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과 대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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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맛과 대의민주주의
  • 양영제
  • 승인 2020.02.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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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 장치가 없어 단맛에 취해 몬스터가 되어가는 국회의원들
권력에 중독되면 마약만큼 강력한 도파민이 분비
후보자들은 자기 안의 몬스터를 은폐하고 선거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소설가 양영제
소설가 양영제

편집국장님 저는 이전 편지에서 제가 왜 뜬금없이 의원선거에 나가려다 날름 포기했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선거에 나설 만한 엘리트가 못되고 권력의 단맛에 중독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죠. 권력의 단맛을 맛본 인간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괴물(Monster)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꾸준히 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던졌던 이 질문을 다른 후보자들에게도 똑같이 던져주고 싶습니다. 후보자들이 과연 얼마나 시민을 사랑하며, 갈등을 해결할 능력과 진정성을 갖췄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의원들의 행보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20대 국회에서 그나마 공적이익을 사적이익보다 앞세웠던 의원들이 결국 21대 국회 불출마 선언하는 모습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대의민주제 국가에서 정치판에 대한 혐오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본디 선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불가의 용어인 ‘아사리’가 변질되어 정치판을 아사리 판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일 것입니다. 요즘 21대 국회의원 선출 출마에 나서는 예비후보자들이 서서히 드러내는 정치판 속내를 보고 있자니 프랑스 화가 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작품 ‘사기꾼’이 떠오릅니다.

프랑스 화가 라 투르의 작품, 사기꾼

금화가 놓인 탁자를 둘러싸고 세 명이 카드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왼쪽 귀족 청년은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 하면서 등에 꽂아 둔 에이스 카드를 슬그머니 끄집어냅니다. 가운데 여자는 귀족 청년이 사기꾼임을 눈치를 채고 시녀더러 그에게 술을 따라 취하게 합니다. 시녀는 사기꾼 귀족청년을 곁눈질로 살핍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여자는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금화만 우둔하게 눈길을 주고 있습니다. 음모와 이에 대한 경계 그리고 이를 모르고 카드 도박에 합류한 이들의 아둔함이 섞여 있습니다.

인간이 검은 욕망을 위해 저지르는 음모를 그림을 통해 보여준 화가 라 투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기까지는 아직 능력이 부족하니 우선 자신의 몬스터를 마주하는 첫걸음부터 시작하라”

여수를 지역기반으로 출마하는 예비후보자들께서는 자신 안에 몬스터가 없는지 살펴보셨나요? 혹시 자기 안의 몬스터를 은폐하고 선거에 나서고 있지는 않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과대 포장된 공약을 여수시민에게 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수 시민에 대한 기만인 것이죠. 그들이 정녕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기만에 능하며 이득에 눈이 어둡기 때문에 권모술수에 능한 철권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불온한 욕망을 뜻하는 에쿠우스(Equus) 즉 호모 에쿠우스라는 것이죠. 홉스(Hobbes)는 일찍이 인간의 본성은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다는 인간 성악설에 기초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통제할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그 괴물이 바로 국가권력입니다.

민주주의는 몬스터 같은 국가권력을 나누어 상호 견제하기 위해 삼권분립을 도입했습다. 그 중 하나가 입법기관 국회이며 시민으로 시민권력을 위임받아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이 국회의원입니다. 그러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시민권력을 갖는 국회의원은 견제 또한 받아야 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은 불체포 특권은 있고 시민으로부터 견제 받을 장치가 없으니까 단맛에 취해 몬스터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국회 정계특위가 열린 지난 2019년 4월 30일 선거법 개정을 위한 국회법사위 회의장에서 일어난 이립니다. 한 국회의원이 국회 질서를 담당하는 경위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국회의원을 밀어!!”

모 정당 장제원 의원이 허락을 받지 않고 회의장을 나가려하자 의원장이 국회 경위에게 그를 제지하라 명령합니다. 그러자 거룩하고 고귀하신 의원님께서 국회 경위에게 호통을 치십니다.

