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정원에서 죽음을 철학하다

'춤추는 정원' 연재(22)
정원에 나타나는 지렁이와 뱀을 잡으며 생명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아
그러면서 어릴 적 겪은 죽음의 기억 하나둘 떠올려.. 죽음은 답답한 에고에서 해방되는 것

  • 입력 2020.04.25 09:40
  • 수정 2020.04.26 07:16
  • 기자명 환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핏, 멀리서 바라 본 정원은 평화 그 자체다. 그럼 평화로워 보이는 정원에서 어떤 일을 할까? 정원을 가꾸기 전 나는 땅 한 평 가꿔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그저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우는 평화로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원 일은 항상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어찌 보면 충격적인 작업의 연속이었다.

우리 정원과 텃밭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렁이나 벌레가 유난히 많다. 무심코 호미질을 하다보면 반 토막 난 지렁이가 발견되기 일쑤다. 그 상태로 꾸물대는 지렁이를 보면 신음소리가 나오면서 몸서리가 처진다.

가끔씩 나타나는 뱀 또한 가장 징그러워하고 무서워하는 동물이다. 뱀이 나타나면 나는 자인에게 죽이라고 요구한다. 오랫동안 불교수행을 해온 자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생만은 피하려고 이리저리 노력하지만 난 뱀의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며 과감하게 뱀을 죽일 것을 요구한다.

 

죽음은 ‘관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봄이 되면 벌집에 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 벌집들이 더 커지기 전에 스프레이 살충제를 마구 뿌려서 죽여야 한다.

한술 더 떠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가을에는 무서운 말벌들이 녹차밭 여기저기에 집을 짓는다. 결국 자인은 혼자 완전 무장을 하고 들어가 차나무를 가지치기 한다. 평화로운 차밭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전쟁터 같은 상황으로 변해 버린다.

식물들하고는 또 어떤가. 잡초는 여리고 예쁜 꽃들보다 훨씬 생명력도 강하고 그만큼 억세다. 뽑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질긴 생명력이 손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된다. 뿌리째 뽑혀 올라올 때 느끼는 승리의 쾌감도 잠시, 가끔씩은 꽃이 되지 못한 그들의 운명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 난 잡초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

차밭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가을 어느 날, 그날도 차밭에서 혼자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다. 주변엔 가을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간간이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여름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차밭 주변의 칡넝쿨들이 숨죽어 있었다. 평화로웠다.

순간, 죽음이 평화롭겠다는 ‘실감’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마치 깨달음처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직관적 느낌이었다.

‘아, 죽음이 이런 것이겠구나, 휴식 같은 느낌. 만약 생명에 죽음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칡넝쿨이 죽지 않고 주위 생명을 집어삼키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죽음이 없다면 생명은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는 통찰이 일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단순한 진리인가. 생명에 대한 긍정은 죽음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우린 왜 이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걸까.

죽음은 생명의 다른 현상일 뿐이다. 우리의 관념으로 보면 죽음과 생명이 분리되어 있어 보이지만 죽음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생명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은 우리의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머리로만 이해되던 지식이 온몸으로 ‘증득’되는 체험은 정말 환희로웠다.

어린 시절 죽음의 트라우마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아홉. 아직 젊은 나이이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3남3녀 중 막내인 나를 붙잡고 많이들 우셨다.

“에구 불쌍한 것. 사람이 살면서 49수를 넘기는 것이 제일 어렵다더니 니 아버지가 기어코 49수를 못 넘기고 세상을 뜨고 말았구나. 아이구, 이 어린 것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꼬.”

장례식 내내 이웃과 친척들은 나를 붙잡고 우는데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죽음을 인지할 나이이지만 이상하게 슬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내 옆에 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졌다니. 대체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죽음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뒤 조금은 이상한 의식 상태를 체험했다. 서너 달 동안 밤마다 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상태에서 귀신들을 보았다. 조상님 같기도 한 귀신들은 밤만 되면 집 뜰이나 방을 돌아다녔다.나는 잡아 먹힐까봐 눈을 꼭 감고 잠자는 척을 했고,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죽음의 세계는 내 옆에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일상의 모든 곳에서 난 죽음을 보았다.

꿈 많고 발랄한 사춘기 시절에도 늘 죽음만 생각하면 공포와 허무가 밀려와 감당하기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 명상을 하고 수행을 하며 살아도 근본적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언젠가 정신과 의사로부터 최면요법을 받은 적이 있다. 놀라웠다. 나의 무의식에는 단순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내 표면의식이 기억하지 못한 충격적인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면으로 들어가서 본 나는 태어나자마자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심한 백일해 기침으로 백일도 못 되어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지만 어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겨우 살아난다.

서너 살 무렵에는 여수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였는데 어린 내가 아무런 제지도 안 받고 몸이 퉁퉁 부은 시체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여섯 살쯤에는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통나무 위에서 놀다가 빠져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도 있다.

이 모든 기억이 표면의식에서는 사라졌지만 의식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지금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내가 유난히 수행의 삶에 경도되는 것도 아마 이런 어린 시절 죽음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원을 가꾸면서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 대하자 점점 죽음과 친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죽음이 허무가 아니라 또 다른 에너지 상태로의 이동일 것이라는 느낌. 죽음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에고에 답답하게 갇혀 있던 내가 해방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다.

지금 당장 죽게 된다면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원 속에서 더욱 더 죽음과 친숙해지고, 죽음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마치 과일이 익어 자연스럽게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자연 속으로, 생명의 근원 속으로 언젠가는 사라지리라.

 

 [계속]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