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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집을 만나다

'춤추는 정원' 연재 (8)
충동적으로 계약한 삼천 평짜리 '신비한 집'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은신처 돼

  • 입력 2019.12.17 14:20
  • 수정 2020.04.25 17:15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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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에 정원을 가꾸지 않았으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히 떠오르는 일이 없다. 정원 가꾸기는 내게 ‘운명’과 같다.

지난 2000년에 남편 한의원 개원을 위해 오랜 타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여수로 내려왔다.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의미 있는 해였지만 내게도 삶의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난 해였다.

먼저 삶의 터전의 대이동이 있었고, 하나뿐인 아들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 내 생애 가장 슬픈 일, 친정엄마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인생은 이렇게 슬픈 일, 기쁜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기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남편이 뒤늦게 들어간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원을 하여 가정경제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가정경제의 책임에서 벗어난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겠노라고, 이제 난 ‘숙제’를 마쳤으니 당분간 마음껏 놀겠다고.

 

우주의 메시지

1년쯤 지나자 남편 한의원도 자리를 잡아가고, 생활도 안정이 되어갔다. 다시 온 고향은 외국 휴양지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간만 나면 주변 바닷가와 섬들을 돌아다녔고 어느 날은 가까운 지리산 자락인 구례와 하동으로 마실을, 진주와 통영 등지도 다녔다.

하지만 1년도 못 가서 조금씩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생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수행적 삶과 병행할 수 있는 일,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일, 어디 없을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음식점 마당 한쪽에 제법 많은 항아리가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테리어 소품인 줄 알았는데 판매도 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식사를 하는 내내 자꾸만 그 항아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항아리들이 ‘나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듯 자꾸 내 시선을 끌었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주인아저씨에게, “제가 곧 전원주택을 살 건데요, 오늘 돈은 지불하고 전원주택을 사면 그때 가져갈게요.”라며 거짓말까지 하고 항아리를 사버렸다.

사실 그때까지 전원주택을 사겠다는 생각을 꿈에서라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의원 개원으로 돈도 없었던 그 시기, 나는 화분 하나도 제대로 키운 적 없었다. 약국 개업 때 선물로 들어오는 화분들은 들어오자마자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일쑤였고, 친정엄마가 가꾸는 집 뒤의 조그마한 텃밭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내가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항아리를 구입한 것이다. 그러고는 그날 밤 항아리 때문에 괜히 흥분해서 잠을 다 설쳤다. 그런 ‘이상한 감정’은 또 이삼 일이 지나자 사라져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항아리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운명 같은 만남

6개월이 지나고 항아리 주인으로부터 빨리 가져가라는 전화가 왔다. 사람 한 명도 들어갈 만큼 거대한 항아리라 아파트에는 도저히 둘 수 없었다.

결국 항아리를 둘 장소를 찾기 위해 시골집을 보러 다녔다. 얼마 되지 않아 사촌오빠 도움으로 외할머니의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작은 마을집 한 채를 구했다. 빨간 양철 지붕의 아담한 시골집이 정말 마음에 꼭 들었다. 엄마의 치마폭 같은 산자락에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모습도 정겨웠고, 동네 한가운데 있는 연못 같은 조그마한 저수지도 평화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시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가격도 적당했다.

그렇게 집을 사려고 동네를 오가는데, 이상하게 갈 때마다 동네 끝자락에 외따로 떨어져 신비하게 자리 잡은 집 한 채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붉은 벽돌과 갈색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봐서 여느 시골집과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별 특별한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동네 어르신 부부를 차에 태우고 나오던 중 그 집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동네 맨 끝 산골짜기 집 있잖아요. 그 집에 누가 살아요?”
“왜, 관심 있어? 우리 조카집인데 아마 팔라고 하면 팔 걸. 요즘 아이엠에프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거든.”
“그래요? 그럼 제가 살 테니 얘기해주세요.”


항아리를 살 때처럼 난 그 자리에서 단번에 사겠다고 말해버렸다. 원래 성격이 급하기도 하지만 뭔가 ‘운명적인 계획’ 앞에서는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가는 것을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원래 사기로 했던 집의 가계약을 취소하고 이 ‘신비한 집’을 사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원래 집주인은 집을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냥 한번 비싸게 불러 봤는데 일원 한 푼 깎지 않고 사겠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팔게 되었고 어쩐지 나에게 이 집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고도 했단다. 아쉬움이 컸던지 집주인은 내가 사기 로 했던 집을 샀다. 주인이 뒤바뀐 것이다.

이 ‘신비한 집’은 삼천 평이 넘었다.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귀신이 나올 정도로 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여자 혼자 가꾸기에는 어느 모로 보나 무리한 선택이었다. 남편을 비롯해 주변 사람 모두가 이 계약에 반대를 했지만 나는 계약을 강행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지켜보고 있는 산골짜기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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