장제원 의원
장제원 의원

기자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장제원 의원은 문장 앞에 ‘감히 네 따위가’라는 말을 빠트렸습니다. 이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도 구시대 단맛에 사로잡혀 있는 의원이군.

시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했으니 잘못하면 시민이 밀어버리고 끌어내려도 됩니다. 그게 시민권력입니다. 하긴, 장제원 의원 부친이 전두환 군사독재시절 시절 배당받은 권력집단에 불과한 민정당 의원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지냈으니 권세가 내면화되었겠지요. 시민권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겠지요. 그러든 어쩌든 국회의원 권세를 어찌하오리까. 보잘 것 없는 시민은 그저 임기가 끝나 국회의원 권세도 함께 끝나기만 기다릴 뿐이지요.

다른 국회의원의 한 장면도 말하고 싶습니다. 2019년 11월 28일 국회 행안부 법사위 소의원회 회의실을 들어가려는 권은희 의원이 시민의 손을 뿌리치고 짜증내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권은희 의원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시민이 권은희 의원을 붙잡고 부탁을 하자 모질게 뿌리치는 장면입니다. 바쁜 정치일정을 소화해내려면 하루한달이 모자라겠지요, 민원인도 한두 명이 아니겠지요. 시민이 부탁하는 민원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였겠지요. 이해할 수 있고 심정적 질타를 할 생각도 없습니다. 코카인 같은 약물에 중독되는 것만큼 강력한 권력형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은 권은희 의원이나 나 또한 국회의원이 되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그 모습을 보고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 실험과 영화 ‘shape of water’이 떠올랐을 뿐입니다.

권한을 갖는 리더 Leader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쿠키 몬스터 실험은 이렇습니다.

- 실험에 참가한 팀원 네 명에게 아주 간단한 공공정책을 짜는 임무를 주고 일정 점수를 얻으면 현금을 줍니다.

- 네 명 중 제비뽑기로 조장을 정합니다. 조장에게는 현금을 배분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 실험 도중 실험자가 들어와 쿠키 5개를 두고 갑니다. 당연히 쿠키 1 개가 남습니다.

- 실험의 목적은 남는 쿠키 한 개를 누가 먹는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 누가 남은 쿠키를 먹을까요?

당연히 현금을 배분할 권한을 쥔 조장이 먹습니다. 그것도 쩝쩝거리며 먹습니다. 권력형 도파민이 분비되어 아주 기분이 들떠서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제비뽑기이든 선거든 리더가 되고 나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권한을 쥔 리더는 견제 받아야 합니다. 시민에 의해, 조원에 의해 선출되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견제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여수를 기반으로 출마하는 어느 후보자는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나 봅니다. 진정한 공약이길 믿어 봅니다.

다음으로는 멕시코 이민자인 헐리우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Gómez)의 영화 ‘물의 모양(shape of water)’을 예로 들겠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영화 'shape of water' 포스터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일하는 벙어리 춘심이(영화명 일라이자)는 화장실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표칠수(영화명 랜드)는 우주국 보안관입니다.

백인 중산층인 표칠수에게는 깔아뭉개도 될 하층 계급도 있고 올라야 할 나무인 상층계급도 있습니다. 그래서 춘심이 같은 아랫사람에게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경멸하면서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비굴합니다.

표칠수는 상층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남미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양서류 몬스터를 실험용으로 잡아 옵니다. 그러나 몬스터와 교감에 빠진 춘심이 몬스터를 놓아줍니다. 결국 출세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표칠수가 몬스터를 다시 잡으려다 목구멍을 다치게 됩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아랫사람을 경멸하던 표칠수는 목소리를 잃게 됩니다. 목소리를 잃기 전 표칠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신이었군요.”

동화 같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정치판에 대입해서 해석하면 어떤 의미가 전달될까요. 표칠수의 목소리를 뺏어버린 몬스터는 누구일까요. 말을 못하는 춘심이는 누구이며, 춘심이와 교감할 수 있는 몬스터는 누구일까요. 신은 누구겠습니까.

다음 편지에서는 과연 엘리트 대의민주주의는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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