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의원선거에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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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의원선거에 나가야겠습니다"
  • 양영제
  • 승인 2020.02.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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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의욕에서 출마한 후보자도 당선 후엔 시민의 비판에 직면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로 지지율 낮은 후보가 당선되기도.. 일명 '콩도르세의 역설'
비례연동제 도입하자 이를 이용한 위성정당 생겨나
소설가 양영제
소설가 양영제

여수 지역신문사 여수넷통 편집국장님, 그리고 독자 여러분! 
저도 국회의원이든 시위원이든 선거에 나가야겠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한 날은 편집국장님과 신문사 근처 식당에서 서대무침을 먹던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국장님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 서대무침이 달아져부렀어.”

음식에 조미료를 많이 넣어 맛이 달달해지거나, 물건을 오래 써서 낡아지거나, 사람이 세상 사는 요령만 늘어나서 영혼이 탁해졌을 때도 여수 사투리로 ‘달아졌다’라고 표현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닳아진 여수를 순수한 지역으로 돌려놓기 위해 국회의원이든 시의원이든 선거에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지역과 기관을 대표할 선거에 출마한 사람치고 어느 누군들 저처럼 순수한 차원에서 생긴 의욕적인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누구나 시작할 때는 닳고 닳은 그 무엇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고 나서겠지요. 그러다가 스스로 닳고 닳아 ‘달아’ 지는 것이죠.

정의롭고 순수한 청년학생이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그러다가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면서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은 늘 반복되어 왔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실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도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정신분석에서는 '소방관 안의 방화범'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다 술에 취해 이성적 도덕적 억압의 빗장이 열리게 되면 숨겨진 욕망은 그 틈을 비집고 튀어나옵니다.

또는 어쩌다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도 좋을 지위에 오르면 사적욕망과 공적도덕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것을 ‘욕망의 선택압력’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택압력이 가해지면 공적 도덕성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쉽게 변질됩니다. 물이 열을 받으면 수증기로 변하듯, 외부의 어떤 압력에 의해 성질 자체가 바뀌어 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양은 냄비에 담긴 물은 가마솥에 담긴 물보다 더 쉽게 수증기로 날아가 버리겠지요. 그런 식으로 닳고 닳아지다가 결국 ‘달아’져버려 결국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요.

누구나 정치를 시작할 때는 ‘닳고 닳은 그 무엇’을 깨끗하게 바꿔보자고 마음먹지요. 처음부터 권력의 단맛을 노리는 관료나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초심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관료나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국회의원이든 시의원이든 하다못해 이장 감투라도 쓰게 되면 사람 심리가 바뀌지 않을 수 없죠.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권력이라도 일단 손에 주어지면 사람이 어떻게 바뀌는지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의학계에서는 신분이 달라진 사람의 뇌에는 물질성분 자체가 바뀌어 신경세포 뉴런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뇌가소성 plasticity , 腦可塑性’이라고 합니다. 이런 뇌가소성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고도의 자기비판을 통한 도덕성을 갖추지 않고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 대부분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릅니다. 그러니 평범한 소시민인 저도 국회의원이든 시의원이든 당선되면 초심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여수를 새롭게 해보겠다는 의지는 닳아지고 점차 단맛에 길들여지겠지요. 그러면서 여수시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시민들이 비판해도 임기가 보장되어 있으니 그 기간에는 얼마든지 단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선거철이 되면 지역의 축적된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후보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납니다. 유권자인 시민의 표를 얻기 위해 나라와 지역의 축적된 갈등을 ‘공약’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팝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유권자들은 그들의 공약이 과대포장이었다거나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나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의원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또다시 선거철이 다가오면 후보자들은 포장만 달리한 똑같은 상품을 공약으로 유권자에게 판매합니다. 이들은 영화 ‘내부자들’ 의 대사처럼 민중의 인식능력이 개돼지 수준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부자들 중 언론인 발언 장면

영화가 현실로 나타난 사례도 있지요. 엘리트인 교육부 정책기획자가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일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니 저는 선거에 나가서 여수시민을 대표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무슨 용가리통뼈라고 권력의 단맛을 이겨내겠습니까. 애초에 저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료로 시의원 선거에 나갈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거기에 초심을 유지할 자신도 없으므로 선거에 나설 생각은 날름 접겠습니다.

