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민주주의는 몇 점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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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민주주의는 몇 점이나 될까요
  • 양영제
  • 승인 2020.03.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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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된 다이아몬드가 내전을 불러온 시에라리온, 엑스포 개최 후 마구잡이 개발이 시작된 여수의 모습과 닮아
민주주의로 코로나19를 극복한 대한민국이지만 여수의 민주주의는 이에 훨씬 못 미쳐
시민단체활동이 시민권력으로 성장해야 대의민주주의 한계 극복해
양영제
소설가 양영제

자산공원에 올라갔습니다. 준전시 상황이라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인지 레일바이크는 멈춰섰고 관광객으로 붐비던 해상공원도 썰렁합니다.

피어나는 꽃들이 무참해지는 코로나19 봄날 여수입니다. 그래도 오동도가 떠 있는 여수 바다는 눈에 푸른 물이 들도록 아름답습니다. 엑스포 공원이 보입니다. 원래 여수역은 지금의 엑스포공원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산도시 여수를 관광도시로 탈바꿈시킨 계기가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죠.

그 옆은 여수엑스포가 열린 행사장입니다. 저 자리에는 본디 귀환정 쪽방촌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수자원이 고갈되어가자 여수를 다른 방법으로 개발, 발전시킨다는 명분을 이기지 못한 귀환정 사람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내주고 뿔뿔이 흩어진 곳입니다.

수산도시 여수는 예로부터 수자원이 풍부하여, 초등학생 시절이면 친구들과 지금의 해양공원에서 대나무 낚시로 감성돔을 잡곤 했습니다. 바닷물도 매우 맑았습니다. 물속에 고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맨 눈으로 다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여수가 공단이 들어서고 공해물질이 배출되자 덩달아 어족자원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여수는 세계박람회 유치에 사활을 걸고 관광도시라는 이미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죠. 도시의 천연자원을 재발견하고 아름다운 해상 자원을 개발하여 관광객을 성공적으로 불러 모아, 지금은 국민들이 여수를 수산도시가 아닌 관광도시로 여기고 있습니다.

편집국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자산공원에서 여수를 내려다보니 자꾸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스틸컷

영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부아프리카 서남부 바닷가를 접한 국가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됩니다. 다이아몬드를 본 외국의 검은 자본이 시에라리온에 손을 뻗고 이는 내전이 발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내전은 인간성을 말살시킵니다. 실제 일어난 비극을 그린 이 영화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개발되어도 국민들은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굶어죽어갑니다. 이를 두고 1993년 영국 랭카스터대학의 리처드 오티(Richard Auty)는 ‘자원의 저주’라고 칭했습니다.

자원의 저주란, ‘천연자원이 발견된 나라들이 그렇지 못한 나라들보다 경제 사회적 발전이 뒤쳐진다’는 내용의 이론입니다.

천연자원이 개발됨으로서 제조업이 무너지는 일명 네델란드병이라고도 하죠. 세계사적 예로는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서 막대한 금은보화를 강탈한 스페인이 영국보다 부유해졌지만 종국에는 몰락했고, 한때 석유생산으로 흥청망청했던 베네수엘라가 지금은 고층 빈민가에 살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국민들이 더 많은 나라로 전락한 것도 자원의 저주현상입니다.

SBS 8시 뉴스 방송캡처. 자원이 풍부한 베네수엘라에서는 독점권력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국가의 부가 빠져나가고 시민은 굶어죽는다

그러나 자원의 저주가 일어나 공동체 사회가 무너져도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독점이득은 무너지는 공동체 사회에서 순환하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가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죠. 이러한 검은 자본은 반드시 권력과 손을 잡습니다. 아프리카 콩고, 나이지리아에서는 석유자원이 개발되자 외부 검은자본이 권력과 손을 잡고 자원을 빼내가는 바람에 내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저주입니다.

