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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광주 5월 여성들을 반추하다

11일 신기동 북카페 트립티서 오월여성다큐멘터리상영
김경자 감독과 다큐멘터리 출연자인 5월민주여성회 윤청자 회장 참여

  • 입력 2020.06.12 16:34
  • 수정 2020.06.15 11:57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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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동 북카페 트립티에서 다큐멘터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상영됐다

11일 오후 4시 신기동 북카페 트립티에서 오월여성다큐멘터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 전국상영회가 열렸다.

이번 상영회는 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 공모 사업으로 선정되어 열렸다.

상영회에는 김경자 감독과 영화 출연자이자 5월민주여성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청자 씨가 함께 했다.

1972년생 광주에서 태어난 김경자 감독은 1980년 당시 9살이었다. ‘억압에 순응하지 않는 삶’을 담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 김 감독은 그가 나고 자란 광주의 역사적 항쟁을 자연스럽게 작품 주제로 삼게 됐다.

 

시위대 맨 앞에서 가두방송을 이끄는 여성들.. 시민 참여 독려

다큐멘터리 장면

1957년생인 윤청자 씨는 다큐멘터리에서 ‘송백회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5.18운동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송백회는 1970년대 후반에 탄생한 광주지역 유일한 여성사회운동단체로 항쟁 초기부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학생단체와 시민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유인물을 만들고 성명서를 낭독하는 등 5.18 항쟁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송백회 회원들과 활동하다 카톨릭노동청년회에 들어간 윤 씨는 다시 이들이 전남대학교 안에서 조직한 탈춤반에서 탈춤을 배운다. 그들의 작품 속에 나온 ‘노동자도 인간이다’ 와 ‘우리가 바라는 내일은 공동사회 위에도 높은 얼굴 엎고 아래도 낮은 얼굴 없어’ 같은 대사는 윤 씨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곳에서 스물 세 살, 공장 노동자였던 윤 씨는 조합원들과 세발자전거를 타고 조선대와 전남대를 오가며 빵과 우유를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조합원들은 스스로 굶는 일은 있어도 시위대를 도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발포가 나는 날이면 여성들은 상처 입은 시위자들을 돕기 위해 즉시 헌헐하러 갔으며 재봉틀을 돌려 마스크를 만들어 시위대에게 나눠줬다. 신군부는 노조집행부였던 그에게 거짓말로 시민들을 선동했다며 몰아세웠다.

가두시위 맨 앞에서 확성기로 방송하는 사람들도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밤새 봉고차를 타고 광주 외곽을 돌면서 확성기로 시위 상황을 알렸다. 미리 준비된 대본도 없이, 현장 속에서 몸소 겪고 진실을 알려나갔다. JOC 외에도 제조업체와 들불야학의 여성노동자들 등 다양한 여성들이 5.18항쟁에 참여했다.

영상 속 한 여성은 “계엄군보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시체를 살피고 가족들에게 인계하는 일이 더 무서웠다”고 털어놓는다.

20일 새벽 “아들딸이 군인에게 잡혀서 죽어가고 있는데 뜨거운 밥을 목고 잠을 잘 수 있습니까”라는 이들의 호소는, 참상을 눈으로 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쏘아 죽이고 시체를 실어나르던 정부.. 6.25때보다 더 무서워

5.18 당시 국민장례위원회 소속되어 활동한 윤청자 씨가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광주시민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갔다. 그러나 계엄군이 투입되면서 상황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광주 시민들은 폭도라는 오해를 벗고 공격의 명분을 주지 않으려 25일 자진해서 무기를 반납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신군부의 무자비한 총격이었다.

당시 국민장례위원회 소속 윤청자 씨는 장례를 치를 천을 준비하기 위해 포목상으로 갔다. 그는 “포목상 주인은 돈을 받지 않고 천을 나눠주었다”고 회상했다. 여성들은 길거리에 널린 시체를 옮기고 장례를 치르며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시체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등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총기 사용법을 알려달라”며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워가려던 여성들은 계속되는 설득에 결국 돌아갔다.

윤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국민장례를 치르면서 최규하가 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전두환이 사죄를 하러 광주를 올 줄 알았으나 그는 이곳에 오는 대신 집단발포명령을 내렸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한 여성은 “왜 그렇게 (시위에) 나가셨어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광주시민으로서, 안 나갈 수가 없죠”

 

김현성의 노래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제목 따와

김경자 감독(오)과 다큐멘터리에서 증언자로 나온 윤청자 씨가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목은 ‘백석 시인탄생 100주년 기념음반’에 실린 김현성의 노래 제목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따왔다.

김 감독은 “역사책에서, 교과서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준 사람들’이라고만 표시된 광주의 여성들을 담고 싶어서”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윤 씨에게 5.18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헌법 전문에 5.18이 명시된 것도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1980년 그날 이후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그는 “역사를 품은 시대가 가져야 할 아픔”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시절 5월 광주에 있는 여성들은 현재도 제주4.3, 강정과 노근리를 오가며 타지역의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

윤 씨는 지난 2017년 10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5.18 등 민중항쟁정신 헌법전문수록을 위한 발족식>에도 다녀왔다.

그러나 아직도 윤 씨는 광주 망월동 묘역을 가보지 못했다. “5.18이후 내 삶은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라는 그는 지난 40년간 거대한 역사에 짓눌려 한 번도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마음 한켠을 짓누르는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 때문에 광주를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

영화에서 여성들은 5.18민주화 운동 당시 느꼈던 두려움과 고통을 털어 놓는다. 열흘 가까이 지하실에 갇혀서 간첩몰이와 취조를 당하는 여성들은 우리가 아는 학생군, 시민군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신기동 트립티에서 열린 오월여성다큐멘터리 전국상영회 모습

최근 5.18 당시 광주여고 3학년생이던 주소연 씨의 일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는데 이 역시 5월 민주여성회의 성과다.

도청 취사반에서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짓던 주 씨는 일기에 5.18 관련 신문기사를 오려붙이고 그 아래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남겼다. MBC는 지난달 14일 5.18 40주년 특집 프로그램 ‘나는 기억한다’ 에 관련 내용을 방송했다.

김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과거 아픔이 치유됐다는 윤 씨는 “오늘 같은 대화 자리는 피하고 싶었지만 다시는 이런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여겨 참가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전두환이 처벌받지 않고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는 현실에서 윤 씨는 싸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윤 씨의 말마따나 “지금까지 총을 든 남성들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봤다면 이제는 함께 광주를 지켜낸 여성들의 숨은 노력을 이제 바라봐야 할 때”다.

한편 12일에는 학동에 위치한 여수여성인력개발센터가 내부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월여성다큐멘터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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