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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렵다'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

[몽골여행기] 몽골과 우리말의 관계

  • 입력 2019.12.25 13:07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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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이 말을 타고 개울을 건너고 있다 ⓒ오문수

몽골 관련 책을 읽으면서 몽골어와 몽골 풍습이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는 걸 알았다. 결혼할 때 여인들 볼에 발랐던 연지 곤지며 족두리도 몽골 풍습이다. 고갯마루를 넘어갈 때 보았던 서낭당 옆 돌무더기는 몽골의 '오보'에서 기인했다.

몽골 유목민 주거지 게르는 대부분 초원에 세운다. 몽골초원이 한국의 들판과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때론 자동차를 타고 2~3시간을 달려야 끝이 나온다.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과 초원에 있는 게르에 들러 기념 사진을 찍고 선물을 주고 떠나자 아이가 일행을 향해 하트 표시를 지어보였다. 사방이 툭터진 초원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움푹팬 곳까지 가야한다. 유목민들은 "화장실 간다"고 할 때 "말보러 간다"고 한다 ⓒ오문수
몽골 유목민 아이들이 말을 타고 있다. 말없는 유목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유목민들은 "말 등에서 태어나 말 등에서 죽는다"고 한다 ⓒ오문수

관광객을 상대하는 유목민 주거지에는 게르 인근에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목초지를 따라 계절마다 주거지를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이 화장실을 마련한다는 건 사치가 아닐까? 남자들은 생리현상을 게르 인근에서 해결한다. 하지만 부끄럼을 타는 여성들은 다르다.

광활한 몽골 대초원을 여행할 때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때 난처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남자 대원들은 초원으로 가서 대강 돌아서서 소변을 볼 수 있지만, 여자 대원들은 아무리 걸어가도 몸을 가리고 일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흔히 보자기나 양산 같은 것으로 겨우 몸을 가리고 일을 보게 된다.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민 여성 델게르마에게 "유목민이 화장실 간다고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고 묻자,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말보러 간다"고 말했다. 유목민은 움푹 팬 곳이나 언덕 뒤까지 말을 타고가 생리현상을 해결한 후 돌아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마렵다'의 어원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답은 몽골이다. "~ 마렵다"라는 말이 몽골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여러 뉴스를 검색하고 지방 사투리 관련 서적을 찾았지만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고조선답사단에는 여성도 있었다. 사방이 툭터진 초원에서 여성들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우산을 들고 가고 있다. 우산으로 몸을 가리고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오문수
무더운 여름날 말들이 호수에서 몸을 식히고 있다 ⓒ오문수

몽골에 문의하기도 하고 며칠간 관련 논문을 뒤적이다가 드디어 답을 찾아냈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의 저자 백문식씨는 '~마렵다'의 어원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한글을 이용해 쓴 "아래아" "말"을 기사에 올리자 글자가 세 단어로 분해되어 할 수없이 원본 사진을 촬영했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인용한 글이다 ⓒ오문수

"오줌이나 똥이 나오려고 하는 느낌이 있다. '마렵다'는 'ᄆᆞᆯ(분뇨)'에 형용사화 접사 '엽다'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ᄆᆞᆯ +엽다→마렵다. ᄆᆞᆯ은 15세기 초기 문헌에 보인다. 'ᄆᆞᆯ'은 <월인석보>에 처음 나오며 '대변, 소변'을 두루 일컬었다. <역어유해>에서 대변은 '큰ᄆᆞᆯ'로 소변은 "져근ᄆᆞᆯ'이라 하였다. 'ᄆᆞᆯ'은 19세기에 들어 변의가 있다는 뜻의 '마렵다'에 화석으로 남아 있을 뿐, 현재는 분뇨 또는 똥에 대체되어 전혀 쓰이지 않는다."

몽골에서는 대·소변을 '모리'라 부른다. 현대 몽골어의 '모리 하리이'는 '용변을 볼게' '모리 하르차드 이리이'는 '용변을 보고 올게'라는 뜻이다. '모리'에는 '말'의 뜻도 있으며 2차적인 의미로 똥·오줌을 의미하며 고려 말엽에 원나라로부터 차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목민 소년이 마유주를 팔기 위해 도로변으로 오고 있다. 말젖은 단백질, 당분, 비타민C가 풍부하다. 마유주에 익숙하지 않는 외지 관광객은 설사를 하기도 한다 ⓒ오문수

다음은 1459년에 발간된 <월인석보>의 내용이다.

한글을 이용해 쓴 "아래아" "말"을 기사에 올리자 글자가 세 단어로 분해되어 할 수없이 원본 사진을 촬영했다. <월인석보>에서 인용한 글이다. ⓒ오문수
"차바 ᄂᆞᆯ 머거도 자연히 스러 ᄆᆞᆯ보기를 아니ᄒᆞ니
ᄆᆞᆯ 보기를 ᄒᆞ니 남진 겨지비 나니라
머근 후에야 ᄆᆞᆯ보기ᄅᆞᆯ ᄒᆞ니"

 

'말보기'라는 표현은 원나라 멸망 이후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우리 말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국어사전>에는 '말'이 보이지 않으며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임금의 배설물을 받는 '매화틀'

배설물을 일컬어 '말(분뇨)'이라고 불렀던 용어를 찾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른바 '매화틀'이다. 매화틀은 임금이 사용하는 변기다. 매화틀은 나무를 이용해 외부틀을 제작하고 왕의 엉덩이가 닿을 곳에 천을 두른다. 변이 투하될 구멍 안쪽 내부에는 별도의 그릇을 배치해 넣고 뺄 수 있게 한다.

그릇에 담긴 왕의 변은 어의(御醫)에게 건네져 관찰과 분석을 한 후 진단과 처방을 한다. 국왕의 배설물은 건강상태를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의가 맛을 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가 설명한 '매화틀' 내용이다.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변기를 이르는 말. 16세기 문헌에 '매유통'이라 하였다. '매유'는 '말(분뇨)'의 변이음으로 '마요→마유'를 거쳐 형성된 말이다. 궁중 용어로는 '매우틀'이라 하였다. 매화라 한 것은 똥을 미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변기를 이르는 말. 16세기 문헌에 '매유통'이라 하였다. '매유'는 '말(분뇨)'의 변이음으로 '마요→마유'를 거쳐 형성된 말이다. 궁중 용어로는 '매우틀'이라 하였다. 매화라 한 것은 똥을 미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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