자원의 저주 현상은 국가 전체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역 내 토착권력과 손잡고 개발된 천연자원을 누군가 부당한 방법으로 독점하면 그만큼 피해를 당하는 숱한 지역민이 발생합니다. 대체적으로 천연자원개발로 인한 이득은 지역공동체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사북은 석탄수요가 줄어들자 카지노 관광지대로 개발되어 수많은 외지인 전당포만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지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지역 활성화가 아닌 탕진된 심신으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수를 생각해 봅니다. 가령 여수 해상케이블카 운영을 살펴봅시다. 이로 인해 얻어진 이득이 공동체 사회로 얼마나 환원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광개발로 얻어진 이득이 지역에 환원되고 시민들 살림에는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포지구 개발비리 또한 그렇습니다. 공유지 개발은 지역민의 피해만 양상 할 뿐이고, 혜택은 받지 못한 시민들은 공유지 비극의 다른 면입니다.

주인 잃은 그네.
주인 잃은 그네. 모두가 함께 즐기는 놀이터를 개인사유화 할 경우 결국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된다

‘공유지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서로 맞지 않을 때 개인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게 되면, 경제 주체 모두가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지의 검은 자본은 반드시 지역의 행정권력과 손을 잡습니다.

지역의 행정권력은 공유지를 개발하고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사유화 시키지만, 이로 인해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다와 공기처럼 사적으로 나눠서 관리될 수 없는 공적문제가 발생하여 지역공동체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득을 독점하는 소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는 국가에서 독점 이득은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한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죠.

이런 자원의 저주와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오로지 민주주의뿐입니다. 민주주의를 정치형식에만 치우쳐 생각하기 쉽지만 아테네에서 발생한 민주주의 근간은 자원균등분배 때문에 생겨난 정치제도입니다. 아테네 인근에서 은광이 발견되자 시민들이 은광개발로 얻어지는 이득 분배와 쓰임을 논의하고 투표로 결정하게 된 일이 민주주의 발생의 기원입니다. 즉 민주주의는 정치형식문제가 아니라 시민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골고루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 탄생한 정치제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기근이 들어도 굶어 죽는 시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국가 보츠와나(Republic of Botswana) 경우입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불리는 보츠와나는 1980년대 초 아프리카 수많은 국가에서 기근이 발생했을 때에도 단 한명도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식량자원이 어느 누구의 이득을 위해 독점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정치권력이 시민을 먹여 살리는데 통치력과 행정력을 총동원한 덕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입니다.

마스크를 구매하는 여수시민

민주주의의 힘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각 나라의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실험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편집국장님과 말씀 나누겠습니다만, 민주주의 발전여부에 따라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각국 정부 방식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우리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 나라뿐만 아니라 국내 각 지방자체단체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이 달리 나타날 것입니다.

하여튼 나라가 코로나19 때문에 준전시 상태라고 하는데, 이때 지방기초단체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지역민주주의 지수가 선명히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자원을 갖고 있는 과거 여수의 민주주의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수엑스포 관광개발 비리로 인해 민선 시장과 행정 관료들이 줄줄이 구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지방행정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할 시의원도 함께 구속되었으며 지역 국회의원 연루설까지 나도는 판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여수는 ‘비리 백화점’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비해 여수 민주주의는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을까요. 현재 개발 중인 웅천 영화세트장과 남산공원 등등에 자원의 저주나 공유지 비극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는가요. 검은 돈은 반드시 행정 권력에게 귓속말을 하고 행정 권력은 이를 의회 권력에게 속삭입니다. 상호 감시견제하기 위해 나눠진 권력은 상호 나눔 때문에 가까워집니다. 대의민주주의에 의해 다수로 선출되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서로 가까워지면 시민은 다음 선거 때까지 그저 손놓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이 심판인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를 잘하자는 구호가 나오지만, 권력의 단맛은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을 선출해 놓아도 쿠키 몬스터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고 그것이 보편적 인간의 속성이고 권력의 속성임을 압니다.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변질되지 않는 공적인간을 선출하겠다 마음먹지 말고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 권력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다행히 여수는 시민단체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아직 이것이 시민 권력이라고 불릴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시민단체활동이 시민권력으로 성장할 때,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민민주주의가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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