다. 축제 장소에는 여수 인근에 사는 몽골 출신 이주민 여성 가족과 노동자 120여 명이 모여 몽골씨름과 게임 등을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 달간의 몽골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라 "타왕복드에 올라가 본 사람 있어요?"라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와! 거기를 올라갔다고요?"하고 말하며 모두 놀랐다. 한편으로 "거기 올라가는 건 몽골인들의 꿈이에요"라고 말해 몽골인들도 가기 어려운 산이라는 걸 알았다.
몽골 유목민들이 사는 겔을 제외하고 소도시 모습은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양철지붕과 시멘트로 지은 단층집 모습. 먼지로 뿌옇게 절은 집을 보면 몽골 바람이 얼마나 센 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일행이 탄 차가 바얀올기에 가까워지자 주변의 건물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뾰쪽한 첨탑 위에 반달 모습이 보여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걸 느끼게 했다. 주민들의 생김새도 한국인과 구분이 안 되는 동부 몽골 지역 사람과 약간 다르다. 키도 크고 유럽인 얼굴 생김새다.
주민도 영어를 잘한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중국 서쪽 지방을 여행했을 때 본 위구르족과 닮았다. 바얀올기에서 타왕복드까지는 180㎞ 거리다. 도로 사정이 좋은 한국이라면 자동차로 한나절도 안 되는 거리다.
바얀올기에서 타왕복드까지 가는 여정은 식량이나 식수를 살 가게가 없는 산길이다. 외국인인 필자 일행은 타왕복드에 오르기 위해 입산허가서를 받은 후 며칠 동안 먹을 식량과 연료를 구입해 차에 싣고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GPS에 의존해 초원 위에 난 자동차 바퀴 자국을 따라가다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인근에 사는 유목민을 찾아가 물어봐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몽골인 운전수 저리거가 몽골 인사말인 "샌베노!"라고 인사하고 나면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전통 카자크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들이기 때문이다.
도중에서 1박을 하고 해발 2,711m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입산허가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말을 기르고 있던 안내인이 일행에게 등산방법을 설명해줬다.
"타왕복드산과 포타닌 빙하를 조망할 수 있는 곳(3122m)까지 걸어가면 왕복 6시간정도 걸립니다. 배낭을 메고 걷든지 아니면 5시간 정도 말을 타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장거리 여행에 지치고 고산병이 우려가 된 일행은 말을 타기로 했다. 인도여행 중 잠깐 낙타를 타본 적은 있지만 말은 처음이라 긴장됐다. "잘 훈련된 말이고 가이드가 앞장설 것이니 걱정말라"라고 했다.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고 말고삐를 좌우로 당기며 방향 전환을 하니 의외로 괜찮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개울도 앞서가던 선두 말이 가는 대로 잘 따라 간다. 문제는 급경사 지대를 건너갈 때였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엉덩이와 양발에 힘을 잔뜩 주니 엉덩이가 까졌는지 쓰라리다.
까짓것 이렇게 멋진 곳에 올라왔으니 아픈 엉덩이쯤은 별것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걸 알았다. 말이 방귀를 그렇게 잘 뀌는지를. 급경사 오를 때는 더 힘든가 보다. 뿡!뿡!뿡! 하! 녀석들! 그래도 어쩌랴. 모든 동물이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내는 소리인걸.
타왕복드 정상이 보이는 곳, 포타닌 빙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다다르니 눈앞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산들이 보인다. 아! 이 장면을 보려고 울란바토르에서 10여 일을 달려왔던가? 감개무량하다.
눈앞에 산정상과 또 다른 정상 사이를 흐르는 빙하가 보인다. 보잘 것 없을 것같은 눈들이 모여 커다란 바위와 자갈들을 실어날랐다. 대자연의 장엄함을 보여주려는 듯 맨 아래쪽에는 빙하에 쓸려온 자갈과 토사가 쌓여 있었다.
아르헨티나 모레노 빙하는 인간과 너무 가까이 있어 감흥이 얼른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타왕복드 빙하는 스위스 알레치 빙하와 같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음 강이다. 욕심 같으면, 시간만 있으면 빙하 위를 걷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숙박 장비도 없이 해가 지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타왕복드의 여름철 평균온도는 18~23도이고 겨울철에는 영하 32~37도까지 내려간다. 연평균 강수량은 400~500mm이다. 따라서 타왕복드를 등산하려면 여름철에 등산해야 한다. 내려오는 길가에 보이는 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수정처럼 맑다. 빙하의 토양 때문이란다. 자료에 의하면 요즈음 포타닌 빙하 수량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줄었다고 한다.
베이스캠프에서 또 다시 1박을 하고 '올기'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비록 엉덩이는 까져 쓰라리지만 몽골인들도 로망처럼 여기는 타왕복드에 올랐다는 자부심과 함께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