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잊게 하는 날씨가 계속되더니, 요 며칠 여수에서도 눈발이 날리고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흥남부두'는 아니지만 오랫만에 겨울바다의 정취를 맛본다.
날씨가 풀리기 전에 어서 생선을 말려야지. 중앙시장으로 나가니 상점마다 궤짝에 가자미를 가득 담아 팔고 있다.
"가재미가 제철이구나, 곧 3월이면 기일도 다가오니 이왕이면 가장 큰 것으로 사자"
근데 난 '가재미'라야 더 친근감 있고 맛있게 느껴진다. ㅎㅎ
큼직한 가자미와 서대를 넉넉하게 사서, 우두리 농가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난로에 장작을 집어 넣어 불을 지핀다. 그리고 난로 위엔 사골을 고아 1석2조의 즐거움을 누린다.
아파트에서 한 두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의 생선을 다듬는 일은 여간 복잡하고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우두리 집에서는 리어카에 생선을 싣고 도마, 칼, 둥근채반 그리고 바구니를 챙겨 바닷가로 나가면 된다.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오물을 씻어 내듯, 흐르는 바닷물에 생선을 씻으면 탁 트인 바다를 내 손으로 만지는 느낌과 바닷물에 씻겨 나가는 생선 내장들이 내 안의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는 듯해 기분도 좋아진다.
바람 불어 다행인 날,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볼이 꽁꽁 어는 듯 해도 일하는 즐거움이 더 큰 날이다.
남편과 함께 깨끗이 씻은 가자미를 들고 마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가미에 철사를 끼워 펜스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겨울바다 찬바람에 가자미는 꼬득꼬득 제 살을 말릴 것이며 여름철이 아니니 귀신같이 찾아오는 파리떼 격정도 없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늘을 배경으로 가자미와 서대가 매달려 있다. 흡사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장면을 연출하는 듯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풍경이다.
여수지앵으로 사는 나, 우두리의 사시사철은 자연을 누리며 사는 생활예술인에게 다양한 삶을 제공한다.
"난 여수가 좋다네. 난 우두리가 좋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