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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빗발' 피로 물든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25일 오후3시 ‘한국전쟁기(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 민간인 학살’ 토론회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지원 조례제정 나서는 박성미 의원
조속한 피해보상과 지자체 미군폭격 희생자 위령탑 세워야

  • 입력 2020.06.23 11:36
  • 수정 2020.06.23 13:06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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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인 이춘송씨는 1950년 8월 3일 이야포 해변에 350여명이 탄 피난선을 미군폭격기 4대가 기총소사 당한 피난선을 스케치한 그림

미군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대량학살이 발생한 전남 여수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25일 오후 3시 여수시의회 소회의실에서 ‘한국전쟁기(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 민간인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린다.

 

한국전쟁 70주년, 외면당하는 지역의 아픈역사

두시간 동안 진행되는 토론회에는 여수역의 저자 양영제 소설가와 김병호 전 지역사회연구소장, 엄길수 <여수넷통뉴스> 대표, 박성미 시의원이 나선다.

양영제 소설가는 ‘인권회복을 위한 미군기에 의한 안도 이야포 학살 성격 치유’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에 나선다. 또 지정토론자로 나선 엄길수 대표는 '이야포 사건 보도 경위 및 지역 언론의 역할'을 이야기 한다. 김병호 전 소장은 ‘잃어버린 민간인 학살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말한다.

박성미 의원은 "이춘혁 어르신을 뵈었을때 사랑하는 부모님과 트라우로 죽은 누나, 미국백악관 까지 가서 항의집회했던 똑똑한 동생을 잃어 버린 힘없는 노인의 평생소원은 명예회복이다"면서 "8월만 다가오면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다. 지역의 미군포격사건이 노근리 사건처럼 공론화 되어 많은 분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담회와 조례제정을 통해 보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토론회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 안타까운 건  어르신이 미군폭격사건이 과거사나 여순사건과 전혀 성격이 틀림에도 유족이 적어 거기에 묻어서라도 우리 소리를 들려달라고 하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라고 덧붙였다.

이춘혁 어르신이 준비해온 서류를 검토중인 주철희 박사는 "오랜시간 잘못 말했다가는 빨갱이로 몰리는 반공이데올로기가 섬사람들을 침묵케 했다"라고 말했다.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는 "당시 안도라는 섬 속에서 엄청난 폭격을 당한 어마어마한 사건인데 40년 동안 안도 사회에서 회자되지 않은 이유는 그 과정에서 안도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왜 안도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안나왔나? 그건 우리나라의 시대 상황때문이다"라며 "분단이라는 반공이데올로기와 박정희라는 군사독재체제에서 이것을 잘못 말했다가는 빨갱이가 되어버리는 사회 그래서 안도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다"라고 부연했다.

 

박성미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조례제정 나설 것"

박 의원은 정부를 향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례제정’을 촉구해 왔다. 이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지원 조례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간담회을 통해 의견수렴에 나선다.

여수시의회는 지역의 아픈 역사인 이야포, 두룩여(문여), 여자만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해 왔다. 작년 7월 제194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박성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야포 및 두룩여(문여) 사건 진상규명 촉구 건의안’이 원안 채택됐다. 하지만 2006년 진화위에서 진실규명을 받았는데도 그동안 지자체는 여수지역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외면해 왔다는 질책을 받아왔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2006년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호남지역 미군관련 희생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바 있다.

당시 진화위는 ▲ 사과나 피해보상을 위한 미국과 협상할 것 ▲ 국가 사과와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령제 사업 지원에 나설 것 ▲ 부상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마련을 권고한 바 있다.

지난 19일 40년간 이어온 소송자료를 본지에 가지고와서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이춘혁 어르신의 모습

부산시 금정구 수림로 SK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야포 민간인 희생자 이춘혁(86세)씨는 40년 동안 피해보상 및 명예회복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보상에 대한 시효를 넘겨 재판에서 패소했다. 이후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19일 여수를 찾은 이춘혁씨 어르신은 70년 전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1950년 8월 3일 350여명이 탄 피난선이 안도 이야포에서 미군기에게 기총소사를 당했다. 총에 맞아 150여명이 죽었다. 이후 시체들을 배에다 다 싣고 기름 붓고 불태웠다. 송장이 타면서 3일간 불이 붙었다.

우리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에서 쌀 배급 주고 배타라고 해서  배탔다. 어디가는줄도 모르고 피난선을 타고 가다가 해가 저물어 이야포 해안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주먹밥을 먹는 순간에 미군제트기 4대가 와서 배에다 기관총을 쏘는 바람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둘이 희생됐다. 누나는 그 후유증으로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미군폭격을 당한지 70년이 지나도 이 사건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너무 억울하다. 우리 잘못은 없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서 피난선을 타서 일가족이 희생당했다. 이제라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명예회복과 보상이 따라야 한다. 이야포에 제대로 된 비석을 세워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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