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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수장된 피난선 베일 벗나?...조속한 인양 필요

[영상]이야포 미군폭격 70주년, 150여명 수장된 피난선 추정 잔해물 탐사 풀영상
여수시와 관계당국 이야포 미군폭격 잔해물 조속히 수거해 사건 실체 밝혀야

  • 입력 2020.08.18 11:11
  • 수정 2020.08.27 14:38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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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버들이 70년전 이야포미군폭격에 의해 수장된 피난선 탐사에 나서는 모습

벌써 20일이 흘렀다. 피난선을 찾아 나선 4명의 다이버가 70년 전 350여명을 태운 피난선으로 추정되는 잔해물을 찾았다는 방송이 여수를 뜨겁에 달궜다.

 

70년간 수장된 피난선 추정 잔해물 발견

나의 25년 다이빙 역사 중  그날의 수중탐사는 아직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29일 KBS 방송팀과 촬영에 나선 일행들은 배 2척에 나눠타고 전남 여수 웅천항에서 안도 이야포로 향했다. 바닷길엔 안개가 자욱했다. 유례 없이 찾아온 기후변화로 긴 장마 탓에 좀처럼 뱃길이 열리지 않았다. 침몰선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일행들을 태운 선상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꿈에 어제 꿈에 보았던♩
이름모를 너를 난 못잊어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지난 꿈 스쳐간 여인이여

난 눈을 뜨면 꿈에서 깰까봐♬
난 눈 못뜨고 그대를 보네

물거품처럼 깨져버린 내꿈이여♪
오늘밤엔 그대여 와요

난 눈을 뜨면
사라지는 사람이여♬

6.25 전쟁통에 자유를 찾아 남쪽나라로 피난선에 몸을 실었던 피난민들의 기구한 인생은 가수 조덕배의 <꿈에>라는 노래에 오버랩되자 더 슬퍼졌다. 이유도 모른 채 이름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들은 아직도 꿈을 꾸듯이 구천을 맴돌고 있다.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은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에서 미군 전투기가 피난민을 태운 배를 북한군 선박으로 오인해 폭격하면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피난선은 정부의 명령으로 태극기를 게양한 채 부산에서 거제도 피난민수용소를 거쳐 거문도로 이동 중인 350여명이 탄 배였다. 총 4차례에 걸친 기총사격으로 피난민 약 150여명이 사망했고, 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여수 안도 이야포 해변에서 다이버들이 수중탐사로 발견한 150여명이 탄 피난선으로 추정되는 잔해물 모습

70년 전 8월 2일 피난선은 여수시 안도리 이야포 포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곳이 이승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쟁을 피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그들의 꿈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다음날 아침 어디선가 날아든 폭격기가 저공비행을 하더니 무차별 기관총을 난사했다. 바다는 피로 물들었고 그로 인해 눈 깜빡 할 사이 1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혹자는 이를 '여수판 노근리학살'이라 부른다.  

어느덧 이야포 앞바다에 도착하니 다행히 안개는 걷혔으나 적조로 인해 바다가 검붉다. 아쉬운대로 시야도 양호했다. 이날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에 팔걷고 나선 박성미 의원을 비롯해 해양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KBS방송팀과 본지가 동행취재를 했다. 4명의 다이버들이 침몰선 탐사에 나섰다. 다이버들이 입수한 곳은 이야포 해변에서 127m 지점이다. 수심 6.6m에 다다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경 너머로 보이는 침몰선 잔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중에서는 침몰선 보조 엔진 거치대로 추정되는 상당히 큰 구조물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된 엔진이었다. 엔진을 지탱하던 거치대(엔진다이) 나무의 크기는 상당한 굵기였다. 굵기를 가늠하기 위해 왼팔로 감싸안으니 팔이 가득찰 정도로 굵다. 나무가 상당히 부식되었지만 염기를 머금은 딱딱한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다. 목선이지만 철제 부속품이 삐쭉삐쭉 솟아 있었다. 당시 피난선은 시신들과 함께 불태워져 바다로 가라앉았는데 십수 년 후 고물상이 와서 고철로 수거해 갔다는 마을 주민의 증언도 따랐다.

