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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읽기 『사회계약론』

루소는 무엇을 원한 걸까?

  • 입력 2020.04.29 10:42
  • 수정 2020.04.30 08:13
  • 기자명 정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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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김은송(TCS국제학교)의 북스토리

내가 이책을 읽게 된 이유는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사회 계약론이 그냥 스쳐 지나간 것 같아서 궁금했다.

책이 외국 서적이라 해석본이 어렵기는 했지만, 영상들을 찾아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책을 읽으며 루소가 쓴 책들을 한 번 더 읽어 보고 싶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일반불평등 기원론, 일반의지설 등> 이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조금 더 심화 적으로 본다면 내가 정말 참정권을 가진 성숙한 시민이자 성인으로서 판단력 있고, 능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Q1.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오면서 다양한 방식의 정치체제를 구현하였고,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그러한 다양한 정치체제의 형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 현재 우리가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간주하는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형태, 내용 등은 어떠한 것인가?

A. 인류가 계약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오면서 정부의 형태에는 민주정치, 귀족정치, 군주정치(왕정)이 있었다. 그리고, 농경사회가 지나가고, 산업사회가 지나가고, 디지털시대가 찾아왔다.

그러면서 정치체제도 많이 바뀌었고, 흥망성쇠를 반복한 끝에 우리는 현재 민주정체제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라고 간주하고, 민주정치에 정착했다.

민주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입헌주의 성격을 띤 자유주의와 사회적 소수자나 개인의 평등한 인권 보장을 전제해야 한다.

이 사회계약론에서 표현한 민주 정치체제를 보면 루소는 민주정치가 갖춰지기 위해서는 '인민이 집결하기 쉽게 아주 작은 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민주정체는 각 사람들의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가가 너무 크다면 간접적인 민주정치는 이루어질 지 몰라도 직접적인 민주정치는 일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정치 체제에서는 인민 정부인만큼 각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이 많이 생성되기 때문에 내전과 소요에 휘말리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곳에 머물며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정치적으로나 어떤 분야에서든 형태의 변화를 자향하고, 어떠한 일에 대한 용기와 경계를 요구한다.

나는 그래서 이런 정치 구조 안에서 우리 시민들이 힘과 의연함을 겸비해야 하고, 민주정치에 대해 좀더 알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2.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사회에 대해 상상하자. 루소는 자기 나름대로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사회를 구상하고 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인가?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보도록 하자.

A. 루소가 구상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발전으로 인해 시대의 개별화 되고 파편화된 시대를 보며 그 시대 사람들이 필요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공동선이었다.

즉, 사적(개인적)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을 바라보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적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중시하는 보편적의지를 가질것을 권고한 것이다.

나는 루소가 주장한 내용들이 100% 맞는다고 확신하지는 않지만, 나 또한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본래 타락하여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을지라도 모두 개별적 의지를 향해 움직인다.

그래서 결국 우리 사회의 결속이 느슨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마땅히 누려야할 구성원의 자유가 파괴된다. (지금은 진정된 것 같지만 코로나 사태를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만을 중시하였고, 그결과 상태가 악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의 권리, 돌아다닐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였다.)

우리의 삶속에서 종속과 노예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각자의 개인적의지를 계속해서 추구하다 보면 암묵적으로 종속과 노예화가 우리를 다시 점령할 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루소의 입장이 전체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 또한 있지만 나는 공동선을 중시해야 우리사회가 더욱 청렴하고, 질서정연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이 똑똑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의식을 가진 적극적인 시민이 된다면 보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뚜렷한 주관 없이 흘러가는 대로 여론에 휩쓸려 살아가다 보면 우리 사회는 특정 집단에 치우치거나 정치적인 회합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Q3. <사회> 교과의 후반부 XI, X 단원은 ‘정치생활과 민주주의’, ‘정치과정과 시민참여’에 대한 단원 이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정치’의 발달사 및 특징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과서적 이해를 염두에 두고서 루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민주주의는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A. 루소 이전의 로크나 홉스가 주장한 사회 계약론은 개개인이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국가나 정부에 양도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루소가 봤을 때 상당히 권리 제한적이고, 개인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루소는 자신의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 자아, 의지를 가진 집단 가상 단체를 생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이다. 국가란 가상의 정치체이다. 독립된 기구가 아니다. 개인의 연합체이자 확장된 개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루소에게는 자유와 권리는 개인이 국가에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에게 양도하는 것이 었다. 그리고, 루소는 직접 민주정치체제를 기반으로 시민 전체의 정치 참여를 추구 했다.

Q4.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 대의제 그리고 대의제민주주의, 루소는 3부17장 ‘대의원 혹은 대표자에 관하여’에서 “인민은 대표자를 갖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인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적고 이TEk. 이것은 대의제에 대한 루소의 반대를 드러내는 언명이며, 그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를 의미한다. 주권은 양도되어서도 안되며, 대표될 수도 없다는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루소의 언명은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생각해 보자.

'인민은 대표자를 갖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인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의 언명은 대의제에 관한 반대를 나타내는데, 3부 17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주권은 양도 되어서는 안되며, 대표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먼저 우리나라는 대의제이다. 시민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토의하여 자신의 생각을 모두 나눈 뒤 대통령을 뽑거나,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투표를 통해 시민의 대표자를 뽑고, 그 대표자들이 모여 정치적 결정을 한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사실상 힘들다. 현대에 접어 들면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구가 증가하였고, 세계화로 인해 사람들이 상주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즉 우리는 그리스 로마시대와 같이 성인 남성모두가 광장에 모여 토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대의제 또한 단점이 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대표하고, 그 대표자가 정치활동을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시민의 의사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모여 회의하는 직접민주제에서는 시민의 의건이 A라면 정치적인 결과에서도 A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대의제에서는 시민의 의견은 A였지만 대표자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에서는 B로 변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상호 보완하여 중립을 찾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Q5. 3부 13장 ‘주권은 어떻게 하여 유지되는가’에서 루소는 신민과 주권자라는 말이 동전의 양면이며, 두 개의 개념은 시민이라는 하나의 말 속에 표현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정치체의 본질은 복종과 자유가 합치되는데 있다고 말한다. 루소가 상정하는 시민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루소가 4부 8장의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시민종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

A. 루소가 '정치체의 본질은 복종과 자유가 합의되는데 있다고' 발언한다. 이 문장의 의미는 이런 것 같다. 그것은 우리는 자유를 보고 살아간다.(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고, 법률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질서는 망가질 것 이고, 곧, 우리의 자유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하는 신민이자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주권자이기 때문에 시민은 이 두가지 모습을 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 루소는 기독교를 굉장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이 느꼈다. 일단 루소가 생각하는 시민종교가 갖는 의미로는 시민종교를 가지는 것이 성도끼리 마음에 통합은 주겠지만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좋은 점이 없다고 본 것이다.

크리스천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는 하나님 나라에 의미를 두고,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나그네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루소는 이 점에서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아 사회적 유익이 없는 종교라면 추방당해야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사회적 유익이 없다 함은 사회적 통합을 깨는 것, 인간을 그들 자신과 대립 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루소는 시민종교를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편집자 소개글>
주요 주제 : 정치, 공동체, 국가의 발생, 민주주의, 인간본성
<여수넷통뉴스>와 <휴먼교육연구소>가 힘을 모아 우리 지역의 청소년이 학교교육과정과 연계된 동서고금의 명저를 읽고, 독서대화와 토론, 글쓰기를 통해 창의적이고 실천적인 지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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