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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자라는 정원

'춤추는 정원' 연재 (9)
15년간 가꿔온 정원은 나만의 소박한 '아쉬람'
차와 채소를 가꾸고 꽃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은 수행처이자 놀이터

  • 입력 2019.12.21 07:30
  • 수정 2020.04.25 17:14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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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장하는 예술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신비한 집’ 계약을 마친 다음 날, 잠을 설친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보러 갔다. 늦가을, 조금 쌀쌀했지만 아침 햇살에 나의 정원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정원은 야생화 되어가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뿔 달린 야생 염소 가족이 마당에서 동백나무 잎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고, 동네 고양이들도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고 닭도 서너 마리 뛰어다녔다. 칡넝쿨은 마당 한가운데까지 뻗쳐 나왔고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갈색 낙엽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소박한 ‘아쉬람’

결혼한 후 한 번도 내 집이나 내 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여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조금은 이상한 인연으로 땅을 사고 난 후 전혀 예상치 못한 환희와 함께 삶에 대한 무한한 안정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 옆으로는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추우면 산에서 나무를 해와 구들방을 데울 수 있고,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야생나물들을 먹으면 최소한의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렇게 설렘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해마다 봄이면 꽃과 나무를 심고, 여름이면 정신없이 잡초와 싸우고, 잠깐의 휴식인 가을을 지나 겨울이면 매년 돌담을 쌓는 일로 한 해 한 해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분명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면 힘들어서 못했으리라.

정원을 가꾸면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하곤 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온갖 지저분한 가건물이 널려 있는 험한 땅이었던 이곳을 정원으로 만들겠다고 덤비니, 누군가는 몇 년 못 가서 지쳐나가떨어질 거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런 주위의 비웃음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나는 그 일밖에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노아의 방주를 떠올릴 정도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가꾼 정원은 이제 나만의 ‘아쉬람’이 되었다.

아쉬람이라고 하면 보통 규모가 큰 수행공동체를 말하지만, 내 정원은 아쉬람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작은 공간이고, 개인 정원이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크다.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그 어떤 목표나 의도 없이 그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나만의 소박한 ‘아쉬람’을 꿈꾸면서 행복하게 정원을 가꾸어왔다.

천성적으로 내향적인 인간이라 어떤 일이든지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것, 딱 그 정도가 인간관계에 대한 내 삶의 철학이다.

나는 내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전형적인 소시민이었다. 그런 내가 정원을 가꾸고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정원 예술가

우리 정원 한편에는 ‘명상의 집’이라는 조그마한 명상홀이 있다. 시골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었지만 황토벽돌과 나무만으로 내부를 장식해 아담하고 정갈하다.

명상의 집 안에는 오로지 명상서적과 춤명상을 위해 필요한 오래된 작은 오디오, 그리고 명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티벳볼’만이 있다. 들어가 앉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공간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길벗들과 함께 춤추고 명상한다.

정원에 있는 천 평 정도의 차밭에서 해마다 홍차를 만든다. 차는 비료 한 톨, 농약 한 방울 쓰지 않고 오로지 남편 한의원에서 나온 한약 퇴비로만 키운다. 가시덤불이었던 야산을 힘들게 개간하여 만든 차밭이지만 해마다 향기로운 차를 내어주고 그 차로 사람들과 소통하게 해주는, 정원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작품’이다.

정원 한편에 마련한 채소밭에는 단순한 쌈채소뿐만 아니라 김장 무와 배추를 심어 직접 김장을 하고, 마늘과 양파는 일 년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게 심는다.

정원에서의 육체 노동은 늘 비실비실하고 심약하던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해준 최고의 일등공신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관념성을 극복하게 하는 치유의 약이기도 하다. 나는 정원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 다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놀이하듯 가꾼다. 마치 화가가 화폭에 마음 가는대로 그림을 그리듯 나도 내 땅에 나무와 꽃을 심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원은 살아 있는 꽃과 나무들로 만든 ‘살아있는 예술’이다. 그리고 꽃과 나무들이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성장하는 예술’이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예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누가 뭐래도 나는 예술가다!

이렇게 정원은 내 수행처이고 일터이자 놀이터이다. 삶의 현장임과 동시에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정원의 꽃과 나무가 자라듯, 나의 깨달음도 정원과 함께 점점 자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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