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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의 봄은 시작하여진다'

손상기 전시회를 보고 난 소감

  • 입력 2020.01.02 11:04
  • 수정 2020.01.02 11:12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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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전시회 당시 도슨트 교육 모습

 

손상기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해 예울마루 예술섬 장도에서 손상기 31주기 기념 전시회를 가졌다. 전시회 도슨트로 참여한 이기자씨가 2019 겨울호 거북선여수에 손상기전 관람 후기를 올려 관심을 끌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글이어서 글쓴이에게 요청해 본지에 다시 게재한다.

손상기 전시작품 '영원한 퇴원'

손상기 화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늘진 색채, 그 어둠 속으로 침몰할 듯했다. <공작 도시> <시들지 않는 꽃> <누드> 등 작품이 주는 우울감에 전염될 것 같아서 외면했다. 그 후에 사문난적 출판 <손상기의 삶과 예술>이란 책을 통해서 다시 만났다. 화가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적으로 공감했다.

고 손상기 화가의 그림은 서성록 평론가의 표현처럼 '불편한 세계로의 초대'였다.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추한 것보단 아름다운 것, 불행한 것보다 행복한 것을 보려는 이들에게 그렇다. 나 역시 같은 부류여서 처음에 그랬다. 그러나 그의 삶을 알고 그의 삶에서 그림이 어떤 것이란 걸 이해하고, 재능을 예술적으로 꽃 피우지 못한 채 스러진 데에 안타까운 마음이 사무쳤다.

무엇보다도 쓸쓸하고 쓸쓸한 한 인간에 대한 깊은 애도가 남았다. 찰과상(긁는 기법)을 입혀 완성한 그림들이 삶의 '고독한 독백'이었으니 한 점 한 점이 절절하고 쓰라린 그의 통증이었다.

장도 전시회 당시 개막식 광경

2019년 10월 8일부터 11월 10일까지 34일 동안 예울마루 장도 전시관에서 손상기 31주기 기념전이 열렸다. 전시 기간 중 하루(11월 3일)의 한나절을 작품 지킴이로 봉사했다. 정성껏 들여다보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감상을 통해서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화가의 그림과 세 번째 만남이다. 오픈 전날(10월 7일) 샘터화랑 엄중구 대표의 도슨트 교육이 있었다. 엄 대표는 “손상기 화가는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평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제4회 특별전시는 60여 점의 유화와 드로잉 작품 외에 자화상과 육필원고, 작업 노트 그리고 관련 서적까지 다양하게 구성했다. 화가의 면모를 잘 보여줬다.

손상기 화가의 그림이 갖는 힘을 발견한다. 자기만의 고뇌를 글과 그림에 진실하게 담아냈다. 전편에 흐르는 감정의 일관된 순수함이 있다. 개인적인 아픔조차 동시에 민중적인 동병상련으로 이어져서 사회적인 공유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문학(이야기)으로 접근해서 회화(형상)로 마무리하는 계획적인 작업방식이다. 그래서 작품들이 극적이다. 그의 본질이 곧 그림이 되었다. 스스로 더는 <자라지 않는 나무>라고 했으나 그는 일찍 ‘다 자란 나무’였다. 삶에 직면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완성한 작품들이다.

비로소 작가와 작품성에 바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화가 손상기 생전의 화실에서의 모습

‘명산의 바위처럼 위용 있게 돌출된 가슴뼈, 외봉 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 불쌍타 가엽타 그가’ 자기 연민이 측은하다. 비록 생의 굴레를 초월해서 영광을 누리지 못한 삶이다. 그러나 아픔이 빛나서 어둠이 빛을 발한다.

이번 31주기 기념전에 8,059명의 관람자가 다녀갔다. 화가의 ‘고독과 오한’에 깊이 공감했다. 전시관은 양지가 됐다. 더는 차갑고 어둡지 않다. 그의 바람처럼 타오를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이미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전시관을 나오니 저녁 하늘에 이른 조각달이 떴다.

2019 겨울호 '거북선여수'  감성사랑방.   글/이기자

손상기 작 '취녀'
화가 손상기는 그리기에 앞서 글로 적고 구상을 설계도처럼 작성한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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