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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최대 위기

정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터널 소식에 10년간의 노력 물거품
정원에 대한 '집착'이 새로운 고통을 불러와

  • 입력 2020.05.13 09:10
  • 수정 2020.05.13 10:51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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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동적 드라마에는 ‘위기와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스토리가 존재한다. 마냥 순탄하기만 할 것 같은 우리 정원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 적 있다.

2010년 초봄, 정원 산책을 하고 있는데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둘이 불쑥 들어왔다.

“사모님 얼굴 어디에 그렇게 많은 복이 붙어 있을까. 이제 사모님은 대박이 터졌네요. 돈방석에 앉겠어요.”

그러면서 옆구리에 둘둘 말아온 지도를 펼쳤다. 돌산을 관통하는 기존의 국도 17호선 2차선을 자동차전용도로 4차선으로 확장하는데 그 도로가 우리 정원을 관통하여 지나가고, 정원 뒤편으로 터널이 뚫린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로표시는 ‘명상의 집’이라는 간판이 있는 그곳 도로 한가운데를 정확히 가로질렀다.

다음 날,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찾아간 익산 국토관리청 공무원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미 모든 도로 설계가 다 끝나 시공사까지 확정된 상태였고, 도로공사에 거의 요식적 절차인 주민공청회 정도가 남아 있다고 했다. 뜬소문으로라도 이 골짜기에 도로가 뚫린다는 이야기를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동네 이장도 노인회장도 마을 사람 누구도 지금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직 이 지역 정치인과 그 주변에 기생하는 부동산 투기꾼들만이 알고 있었다.

당시 2012 여수엑스포가 확정되어 여수 전체가 개발의 분위기로 들떠 있던 시기였다. 우리 정원이 자리잡고 있는 돌산에도 제2의 다리가 건설되고, 곳곳에 새로운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부동산 업자들이 섬 전체를 돌아다녔다.

정원도 가꾸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 제법 자리가 잡혀가던 그때 마치 시샘이라도 하듯 정원을 초토화시키는 터널이 뚫린다는 말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인들은 보상을 많이 받아서 그 돈으로 다른 땅을 구해 또 정원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며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지만 10년 동안의 내 꿈과 열정이 담긴 이 정원은 결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버티기로 결심했다. 국가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시청 등 공공기관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정원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누구도 내 말에 공감하거나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집착으로부터 해방 그리고 자유

고민 끝에 나는 이 땅을 과감히 떠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땅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오히려 지금 이 정원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새삼 깨달을 뿐이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은 계곡이 있고, 정원 뒤편에는 긴 산책로가 있고, 무엇보다 어머니 자궁과 같은 편안한 에너지가 감도는 곳이었다.

정원이 내 인생 최대의 성취라고 믿고 행복에 들떠 있는 나에게 이사란 형벌과도 같았다. 매일 아침 설렘으로 충만했던 아침 운전은 이제 거의 울부짖음으로 바뀌어갔다.

“이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10년 동안의 내 열정과 노력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리고 깨달았다. 이 역시 집착임을. 사실 나름대로는 많은 집착에서 벗어났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별 것 아니지만 과감히 약사라는 직업도 던져 버렸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남편에 대한 집착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정원은 이미 나에게 너무나 큰 애정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정원에 대한 고통스러울 정도의 ‘집착’을 또렷이 보았고,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우주의 강력한 메시지를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고 정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새 땅을 마련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마음을 다지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새로운 도로계획에서 소외된 마을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로 도로가 우리 동네를 지나지 않고 비켜가게 된 것이다. 조금은 씁쓸했지만 어찌됐든 좋은 소식이었다.

이후 정원에 대한 내 사랑은 더욱 커졌지만 그만큼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큰 틀에서 보면 삶에는 우리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난다. 언제든 정원에도 내 열망이나 바람과는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내 머릿속의 예상된 ‘프로그램’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정원 최대의 위기에서 또 배웠다. 아,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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