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5천년 전 기록을.... 몽골에서 탁본 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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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5천년 전 기록을.... 몽골에서 탁본 뜨기
  • 오문수
  • 승인 2019.11.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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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기] 옛 선인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지난한 작업
타미르강 유역 언덕에 있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모습. 중앙아시아와 몽골에 2기 밖에 없는 귀한 사슴돌이다. 인근에 적힌 안내문에는 '말이 그려져 있지만 사슴돌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었다. ⓒ 오문수

몽골의 매력은 무엇일까? 광활한 초원? 독특한 거주형태 게르? 초원 위에서 평화롭게 풀뜯는 동물들? 아니면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새로운 언덕이 생기는 고비사막?

글을 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에 든 예 말고 나도 모르게 몽골에 빠진 이유가 몇 개 있었다. 한없이 푸른 하늘, 금방이라도 머리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 나담축제 기간에 뿌연 먼지를 내며 초원을 달리는 승마경주, 독특한 모자를 쓰고 힘자랑하는 씨름경기 등등.

하지만 필자가 몽골에 사로잡힌 특별한 것이 있었다. 이른바 사슴돌과 암각화다. 사슴돌은 돌 표면에 주로 사슴을 표현하기 때문에 고고학 연구조사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사슴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슴돌은 선사시대 청동기 및 초기 철기시대 유목민들의 역사•예술•문화•신앙 그리고 사회조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기념물이다.

몽골 국립박물관 앞 정원에 세워진 사슴돌 탁본과 사슴돌을 설명한 안내문. 옆에는 커다란 사슴돌이 세워져 있고 사슴돌 탁본을 설명한 안내문도 있었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탁본 사진만 확대했다 ⓒ 오문수

사슴돌은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현재 몽골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의 우랄산맥에서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넓은 고원에 1500여 개가 있지만 등록된 사슴돌 중 80%이상인 1241개가 몽골에 있다.

알타이는 고대 유목 문명의 요람이자 북방 유목민족의 주요 발상지였다. 동서교류의 구심점이자 동서문화가 모여드는 신장 알타이에는 문화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동시에 알타이 문화 공통요소가 존재한다. 그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가 '사슴 숭배'다.

사슴돌에 새겨진 사슴 도안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거대한 사슴의 사슴뿔과 새처럼 가늘고 긴 주둥이다. 사슴돌은 토템 기둥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슴돌이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슴은 알타이어족 샤먼의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다. 특히 시베리아 샤먼의 복장은 사슴, 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슴돌의 사슴은 하늘(신)과 땅(인간)을 잇는 메신저 기능을 하는 존재이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에서 선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가버린 뒤 나무꾼이 사슴의 도움으로 하늘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바로 사슴돌의 사슴이 지닌 상징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옛 선인들의 생활상과 염원을 담은 암각화

글자가 없던 옛 선인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을 바위에 그림으로 그렸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랜 세월을 이겨내며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볼 수 있는 그림. 이른바 암각화다.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문자로 기록하듯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들을 바위에 그렸다.

몽골 서쪽 알타이산지 바위에는 암각화가 널려있었다. 사슴들 모습이 보인다 ⓒ 오문수

고대인의 삶에서 종교는 현대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했던 만큼 암각화는 고대인의 종교적 심성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몽골 서쪽끝 알타이산지에는 암각화가 널려 있다. 일반적으로 암각화가 있는 지역에는 제의를 행할 수 있는 넓은 터가 있다.


탁본... 옛 선인들이 남긴 흔적을 좀 더 정확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

필자가 올 6월 탁본 도구를 들고 몽골을 방문한 것은 탁본이 준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고조선유적답사회 안동립 대표의 권유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의 사슴돌 탁본현장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최성미원장이 탁본 작업을 할 당시 거대한 적석총 앞에 세워진 1.5m 높이 돌에는 1~2㎝ 깊이로 파인 여러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몽골을 몇 번 답사했던 분들 입에서 "사슴돌입니다"라는 설명이 나왔다. 돌에는 여러 개의 점이 연결되어 있고 동물문양도 보였지만 어렴풋해서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최성미원장이 탁본 장비를 꺼내 돌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후 물을 뿌리고 나서 창호지를 바르기 시작했다. 이어 구둣솔로 창호지를 두드린 후 물기 빠진 종이를 먹물 묻힌 좁쌀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리자 여러 문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성미원장이 사슴돌을 탁본한 원본 4면을 연결했다 ⓒ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회 안동립대표가 최성미원장의 탁본자료를 특수기법으로 현상한 그림들로 의미있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 오문수

그곳에는 말 , 멧돼지, 칼, 도끼 등의 모습이 나타났다. 와! 4천~5천년 전 옛 선인들이 남겨놓은 기록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탁본을 본 필자는 최성미 원장님께 탁본을 배우기로 했다. 지난 6월 한 달간 몽골 동서 횡단 계획을 세운 필자 일행은 최성미 원장으로부터 3번에 걸쳐 탁본 개인지도를 받았다.


