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을 할 때의 허심.. 농사일은 '마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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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을 할 때의 허심.. 농사일은 '마음공부'
  • 김미애
  • 승인 2020.01.09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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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풍경 뒤에 가려진 '야생'의 맨얼굴
밭에서 땀 흘리며 노동의 숭고함 깨달아... 마음공부는 덤
농사에 전념하는 것은 '명상'의 경지.. 운동과는 또 달라
갇혀사는 도시생활의 아이들에게도 권하는 농사일
발효닭모이를 만들고 있다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소의 머리와 같은 형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이름 붙여진 이곳은 300여채의 가구가 살고 있는 바닷가마을이다. 바닷가라 하지만 어업보다 돌산갓으로 익숙한 이곳에 우리의 작은 농터가 있다. 우두리는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다를 끼고 자리한 농어촌마을이다.

처음 우두리집과 마주한 날, 마당과 이어진 남해 푸른 바다에 매료되어 숨죽여 환호했다. 그때는 오로지 흙과 바다와 교제할 생각 뿐, 매서운 바닷바람의 맛은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바다의 로망만 안고 호미와 괭이를 잡았으니 이렇게 순진할 수가 없다.

농사를 지으며 바라보는 소소한 생명들, 흙, 바람, 공기, 태양, 하늘에 기대어 사는 다양한 생명들이 어찌나 신비로운지 온통 의미로 가득해 보였다.

꾸밈을 배제한 바다와 낮은 산이 병품처럼 펼쳐진 테라스 앞을 배경으로 날마다 행복한 미소로 흙을 맞이했다. 그때만 해도 숲은 피톤치드를 주고 땅은 깊은 풍요과 결실만을 안겨주는, 너그러운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검푸른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 된 우두리 농가집에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계절을 경험하며 무서운 자연, 화평의 자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기 시작했다. 흙이 좋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마음공부까지 덩달아 따라왔다.

무화가 묘목 다듬기. 할 일이 많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니 육체의 건강을 따라 정신 건강도 맑아졌다. 무성한 풀을 뽑을 때는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상념들도 함께 뽑혀 나간다. 반복되는 농사일은 저절로 '수행'이 되었다. 풀을 뽑고 솎아내며 내 안의 상념도 뽑혀나갔다. 이 어찌 '수행' 아닌가?

농작물이 더디 자라고, 조금 못생겨도 내 영혼이 그 안에 있음에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마트의 계산대에 올려 놓고 돈을 내는 일에서 멀어지면서 채소는 사는 것이 아닌 밭에서 뽑아 먹는 것이라는 것, 작으면 작은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생명들에 대해 감사함으로 식탁을 채웠다.

농사를 짓는 일은 창조력과 집중력을 도모하는 일이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니 세상 잡념이 머무를 틈이 없다. 반복되는 호미질과 괭이질은 육체와 정신까지 단련시키며 명상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수확하는 채소는 기본이요 마음까지 정결하게 한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전면적인 인생공부이다. 내가 먹을 것을 내 손으로 해결한다는 것과 생명 있는 것들을 온몸으로 만나는, 삶이자 공부의 장이다. 땀 흘리고 몸을 쓰면서, 자연을 통찰하고, 이해하며 내 몸을 살피는 마음공부로서.

가끔 힘에 부칠 때는 아이들을 부른다. 물론 인력시장에서 구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우두리의 추억을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에서 일하는 숭고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틈틈이 집을 수리하는 일은 필수

책상머리에 앉아 일을 하면서 겨울에는 추워서 꼭꼭 닫고,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새 나갈세라 문을 닫다보니 이제는 마음의 문까지 닫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자연과 유리된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땀 흘리지 않고 살기를 작정한 시대에 우두리의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서, 바닷 바람 곁에서, 소소한 생명들과 만나 존재에 관한 사려 깊음도 느끼며 집 앞 탁 트인 바다와 땅의 정기를 담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끔 아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낸다.

밤도 낮도 없는 도시의 생활에서 벗어나,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자연 속의 나를 체험하는 것, 내가 뿌리고 경작한 ‘숨 쉬는’ 채소 밭을 바라보는 푸르른 무심을 일 년에 몇 번이라도 경험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비록 부모의 강요 때문일지라도, 지는 해를 등지고 작업복을 벗는 보람은 운동하며 흘린 땀과 비교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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