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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미군폭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 명예회복 토론회'를 방청하고

여수TCS국제학교 황은현, 김서현, 배준우, 정이다율, 정가람 학생들 소감문

  • 입력 2020.06.29 18:35
  • 수정 2020.06.30 11:30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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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토론회에 참석한 여수TCS 국제학교 학생들
25일 여수시의회 소회의실서 열린 '한국전쟁기 미군폭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 명예회복 토론회'에 참석했던 여수TCS국제학교 학생들이 소감문을 보내왔다. 보낸 순서대로 황은현, 김서현, 배준우, 정이다율, 정가람 학생이 소감문을 싣는다.

 

이야포 미군 무차별 폭격사건 토론회

여수 TCS 국제학교 황은현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무차별 폭격사건에 관한 토론회에 다녀오고 나서 먼저는 우리가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여수 시민 가운데에서도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건은 물론 지명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런 사소한 역사까지 알아야 하느냐, 라고 반문할수 있겠지만 역사가 바로서야 미래가 바로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살아있는 이 시기에 정확한 진실규명과 피해보상을 함으로써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역사 그 팩트만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줘야하는 의무를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열심히 뛰고 계시는 어른들이 존경스러웠다.

박성미 시의원님이 이춘혁 어르신의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머금으시던 그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양영제 소설가님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움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춘혁 어르신 모습에서는 토론회를 통해 이야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기쁨과 그날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많은 시의원 분들과 여수넷통 관계자 분들도 존경스럽고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세대인 우리가 바통을 이어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토론회에서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친구들이 여기 있어서 참으로 고맙고 좋다는 것이었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제는 다음 세대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확한 팩트여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그 후손들이 기억해야 한다.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져 미국 당국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기념비, 공원 등이 세워져야 한다.

오늘 이 토론회는 이야포 사건 뿐아니라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끝)

 

여수 TCS국제학교 김서현 학생이 이야포 피해자 이춘혁 씨에게 꽃을 전달하고 있다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사건

여수 TCS 국제학교 김서현

지난 25일 여수시의회에서 열린 한국전쟁 70주년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여했다.

평소 역사를 잘 알고 있지 않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토론회 시작 전 인터넷에 검색하고 나서야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6.25전쟁 당시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 전폭기에 의해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 아직까지 종결이 되지 않은 사건임을 알게 됐다.

1950년 6월 21일 피난민 배에 탑승 중인 15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현재 그 일을 겪은 생존자는 이춘혁 할아버지 밖에 남지 않았다.

토론자들은 “70년이 지났지만 진상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어 억울하게 희생된 피난민과 유가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평화공원 설립과 추모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방청하며 우리가 역사를 꼭 알아야 하는 이유와 그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없고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바쁜데 그럴 수록 “내가 먼저 역사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나라가 잘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아무런 배상과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피해자 한 분 한 분이 힘겹게 싸우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를 바르게 아는 것임을 깨달았다. 하루빨리 이 일이 종결되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 (끝)

 

미군 여수 폭격사건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사건)

여수 TCS국제학교 배준우

지난 25일 수업 도중 선생님께서 여수시의회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가할 학생들을 모집한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우리가 토론회 방청객으로만 참여하고 또 고등학생들이 토론자로 나선다고 이해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 참여를 망설였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지식과 지혜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토론자들의 발제를 들으며 여수의 미군폭격사건은 토론을 통해서 정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진실규명에 힘을 합쳐야 하는 문제임을 직시했다.

이춘혁 어르신의 증언까지 듣고 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음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의해 피해입은 사람들과 이유 없이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상황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듣기조차 싫어한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 돈, 권력 등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번 토론회로 우리 주위에 사는 피해자들의 심정에 공감하고 그들을 살펴야 함을 깨달았다. (끝)

 

한국전쟁기 미군폭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 명예회복 토론회

여수 TCS국제학교 정이다율

지난 25일 시의회에서 열린 ‘한국전쟁기(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에 의한 민간인 학살 명예회복 토론회’를 방청하였다.

토론회 참가가 갑자기 결정되는 바람에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에 미군폭격이라는 말에 6.25때 한국을 도운 미군이 왜 우리에게 폭격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론자들의 발언 중 미군이 북한에서 오던 피난선을 폭격하여 피난민 350명 중 150명 이상이 죽었다는 말에 민간인을 사살하여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왜 여수시가 미군의 행동에 보상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발언을 계속 들으면서 이 사건에 한국 경찰이 개입되었음을 알았다.

과거 여순 항쟁을 다룬 오페라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 그 사건과 연결된다고 하여서 궁금증이 일었다. 토론회를 통해 여순항쟁이 일어난 곳이 미군폭격이 일어난 이야포와 같은 지역임을 알았다.

나는 여순 항쟁은 들어봤지만 미군폭격 사건에 대한 것은 조금도 알지 못했었다. 어느날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회의 권사님과 엄마에게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잠깐 설명했었는데 엄마와 권사님 역시 전혀 들어본 적 없다고 하셨다.

여수에 오래 사셨던 분들도 이 사건을 모른다고 대답하시자, 나는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알려져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안도 주민들도 이 일에 대해 무서워하고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든 보상할 방법을 마련하도록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끝)

 

토론회 밮표자들과 방청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TSC국제학교 학생들도 함께 했다.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 토론회를 다녀온 뒤 느낀 점

여수 TCS국제학교 정가람

처음에는 단지 학교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토론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박성미 의원님께서 “지역의 미군폭격사건이 노근리 사건처럼 공론화 되어 많은 분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나는 토론회를 통해서 처음으로 이야포 사건을 알게 됐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없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은 중요한 사건들 또한 잘 몰랐다.

하지만 토론회를 접하고 나서 “역사적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기억이 평생토록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사건들을 접해도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춘혁 어르신께서 70년 전 그날을 회상하시며,

“우리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정부에서 쌀 배급 주고 배타라고 해서 배탔다. 어디가는줄도 모르고 피난선을 타고 가다가 해가 저물어 이야포 해안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주먹밥을 먹는 순간에 미군제트기 4대가 와서 배에다 기관총을 쏘는 바람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둘이 희생됐다. 누나는 그 후유증으로 27살의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라는 말씀을 듣자 피해자들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미군폭격 같은 사건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려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군 폭격 사건뿐만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데 피해를 당하고 죽음을 당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보상을 받았더라도 그분들은 당시의 아픔을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담아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건의 주동자들은 죄책감은커녕 아예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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