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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여수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려고 합니까?

지역민, 70년 '빨갱이 낙인' 국회의원이 없애줘야
여순사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독재정권의 잔재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잡는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국회의원이 앞장 서야

  • 입력 2020.03.18 11:56
  • 수정 2020.03.18 16:45
  • 기자명 양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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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제 소설가

편집국장님, 저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엘리트 대의민주주의 한계와 이를 보충할 시민 권력에 대해 국장님과 계속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여수 지역구 후보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이들은 왜 여수를 지역구로 국회의원이 되려는 걸까요.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모두 예비공약에 여수 현안 문제와 미래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자신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품처럼 전시해놓은 공약을 보고 있자면, 이들을 선택하면 지역문제 해결을 통한 발전이 담보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게 선거운동이라는 거겠지요.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나, 메시아를 자처하여 시민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은 매양 같은 모양새죠.

지난 2018년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서 헌화 분향하는 시의원 모습

여수 출신인 저 역시 21대 국회의원 여수지역구 예비후보자들에게 행여나 하고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수의 집단그림자를 양지로 끌어내주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여수 집단 페르소나(persona)를 올바로 인식할 국회의원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그림자를 인식하고 의식화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입니다. 그 때문인지 여수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 중, 지금까지 집단그림자를 제대로 들춰보는 의원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저 피상적이고 상투적이며 지역구 관리차원에서 행사에 참석해 요식적인 인사말 따위나 남발하는 모습만 숱하게 목격했을 뿐입니다.

개인에게도 열등감이라는, 의식하지 못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듯이 사회나 집단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는 열등한 인격으로 치부되어 들키지 않으려 숨기는 부분입니다. 이런 그림자는 누가 건드리면 마음속에서 심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심하면 정신분열 현상으로 나타나며 사회적으로는 지역이나 집단갈등으로 나타나죠. 대의 민주주의에서 이런 지역 그림자를 끄집어내어 올바로 인식해내고 양지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사람이 바로 지역 국회의원입니다.

칼 마이던스가 본 여순사건 (네이버 제공)

그럼 이제 여수의 집단그림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초대정부 이승만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부까지 일관되게 절대악으로 규정한 좌익 그림자입니다. 이들은 극우 군사독재 파시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빨갱이라는 절대악을 조작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좌익이며 그 대표 도시로 여수를 선택하여 봉인해 왔습니다. 그들이 조작해놓은 절대악은 약 삼십만 명으로 추산되는 보도연맹 학살로 이어졌죠. 이것이 여수의 집단그림자입니다.

집단그림자는 여수 시민들에게 대를 이어 내려왔습니다. 꼭꼭 숨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수에서 중고교를 다니는 10대를 붙잡고 1948년 10월 여순학살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시민 학살을 마음껏 자행한 그 사건에 대해 들려줘 보십시오. 타 지역 학생들과 달리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들에게 여순사건을 다루는 유투브 극우방송을 들려줘 보십시오. 여수시민은 빨갱이었다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 속에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림자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인식의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지역 주민이나 지역 국회의원 모두 그저 회피로 일관합니다. 단지 학살 당한 시민들의 유가족만이 외롭게 울부짖어왔을 뿐입니다. 그 결과 지난 1월, 간신히 여순사건 고(故) 장환봉 재심무죄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여수 정치인들은 무얼 했는지,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묻고 싶군요. 누구 말마따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과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하는 강창일 의원

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한 강창일 의원은 그간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습니다.

지난 3월 2일 20대 국회 임시회에서 강 의원은 과거 노무현 정부가 발족시킨 과거사진실화해의원회를 이명박 정부가 중단시킨 일을 지적하며 “분열 극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이 먼저 밝혀져야 한다”고 역설 했습니다.

또한 제주 4.3학살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성도 강조했는데 아직까지 여순사건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심의까지 거쳤는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여상규 법사위원장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여순특별법을 통과시켜 주기를 부탁하고 또 부탁하였습니다.

제주 출신이며 제주가 지역구인 강창일 국회의원은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고향의 집단그림자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할애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국회의원이 된 까닭은 과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수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중 지금껏 국회에서 여순사건에 대해 발언한 의원은 본 적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과거에 의한 현재 그림자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발전을 담보한다는 것일까요.

이참에 21대 국회의원 여수 지역구 예비후보자들에게 물어보죠. 무엇 때문에 여수를 지역구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합니까? 국회의원이 된다면 여수 집단그림자를 전 국민에게 인식시킬 자신 있습니까? 다시 물어 보겠습니다. 여순사건이란 명칭은 사건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단순한 행정적 명칭에 불과합니다.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 Ⓒ양영제

여러분들은 여순사건의 성격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북한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의 빨갱이 반란입니까, 아니면 미국의 남한점령에 대한 반식민지 민족저항이자 이승만 반민족독재정권에 저항한 시민항쟁입니까?

그도 아니면 단순히 국가공권력에 많은 시민이 희생당한, ‘불행한 과거사’에 불과합니까. 이런 물음에 명확히 대답하기 꺼려지거나 아니면 제대로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사건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뭉뚱그려 부르고 싶습니까?

편집국장님, 저는 21대 국회의원 여수지역구 후보자 중 유족으로 자처하면서도 항쟁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아직도 절대반공을 절대선으로 알고 절대반공에 방해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친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태도가 혹여 극우 보수유권자 표를 의식한 정치적 감각 때문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여순사건은 단지 불행한 지역 과거사가 아닙니다. 정당하지 못한 이승만 반민족 친일파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 도구로 썼던 절대반공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 탄생을 예고한 한국 현대사의 중심역사이며, 이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만큼이나 잔인한, 반인륜 범죄사건입니다.

따라서 여순사건의 성질을 제대로 정립하고 국회에서 특별법으로 입법화하여 깊이 있게 다루지 않으면 집단그림자는 우리 세대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림자가 한 개인의 인격을 분열시키고 이상행동을 야기시키듯, 집단 그림자도 지역을 분열시켜 갈등 반목을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데, 국장님도 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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