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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인연들

'춤추는 정원' 연재(21)
좁은 길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정원, 넓은 정원을 맞닥뜨리고 경제성을 따져보는 방문객이 대다수
정원의 풀과 꽃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방문객과 진정한 '친구' 가 돼

  • 입력 2020.04.12 10:00
  • 수정 2020.04.25 17:08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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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울에 사는 친구가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정원에 놀러온 적 있다. 배낭을 멘 아이들은 큰 잠자리채를 손에 들고 있었다. 대문으로 들어선 남자아이들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꽃밭의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대도시에서 자라는 남자아이들이 저렇게 꽃에 코를 박고 보고 았다니.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줄 모르고 꽃을 보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알고보니 남자아이들은 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속의 ‘벌레’들을 보고 있었다.

때는 꽃이 만발한 초여름이었는데 아이들은 꽃은 보지도 않고 2박3일 동안 벌레만 보고 갔다.

정원의 ‘반전’

산골짝 깊숙이 숨어 있는 정원이지만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 표정이다. 정원까지 들어오는 험한 길에 한 번 놀라고, 그 험한 길 끝에 예상치 못한 ‘큰 정원’이 있어 다시 한 번 놀란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정원은 아니지만, 좁은 길을 따라 차를 몰고 오는 동안 기대치가 확 떨어진 상태에서 생각보다 큰 정원이 눈앞에 나타나는 ‘반전’이 때문에 더 놀라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정원은 꼭꼭 숨어 있어 외부에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대문에서 내려와야 정원의 하나씩 모습이 드러난다.

언젠가 정원 전문잡지 기자가 ‘정원을 내려오는 동안 세 번 감탄했다’면서 우리 정원에 ‘삼탄정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적 있다. 취재를 위해 한껏 추켜세워준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은 최고였다.

정원으로 들어오는 좁고 험한 길은 사람들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은 좁은 길에 놀라서 두번 다시 오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혼자 씩씩하게 방문하는 여장부들도 있다.

당연히 우린 오랜 도반처럼 금세 친구가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

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모든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회에는 상대방의 취향이 반영되고 또 취향은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원에 관한 대화는 흥미롭고 즐겁다. 특히 처음 정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우리 정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제일 궁금해한다.

‘이 골짜기에 왜 이리 큰 정원을 만들었을까. 펜션도 아니고 찻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수련원이나 센터도 아니고. 차도 들어오기 힘든 이 골짜기에 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목적으로 정원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많은 질문을 한다. 특히 우리 정원의 ‘경제성’에 관한 질문이 많다. 보아 하니 땅도 넓고 정원 유지비도 꽤 들어 갈 것 같은데 그렇다고 돈이 나올 만한 구석은 보이지 않고, 그러다보니 대체 이 정원을 어떻게 꾸려가는지 궁금한 것이다.

우리가 특별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나서서 ‘처방’을 내놓는다. 벌을 키워 꿀을 만들어 보라든지, 무슨 특용작물을 키워 보라든지, 심지어는 계곡이 좋으니 참게나 미꾸라지 등을 키워 보라든지.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난감할 때도 종종 있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질문이 꽃과 나무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중요시 하는지 정원을 가꾸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식물들의 이름을 물어 본다. 이름을 알아야 그 꽃과 식물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눈앞의 꽃과 나무를 ‘진짜로’ 자세히 보지 않는다.

특히 소의 ‘지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원에 와서도 오로지 ‘말’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정원을 자신들의 ‘추상적 관념’으로 보면서 ‘평가’내리기에 바쁘다.

눈앞에 글자가 있어도 읽지 못하는 것과 똑같이 눈앞에 자연이 있어도 접촉을 못하는 그들은 나는 ‘자연맹’이라 부른다.

그런데 가끔 식물을 자세히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예쁘게 핀 꽃 앞에서 어린애처럼 즐거워하고 정원 구석구석 살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사람 보석’을 발견하는 것 같아 환희롭다.

이렇게 정원을 통해서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겁다. 한때 유행한 ‘끌어당김의 법칙’처럼 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이렇게 깊숙하고 험한 곳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오는 소수의 사람들과 정원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것, 나의 은밀한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길만 넓어지면 우리 정원이 정말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게요, 길이 넓으면 정말 좋겠지요” 하고 대답하지만 내심 생각한다.

‘길이 넓지 않아 좋은 점도 있어요. 주변이 개발되지 않아 깨끗하고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지 않아 조용하고 여유로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좁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만 찾아와서 좋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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