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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투성이 땅, 돌담으로 다시 태어나

'춤추는 정원' 연재(13)
깊은 산골짜기 척박한 땅에서 캐낸 돌로 쌓은 담, 돌담과 계단식 축대는 이곳만의 비경
시간이 지나며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돌담은 명상을 통해 강한 에고에서 벗어나는 나를 닮아

  • 입력 2020.02.14 05:05
  • 수정 2020.04.25 17:07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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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불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축복인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다. 어린 시절 가난도 그 중 하나다. 고통스럽고 힘들던 그 시절 가난으로 인해 인생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진보적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현재 삶의 풍요로움에 더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부자’는 아니지만 이 넘치는 풍요로움이 한없이 고맙다. 약사라는 직업을 망설임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물질적 부’에 대한 내 기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을 지녔다면 그야말로 ‘난봉꾼’으로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허영기 많고 자랑하기 좋아하는데 강한 생리적 에너지까지 갖추었으면 얼마나 잘난 체하며 살았을까. 허약한 몸 때문에 생긴 생존 자체에 대한 불안은 나로 하여금 수행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그 결과 다른 이들보다 더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됐다.

 

돌투성이 땅의 변신

우리 정원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골짜기 돌투성이 척박한 땅은 효용가치가 없어 보였으나 오히려 그 불리한 조건들이 정원을 더 개성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 중의 하나가 돌담이다. 정원에 놀러온 사람들이 가장 감탄하고 칭찬하는 것도 바로 이 돌담이다. 정원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돌담은 소박한 나무문 양쪽으로 사람 키높이로 우뚝 서 있고, 정원으로 내려오는 굽은 길을 돌담이 에워싸고 있다.

아래 정원으로 내려오면 허리 높이의 돌담이 정원 전체를 두르고 있는데 한눈에 다 담지 못할 넓이다. 돌담 뿐 아니라 계단식 축대도 아기자기하고 정겹다. 단연 우리 정원 최고의 ‘비경’이다.

하지만 처음 땅을 마주하고는 돌투성이 척박함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호미로 살짝만 파도 돌들이 튀어 나왔다. 아무리 평평하게 골라 놔도 비가 오고 나면 돌이 땅 밖으로 드러났다.

나무를 심으려 하면 흙보다 돌이 더 많이 나왔고 돌을 파낸 자리를 메울 흙을 틈틈이 공수해 와야 했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 나무가 잘 자랄 리가 없었다. 흙보다 돌이 더 많은 땅에서 새로 심은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이삼 년이 지나도록 성장을 하지 못했다. 특히 유실수에게 치명적이다. 2~3년이면 열매를 맺는 감나무나 매실나무는 5~6년이 지나도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이처럼 돌투성이 땅에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굴곡 많은 인생에도 반전이라는 것이 있듯이 이 척박한 땅이 반전을 안겨주었다.

바로 토목공사를 하면서 나온 엄청난 양의 돌들로 돌담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돌을 처리하려 넓은 정원 여기저기에 조금씩 쌓기 시작했는데, 이 돌담으로 정원이 제법 아늑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 수확이 없는 겨울에는 본격적으로 돌담 쌓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동네 할아버지를 ‘고가’에 모셔와 열심히 돌담 쌓는 법을 배웠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난 자인은 얼마 안 가 동네 할아버지들의 실력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고, 정원 일이 한가한 겨울이 되면 조금씩 돌담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 후 완성된 돌담은 이제 정원의 가장 큰 볼거리요, 명물로 자리 잡았다.

돌담은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태풍이 정원을 휩쓸고 지나갔던가. 한여름 벼락을 동반한 강한 비와 돌풍은 또 얼마나 자주 왔던가. 그래도 단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동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돌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더욱 더 단단하게 얽혀 들어 그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견딘다다.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기하다.

척박한 땅을 번듯한 정원으로 만들기까지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빨간 다라이’에 돌을 담아 나르는 일이었다. 잡초를 제거할 때도 잡초보다 돌을 더 많이 담아냈고, 돌담 사이사이를 작은 돌로 꼼꼼하게 메웠다.

땅에서 돌을 캐낼 때면 마치 마음 속의 응어리를 캐내는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큰 아픔이나 시련은 없었지만 나는 유난히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고집스럽고 강한 에고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 환경과 부딪치는 것이 문제였다.

명상은 나의 강한 에고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될 일인가. 긴 시간 정원에 ‘은거’하면서 노동을 통하여 ‘아무것도 아닌 그저 나’로서 겸허함을 배웠다.

요즘 정원의 돌담은 세월의 흔적이 배어 나오면서 갈수록 운치를 더해 간다. 색깔이 조금 어두워지면서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인다. 이끼가 낀 돌도 있고, 넝쿨 식물이 올라탄 돌도 생기면서 정원과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죽어 있는 무생물의 돌담에 날이 갈수록 생명의 기운이 번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돌담에 물기가 스미면서 마치 꽃이 피어나듯, 돌 고유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지, 생명은 물을 머금는 것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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