설혹 ‘투표의 역설’로 제가 어부지리로 당선된다고 칩시다. 저 역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Bad mony will drive Good mony out of circulation’시키는 데 한몫 담당하지 않을까요. 우화적으로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제가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인데 돈이 필요하거나 욕심이 나서 한 돈짜리 금배지를 전당포에 저당하고 돈을 빌립니다. 그런데 금배지가 닳아서 한 돈인 3.75 그람이 못되고 3.50 그람에 그칩니다. 전당포 주인은 의원의 권위를 믿고 한 돈에 해당하는 최대 금액을 빌려 줍니다. 신이 난 의원은 이를 반복합니다. 결국 세월이 흐르고 닳고 닳아 무게가 절반도 못 미치는 금배지가 전당포에 쌓이게 되겠죠. 결국 시중에는 절반 무게도 못되는 불량 금배지만 유통됩니다. 돈 번 사람은 전당포 주인이 아니라 권위나 지위를 이용해 금배지를 저당하여 돈을 벌게 되는 의원입니다.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형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기사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형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기사

의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의 초심은 이렇게 닳아지고, 그 닳아진 마음이 뇌의 뉴런구조를 변형시키며, 결국 뇌의 신경회로망에 장착되어 그는변질된 의원으로 전락합니다. 의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변질된 의원들만 살아남고 비교적 초심을 유지한 의원들은 의회와 자기 환멸을 느껴 불출마를 선언하여 의회는 변질된 의원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만든 사람은 의원의 권위에 속고, 또는 알면서도 금배지를 저당해주고 시중에 유포한 전당포 주인입니다. 여기서 전당포 주인이란 국가권력의 주체자인 유권자를 뜻합니다. 즉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량 의원들보다 유권자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보내는 시민의 권력의지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잠깐 ‘투표의 역설’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현재 21대 총선 여수지역 예비 후보자가 많아 투표의 역설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수학자 콩도르세가 발견한 ‘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란,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가 엉뚱하게 어부지리로 당선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 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여수 문수동에서 부녀회장을 뽑는다고 합시다. 출마자 현황과 예비설문조사 결과, 인지도 높은 춘심이가 40%,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목소리 큰 영자가 30%, 사람은 분명 좋은데 뽑아주기에는 뭔가 걸쩍지근한 봉숙이가 20%, 유동층이 10%입니다.

영자와 봉숙이가 후보 단일화를 하면 춘심이를 이깁니다. 그러나 분열하면 춘심이가 이깁니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가 대두됩니다. 예비설문조사 결과 지지도 40%인 춘심이와 지지도 20%인 봉숙이 둘이만 선거에 나오면 춘심이가 승리합니다.

그런데 만약 춘심이를 제외하고 영자와 봉숙이를 대결시켜보니 지지도 20%인 봉숙이가 지지도 30%인 영자를 이기는 결과가 나옵니다. 춘심이를 이기려면 봉숙이가 단일후보로 나오고 영자를 지지했던 30% 유권자들이 봉숙이에게 표를 몰아주어야 합니다. 이를 ‘투표의 교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30%의 영자 지지자 중 ‘영자가 출마하지 않을 바에는 걸쩍지근한 봉숙이보다 춘심이가 낫다’고 여기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춘심이는 영자 지지자 표까지 얻어 어부지리로 당선됩니다.

얼마 남지 않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수에서 출마의사를 밝힌 각 후보자들 중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그래왔으니까요.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대통령 후보자가 나선 13대 대통령 선거도 그랬습니다.

이렇듯 대의민주주의에서 다수결 원칙이 꼭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한계죠. 그래서 21대 국회에서는 비례연동제를 도입하자 또 발 빠르게 이를 이용하는 위성정당이 생겨납니다.

이번 편지는 여기서 맺고 다음은 대의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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