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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수몰지구' 문제 다룬 소설, 작가의 상상력이 아쉬운 이유

등장인물의 뜬금없는 충청도 말투, 허구 지명... "지역 정서 아픔 더 잘 묻어났으면"

  • 입력 2020.08.09 22:56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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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소리' 첫 머리 문순태의 단편 소설 '징소리'의 첫 머리(전자책)
▲ 소설 "징소리" 첫 머리 문순태의 단편 소설 "징소리"의 첫 머리(전자책)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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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소리>는 전남 장성댐 수몰지구 '방울재'를 무대로 한다. 1975년 장성댐이 들어서면서 '북상면'에 속한 마을(자연촌만 45개) 대부분이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주민 5천여 명이 살던 북상면도 행정구역에서 없어졌다. 소설가 문순태는 '징소리'라는 작품으로, 장성댐 건설로 고향과 아내마저 잃고 미쳐버린 '허칠복'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수몰지구 사람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이 소설은 1978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처음 실렸고, 현재 고등학교 국어 문학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한국적 한의 정통을 이은 작품"이란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고향을 잃고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의 아픔과 설움, 그리움을 주인공 허칠복의 징소리로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님의 구술 자서전을 편집하면서 소설 '징소리'의 존재를 최근에 알게 됐다. 어머님은 장성댐으로 수몰된 덕재리에서 오랫동안 사셨다. 그곳에서 사실 무렵 겪은 이야기를 하시는데 처음 들어본 마을 이름이 여럿 나왔다. 수성, 도곡, 백개리, 하오치, 오동춘 등이 그것이다. 댐 건설로 물에 잠겨 지금은 자취조차 찾기 힘든 마을들이다.

이런 장성댐 수몰지구 마을들을 검색해 보다가 문순태의 소설이 장성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수몰지구민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찾아 읽어보았다. 이 소설은 총 6개의 단편(징소리-저녁 징소리-말하는 징소리-무서운 징소리-마지막 징소리- 달빛 아래 징소리)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었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소설은 첫 번째 단편 '징소리'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소설을 읽고 무척 아쉬웠다. 소설의 수려한 문체나 상징성, 완성도는 유명세만큼이나 평가할 만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남 장성댐 건설로 물에 잠긴 덕재리 방울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뜬금없이 등장인물들이 충청도 말투로 시종일관 대화한다.

가령 주인공 허칠복과 방울재에서 함께 자란 '봉구'는 낚시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울재가 없어졌지라우. 몽땅 물에 쟁겨 뿌렀어유. 남은 것이라고는 저 뒷골 감나무뿐인갑네유."

칠복이의 또 다른 친구 덕칠이 말투도 충청도 말씨다.

"쫓아낸다고 갈 놈이우?"
"안 가겠다고 버티면 어쩔 거유?"

칠복이를 마을에서 내쫓고자 등 떠밀며 강촌영감이 던진 말투도 마찬가지다.

"낼 아침 떠나라고 허고 싶네만, 정은 단칼에 자르는 거이 좋은겨."

심지어 주인공 칠복이마저도 "저 불렀어유?"라고 말한다. 이는 모두 충청도 말씨이지, 전남 장성 말투는 전혀 아니다. 장성댐 건설로 고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의 아픔을 형상화하고자 쓴 작품이라면 현지 말씨를 써야 그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거다. 한데 작가는 자신이 담양 출신이고 전남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기이하게도 전남 장성 말씨, 아니 '전라도 말씨'를 쓰지 않았다.

작품 배경인 덕재리 '방울재'라는 지명도 사실은 본디 없는 곳이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수몰지구 마을 중 하나인 오동춘이란 마을에 '방울샘'은 있었으나 '방울재라'는 곳은 없었다고 했다. 장성댐 수몰지구는 주로 농지와 마을들로 이루어진 낮은 지대였다. 수몰된 지역에는 산이나 재가 없었다. 장성댐 주변에 '곰재'가 있지만 그곳은 수몰되지 않았다.

'소설'이라 작가가 등장인물의 말투나 지명을 허구로 지어냈다고 변명할 순 있다. 하지만 '징소리'의 주요 무대가 장성댐과 광주이므로 해당 지역 말씨, 지명을 넣어 주어야 더욱 실감 나고 지역 정서와 아픔도 보다 잘 묻어나지 않을까 싶다. 야속하게도 이 소설에는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방울재' 외에 수몰지구의 어떤 마을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성댐 수몰지구 주민들은 장성댐 건설로 고향을 잃은 자신들의 아픔을 소설로 다뤄준 거만도 고마웠나 보다. 현재 장성댐 부근인 북하면 쌍웅리에는 '장성호 북상면 수몰 문화관'이 2004년 건립됐고, 1층 한쪽에는 소설가 문순태씨의 문학자료관이 들어 서 있다. 또 건물 옆에는 문순태씨의 글이 새겨 있는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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