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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깨달음은 없다

'춤추는 정원' 연재 (7)
삶의 문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단 한 번의 완벽한 깨달음은 없다
깨달음 체험 이후 ‘제3의식’ 활성화

  • 입력 2019.11.15 11:28
  • 수정 2020.04.25 17:16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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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여름까지 정원의 식물은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한다. 아침 꽃봉오리가 오후에 활짝 피는 것은 다반사요, 오전에 피었던 꽃이 오후에는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면 식물이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 특히 칡넝쿨은 마치 ‘반半 동물’처럼 움직이면서 빠른 속도로 주변의 식물을 타고 다닌다.

몇 년 전 여름, 여행을 가기 위해 열흘 정도 정원을 비운 적이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잔디도 짧게 깎아 놓고, 정원 여기저기를 며칠에 걸쳐 정리해놓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정원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야생화 되어가고 있었다. 칡넝쿨은 정원 한가운데까지 뻗쳐 있었고, 잔디밭에는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왔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아서인지 평소 보기 힘든 뱀도 두세 마리 돌아다니고, 곳곳에 벌집도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렇게 정원은 조금만 방심해도 언제든 야생으로 돌아가려 한다.

 

깨달음과 일상

수행에서의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큰 깨달음을 얻어도 ‘실천’이 받쳐주지 않으면 본능의 힘에 지배당하고 만다. 일상의 힘은 야생의 힘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따라서 모든 삶의 문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단 한 번의 완벽한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 역시 로또에 당첨되듯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내 삶의 문제를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은 없었다. 그것은 ‘관념적 완결성’을 찾는 에고의 장난일 뿐이었다.

강원도에서 깨달음을 체험한 이후 한동안 특이한 의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서너 달 동안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흘러나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에서 비롯된 눈물이었다. 길을 가다 어린아이의 활짝 핀 미소를 봐도 울고, 아파트 화단에 핀 작은 잡초 꽃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버스를 타고 명상교실을 다닐 때도 창 밖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어쩌면 이 생이 내겐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울었던 적도 있었다.

얼마 후 약국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약국이었지만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깨달음의 체험 후 약국은 도저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고, 더 이상 어떤 흥미도 미련도 없었다. 남편이 아직 졸업도 안 하고 돈도 벌지 않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제 내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내면의 메시지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깨달음의 체험 이후 내 의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제3의식’의 활성화였다. 제3의식은 내가 이름붙인 것으로 정교한 개념은 아니지만 명상을 지속적으로 하면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또 하나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데 이 의식을 편의상 제3의식이라 부른다.

내 생각에 제3의식은 인간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제3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의 세계는 물질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구조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내 앞에 펼쳐지는 세계가 ‘의식의 산물’이라는 느낌이 실감나는 것이다.

깨달음 이전에는 제3의식이 흐릿했다면 깨달음 이후에는 제3의식이 항상 나와 같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의 환영적 요소의 본질이 항상 느껴지기 때문에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항상 자신을 보채던 자잘한 욕망,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 한마디로 삶을 힘들게 하는 많은 문제로부터 해방되었다.

또한 깨달음의 체험은 의식이 어떻게 현실을 창조하고, 그 현실이 어떻게 의식을 지배하는지에 대한 ‘직관적 앎’을 활성화시켰다. 깨달음의 초기, 의식이 맑고 투명했을 때 무서울 정도로 나의 간단한 의도만으로도 현실이 ‘창조’되었다. 그게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생각이 곧바로 현실화되었다.

깨달음의 체험 이후부터 정원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 시기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변성’의 시기였다. 아무런 직업도 없이 남편도 나도 돈을 벌지 않았지만 별 걱정 없이 평화로웠다. 콩나물을 다듬고, 멸치를 다듬으면서도 행복했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못하는 일이 부엌일이었으니까.

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만 같아 부담스러웠던 아이와도 이 시기 참 많이 놀았다. 시간만 나면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집 근처 도서관에도 자주 가고,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깨달음은 내게 무슨 거창한 삶의 의미와 계획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더 잘 느끼게 해줬고,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과 인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해주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내면의 충족감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이 체험으로 나는 어떤 조직이나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따라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다.

물론 이 깨달음이 수행의 마지막 목표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에고의 허구성을 절감한다 하더라도 하루아 침에 에고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완벽한 깨달음은 없다.’

스승의 가르침을 나는 온몸으로 절절히 깨달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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