 

피난선 가능성 99%... "70년간 다른 어선 침몰된적 없다"

70년전 이야포미군폭격에 의해 수장된 피난선 탐사에 나선 다이버들의 입수 모습

70년간 이야포 마을을 지켜온 이사연(86세)씨는 “당시 미군 폭격이 벌어진 해안가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면서 “피난선이 3일에 걸쳐 불태워졌다. 이야포 해안에는 6.25피난선 침몰 후, 다른 어선이나 구형 선박이 침몰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해 피난선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탐사에 나선 박정우 대원의 말이다.

“요즘의 배 엔진은 아니다. 대형 나무받침대에 엔진이 얹혀있는 물체가 비스듬히 거의 거꾸로 된 형태로 모래뻘밭에 처박혀 있다”

이에 대해 목포대학교 조선분야 대학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 배가 피난선의 잔해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그러나 이 잔해가 이야포사건 관련 피해 선박인지는 정확히 확인이 어렵다. 이 구조물을 정밀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라며 조속한 인양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잔해가 침몰선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3년째 이어온 <여수넷통뉴스>와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의 침몰선 찾기 수중탐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간절함이 크면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침몰선 수중탐사에 나서자 '쇼한다'라고 조롱하던 활동가도 있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3년을 찾아 나선 우리의 노력이 지역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수시와 관계기관의 조속한 인양이 필요한 이유다.

침몰선을 발견하는 데에는 해양환경인명구조단 박근호 대장의 역할이 컸다. 지난 27일 이곳 해안에 사전 탐사를 왔다가 잔해물을 최초로 발견했다. 박 대장은 “해녀들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작년에도 이곳을 탐색했으나 실패했다"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넓은 바다에서 잔해물을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격이다"라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또 GS칼텍스 김남중 대원은 침몰선 영상을 담아 세상에 알렸다.

당시 16살이었던 이야포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은 피난선을 타고 부산에서 통영을 지나 안도 이야포까지 오게 됐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날 아침 미군기 두 대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갑작스런 미군기의 공격에 목선은 아수라장이 됐다. 200톤급 큰 배였고 한쪽에 태극기가 달려 있었다. 미군전투기가 사격할 때마다 7~8명이 쓰러졌고 탈출하는 사람까지 사격이 가해졌다. 현장에선 엄마, 아빠 부르는 소리로 아수라장이됐고 바다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시체와 배는 3일간 탔고 이후 수장됐다.”

 

제2기 진화위법이 통과... 조속 인양해 제대로 조사하라!

3일 이야포 해변에서 거행된 추모식과 돌탑 쌓기 행사후 수백마리의 갈매기가 떼지어 날아올라 그 지점을 한동안 선회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70년 전 8월 전황은 어땠을까. 당시 인민군에게 낙동강 이남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점령 당했다. 하늘에선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미공군이 계속 활동 중이었다. 미해군은 7월 28일부터 소형선박들이 북한군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병참보급을 교란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이런 과정에서 전투기가 피난선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행취재에 나선 KBS 양창희 기자는 방송을 통해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은 비렁길로 유명한 여수 금오도 아래 안도 이야포에서 6.25당시 미군기의 공격으로 일어난 민간인학살사건이다”면서 “당시 피난선에는 태극기가 달려있고 전투상황이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대부분 하얀 옷을 입고 있어 전투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었는데 발포를 했다”라며 “어떤 경위로 발포명령이 떨어졌는지, 미군관련 기록이 확인이 안 된 상황이다”라며 재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동안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 조사결과 피해 사실은 인정했지만 관련기록을 찾는 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지난해 국회말미에 제2기 진화위법이 통과되었다. 12월 활동이 시작된다. 국가가 다시 한 번 조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여수에서 발생한 미군폭격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만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150여명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를 바로 쓰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바로 지금 여수에서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을 푸는데 가장 절실한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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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제 2020-08-18 12:30:12
이야포 바닥을 쌍끌이 그물로 긁어보면 분명 탄피 한개는 나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당시 안도에 살던 어른들 증언으로는 육상에서 탄피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였다니 무지막지한 기총이 발사 됐을 것입니다. 발견된 수중물체를 인양해서 조사하면 기총 맞은 자국도 발견될 것이라 생각 됩니다.
그런데 여수시 관계당국의 인양계획이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이것을 취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