새똥이 잔뜩 묻었던 사슴돌이 탁본을 뜨자 모습을 드러내

고조선 유적답사단원들과 칭기스칸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을 돌아보고 난 후 사슴돌 탁본을 시작한 곳은 '빈더르' 서쪽 50㎞에 펼쳐진 대평원이었다. 이 근방 어딘가에서 사슴돌을 본 적이 있다는 몽골 운전사 저리거가 선두에 서고 나머지는 뒤따랐지만 사슴돌이 보이지 않는다.

두 시간여가 흘렀을 때 망원경으로 초원을 살피던 저리거가 "저기 사슴돌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지적한 곳을 찾아가자 적석총 앞에 2기의 사슴돌이 서 있었다. 사슴돌 두 개를 탁본하고 싶었지만 문양이 떨어져나간 한 개는 탁본 작업이 수월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초원 한 가운데 서있는 사슴돌을 발견한 고조선유적답사회원들이 사슴돌 옆에서 기념촬영했다. 발견당시 돌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만 새똥이 묻어있어 무슨 그림인지 판독이 안됐었다. ⓒ 오문수
탁본작업을 하자 사슴돌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선명히 드러났다. 왜 탁본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오문수

필자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탁본 도구를 들고 사슴돌에 다가가자 새똥이 잔뜩 묻어 있어 윤곽은 대충 보이지만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둣솔로 먼지를 털고 물을 뿌린 후 사슴돌 위에 입힌 창호지를 먹물묻은 좁쌀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리자 문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옆에서 탁본 작업을 살피던 몽골운전사 후르떼가 "저런 문양이 그려진 돌을 사슴돌이라고 해요"라며 수첩에 그림을 그려줬다.


실패한 암각화 탁본 작업... 입체적 그림이 가능한 3D카메라 필요

알타이산 등정을 마치고 바양올기로 향하던 일행의 다음 목표는 몽골과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국경근처에 있는 암각화를 찾는 것이었다.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수백기의 암각화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바위에 다양한 동물 암각화가 새겨져 있었다. ⓒ 오문수
바위에 새겨진 암각 부분이 너무 얕아 선명한 탁본을 뜰 수 없어 아쉬웠다. 암각화는 탁본보다 입체영상을 촬영할 3D카메라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문수

얼른 사진을 찍고 탁본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갈라진 바위틈 때문에 그림들을 판독하기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암각한 부분이 너무나 얕아 선명한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4000~5000년 전 옛 선인들이 이 바위 앞에서 날카로운 도구로 사슴과 늑대, 말탄 사냥꾼을 그린 그림이 내 눈앞에 있는데 탁본을 제대로 뜰 수 없다니! 이럴 때 입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3D카메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밤 10시에 탁본 완성한 '천마' 그려진 사슴돌... 행복했다

바양올기를 떠나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에 귀한 사슴돌을 만났다. 타미르 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세워진 사슴돌은 예사 사슴돌이 아니다. 돌에 새겨진 문양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었다. 인근에 적혀진 안내서를 읽어보니 "중앙아시아와 몽골 포함해 2기 밖에 없는 사슴돌로 말 문양이지만 사슴돌로 간주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2기 밖에 없다는 천마가 그려진 사슴돌 탁본. 밤10시에 탁본작업을 마무리해 선명한 탁본을 얻지 못했지만 보람있었다 ⓒ 오문수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한 '천마'를 닮은 사슴돌은 나를 더욱 흥분케했다. 탁본 장비를 펴고 돌 위에 물을 뿌리며 시간을 보니 밤 8시다. 주위는 어둑어둑해지고 오늘 저녁까지 탁본을 뜨지 못하면 내일은 불가능하다. 창호지를 바르고 먹물 묻힌 좁쌀방망이로 두드렸지만 밤이라 종이가 마르지 않는다.

문득 가져온 천조각이 생각나 종이에 천을 대고 두드리니 종이가 제법 말랐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하는 수 없다. 바위에 붙였던 테이프를 떼어내고 조심스럽게 탁본을 떼어낸 후 시계를 보니 밤 10시다.  

몽골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떠올랐지만 해냈다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탁본을 들고 텐트로 돌아오기 위해 탁본 장비를 둘러메자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까짓것 배고픔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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