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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다

'춤추는 정원' 연재(16)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상기시키는 고향 여수,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돌아와
깨달음을 체험하고, 마음 속 생각이 실현되는 경험을 자주 겪어

  • 입력 2020.03.01 12:46
  • 수정 2020.04.25 16:47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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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 둔전리

정원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친정어머니의 고향인 외가가 나온다.

어릴 적에는 방학이면 이모와 외삼촌을 만나러 외가에 놀러가곤 했다. 지금도 나이 드신 이모님 혼자 살고 계셔 가끔 방문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대도시에서의 화려하고 멋진 삶을 꿈꾸며,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듯, 반도의 끝에서 멀리 서울까지 날아갔지만 결국 다시 돌아왔다.

정원 바로 맞은 편 산꼭대기에는 외할머니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누구보다도 나를 끔찍이 사랑해주신 외할머니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계신 셈이다. 이렇게 뭔가 알 수 없는 인연에 끌리듯 이 산골짜기에 내 정원이 자리를 잡았다.

 

나의 카르마

삶을 내 의지대로 끌고 온 것 같아도,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건과 인연들이 대부분이다. 남편을 만난 것도, 스승과 소울메이트와의 인연도, 그리고 정원과의 만남까지 어느 것 하나 내가 의도하고 계획한 것이 없었다.

수행의 관점에서는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카르마’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그 카르마의 세계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운명처럼 카르마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카르마에 의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세기가 펼쳐지던 해인 2000년, 남편은 한약분쟁으로 일 년을 유급하고 7년 만에 드디어 한의대를 졸업했다. 늦은 졸업인 만큼 곧바로 개원 준비를 하며 자리를 물색하고 다녔다. 되도록 남쪽으로는 내려가고 싶지 않아 전주 근처로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명상을 할 때마다 여수로 내려가게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상황은 점점 여수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사실 남편과 내 고향은 여수다. 남편은 갓난아기 때 여수에서 전주로 올라왔고, 나 역시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굳이 여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여수가 내 콤플렉스의 근원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뒤 내 어린 시절은 늘 가난했다. 가난은 내게 기억하기 싫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안겨 주었고 다시는 그 상처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다시 나를 여수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래,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나와 남편의 고향인 여수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어떤 ‘카르마’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논리적으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내면의 소리나 직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쯤에서는 점점 일상화 되었다.

 

동시성의 체험

남편의 개원을 준비하는 동안 자주 ‘동시성’을 체험했다. 동시성이란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현상’으로 독일 심리학자 칼 융이 처음 쓴 개념이다.

그 체험은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벌어졌다. 남편의 선배가 운영하는 한의원 원장실 벽에 걸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보고 나 역시 그것을 갖고 싶었다. ‘처음처럼’이라는 복사본 문구를 친필로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상상했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을 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지, 뵌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당연히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기차를 타고 여수로 내려가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충동이 일어났다. 눈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나는 기차여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기차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신영복 선생님이 혼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이럴 수가. 인사를 하고 비어 있는 선생님의 옆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의 목적지는 전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갈 수 있는 시간은 약 30여 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길지 않은 그 시간, 나는 선생님의 책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열정적으로 얘기했고, 남편의 한의원 개원 기념으로 선생님의 친필 글을 받고 싶다고 부탁드렸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도 잠시 선생님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셨다. 지금 신영복 선생님이 써주신 ‘처음처럼’이란 글씨는 남편 한의원 원장실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깨달음의 체험 이후 나의 의식이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을 또렷이 목격할 수 있었다. 위에 예를 든 것은 긍정적인 것이지만 내 의식이 부정적인 내용으로 물들면 그것 또한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이 다치거나 해를 입기도 하고, 내가 무리한 욕망을 가지면 그 욕망이 실현되는 대가로 해를 입기도 했다.

특별한 현상 같지만 사실 누구나 이렇게 살고 있다. 삶이 혼란스럽게 펼쳐지고 우리의 의식 역시 혼란스러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인과관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명상을 통하여 의식이 정화되어 투명해지면 현실에 대한 인식 또한 투명해진다. 이 시기 그 어느 때보다 내 의식은 맑고 투명했다. 그만큼 놀라울 정도의 ‘동시성’ 체험들이 일어난 것이다.

고향 여수에 돌아오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나는 돌아왔다. 하지만 집 나간 탕아가 부모의 품에 다시 안기듯 푸근하고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수 내 고향으로의 귀환은 필연이었다.

고향의 푸근함 속에서 비로소 난 안정을 찾았다. 객지 생활은 자유로웠지만 항상 뿌리 없이 떠도는 것만 같은 공허함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소풍 갔던 장소를 아들이 그대로 소풍을 가고, 어렸을 때 내가 참여했던 축제에 아들 역시 참가하는 걸 보면서 아들을 통한 윤회를 실감했다. 그렇게 멀리 떠나고자 했지만, 나는 결국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생이란 그런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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