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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에게 ‘전공 적합성’을 요구하지 말라

학생은 슈퍼맨이 아냐, '성적'에 '성장'까지 요구하는 학종의 멍에
학교수업은 몇십년째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학생은 대학을 가기 위해 원하는 전공을 미리 숙지해야 해
학교 개혁이란 "배우는 학생들이 행복한 것"

  • 입력 2020.08.11 14:01
  • 수정 2020.08.11 16:45
  • 기자명 박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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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교사

나는 학교를 혁신하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슬로건만 진보일 뿐, 교실 안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깨우침을 준 것은 몇 년 전 한 아이의 충격적인 발언 때문이다. 구속된 교육감을 석방하라는 시민단체의 현수막을 보고 아이에게 넌지시 어떻게 생각하내고 물었다. 아이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관심 없어요. 저분이 교육감이 되고 나서 교실이 뭐가 달라졌는데요?”

2018년 기준, 대한민국에서는 하루 5.8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통계마저 온전히 믿기 어렵다. 내가 교직에 있는 동안에 4명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중 2명은 자살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이 사회를 향해 던진 그들의 마지막 항변마저 묵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학종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학생중심수업을 시도하면서 은근히 자부심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5분 발표수업을 시작하는데 PPT를 담아온 어떤 학생이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개같은세특>이 파일 이름이었고, <박용성개새끼>가 문서 이름이었다.

실수를 알게 된 아이는 내게 와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몹시 괴로웠다. 결국,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신’에 ‘수능’에 ‘세특’까지, 그 아이는 죽을 것 같다는 말을 그렇게 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수능의 본체는 괴물이다. 10년 전의 수능 문제와 지금의 수능 문제를 비교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너무 어려워졌고, 너무 복잡해졌고, 너무 기괴해졌다.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합격의 당락을 결정하려다 보니 이러한 괴물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학종이 이런 괴물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능은 수능대로 그대로 둔 채, 학종이 학교에 똬리를 틀면서 이제는 ‘성적’이라는 멍에에 ‘성장’이라는 멍에를 하나 더 씌웠기 때문이다. 물론 입시전형 자체로만 보면, 학종은 수능보다 백 배 교육적이다. 하지만 수능 준비하면서 학종까지 준비하라는 건 반교육적이다.

어느 날 모범생인 한 학생이 울며 말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 질문하는 게 두려워요. 내가 질문을 하면 다른 아이도 그것을 알게 될까 봐, 그게 겁나요.”

학종을 준비하던 아이는 올1 등급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무사히 자라났다.

하지만 우리는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을 찬탄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피어나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들을 애도해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제발 대학은 학생들에게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하지 말아 달라. 슈퍼맨은 만화 속의 주인공일 뿐, 그런 초인은 학교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 숨막히게 하는 학종.. 처음 취지와 달리 거짓으로 점철돼

2021학년 서울대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책자

이제는 대학생이 된 제자들 중 몇몇은 가끔 학교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들에게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과거 학종의 ‘전공 적합성’에 대한 압박이다. 숨이 막혔다는 아이도 있고, 부끄러웠다는 아이도 있다.

학종은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서류를 보고 학생을 평가하는 전형인데, 이때 나오는 게 평가요소다. 2018년 연세대,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건국대, 서울여대 등 서울의 6개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평가항목」이라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거기에는 ‘학업역량, 전공 적합성, 인성, 발전가능성’이라는 4개의 평가요소가 나온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전공 적합성’은 ‘지원전공 관련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 노력과 준비 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전공관련 교과목이수 및 성취도’, ‘전공에 대한 관심과 이해’, ‘전공관련 활동과 경험’ 등이 포함된다.

쉽게 말하면 지성(지식)은 ‘전공관련 교과목이수 및 성취도’로, 감정(느낌)은 ‘전공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의지(행동)는 ‘전공관련 활동과 경험’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정말 이상적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교육이행해지는 곳이다. 대체로 전공 적합성은 특정과목성적으로 결정된다. 수학점수 괜찮으면 이과, 그렇지 않으면 문과로 정리하는 게 잣대다. 그러다 보니 3학년이 되어서도 전공이 왔다 갔다 한다. 이게 현실이다.

1학년 때 ‘전공’을 결정한 뒤, 2학년 때부터는 ‘전공과 직접 관련이 있는 활동’을 다채롭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고문이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진술하도록 자행되는 게 고문이다. 고문을 피하려면 아무 말이나 해야 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고문받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신음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 점에서 매우 선진적인 학교가 있다. 서울대다. 「서울대학교 학종안내서」(2019)에 따르면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 자연과학적 지식이 풍부한 인문사회학자! 철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예술가’를 ‘멋진 미래’라고 부르면서 “고등학교 과정에서 지식이나 학문을 지나치게 편식하는 것은 지적 균형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공 적합성을 요구하지 않는 서울대는 학생의 전공은 대학에 와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과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경제동아리에서 활동해야 하고, 경제책만 읽어야 하며 경제관련 봉사활동만을 찾아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부에 지원한다 할지라도 그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인간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적 호기심과 함께 창의적 역량을 키워 나간다면 ‘진정한 의미의 전공 적합성’이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자성적 수필’로 적어나가야지 ‘허구적 소설’로 꾸미도록 조장해서는 안 된다. ‘학업역량’과 ‘인성’, 그리고 ‘발전가능성’이라는 평가요소만으로 학생들은 충분히 힘들다.

하지만 대학은 쉽사리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만들어 놓은 곳이 ‘교육부’다. 힘을 가진 교육부가 나서서 잘못된 것들을 다시 배치해야 한다.

학교혁신이건 개혁이건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무엇이 혁신이고 무엇이 개혁이고 무엇인 혁명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덜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혁신이고 개혁이고 혁명이라면, 그런 변화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들뢰즈(G.Deleuze)는 “씨앗은 흙과 비, 그리고 햇빛의 배치(agencement)에 의해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흙은 ‘좋은 흙’이어야 하고 비는 ‘알맞은 비’여야 하며, 햇빛은 ‘적절’해야 한다. 그래야만 씨앗은 썩지 않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교육부가 ‘배치의 미학’을 아는 정원사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용성 충무고 교사,  '학교생활기록부를 디자인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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