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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섬 장도의 새벽을 깨우는 피아노 선율

장도예술카페 ‘리스타 이혜란’ 독주회 앞둔 새벽 연습 현장

  • 입력 2020.08.25 08:59
  • 수정 2020.08.30 10:22
  • 기자명 손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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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장도 예술섬으로 들어가는 진섬다리 길은 에너지가 넘쳤다.

안개에 싸인 채 동트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른 새벽 예술섬 장도의 진섬다리를 건넌다.

건널 때마다 설레는 진섬다리를 동트는 새벽에 건너니 가벼운 흥분이 인다. 밤새 밀려드는 바닷물 따라 다리 위까지 고동이 올라와 까만 염소똥처럼 여기저기 붙어있고 숭어가 퐁퐁 뛰어 오르는 걸 보니 생명의 에너지가 전해진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대신 찌리릿짓 새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는 오솔길도 청량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피아노가 자신의 전부이고, 자연주의를 지향하며 커피를 사랑하는 여인...

장도예술카페의 지배인이자 예술인 ‘리스타’ 이혜란 피아니스트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혜란은 요사이 이른 아침에 쇼팽을 연습한다. 독주회를 위해...

그녀는 연말에 독주회를 계획하고 새벽마다 피아노 연습을 한다. 피아노 선율로 예술가가 깨우는 새벽의 장도를 느끼고 싶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 그녀의 피아노 연습 장면을 보려고 친구 부부와 함께 셋이서 다리를 건넌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배경으로 신선한 공기와 함께 한 아침시간을 즐기며 자연스레 리스타의 연주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연주회를 계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이곳에 온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독일에서 음악 교육자로 예비된 길을 접고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카페의 운영만이 전부는 아니었거든요. 그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피아니스트니까요.”

쇼팽의 곡만으로 연주할 계획이라며 그녀의 피아노 연습 교본을 보여주는데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손 때 묻고 낡아 가장자리에 테이핑 된 책을 보니 리스타의 땀과 열정과 인고의 시간이 느껴진다.

연주용 쇼팽 교본이 낡아져 벌써 7번째라고 한다.

연습을 하다보면 책이 너덜너덜해져서 바꿔야하는데 보여주는 책이 7번째로 바꾼 쇼팽이라니! 그의 노력에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그가 피아노 앞에서 보냈을 시간들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으로 바리스타 일을 겸해야 하는 현실에 염려를 나타냈더니 이렇게 전했다.

평상시 장도예술카페에서 바리스타 이혜란

“저는 삶과 예술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피아노 치는 바리스타인 '리스타'로 불리고 싶어서 명함도 ‘리스타’예요. 현실에서 하는 일을 노동으로 생각치 않고요, 피아노를 통해 삶의 기쁨을 표현할 뿐이며 예술과 삶을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그의 대화는 당당하고 멋지다.

"예술을 분리하여 높은 곳에 올려 놓지 않고 삶 속에 내려놓으니까 예전보다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잘 치는 것도 좋지만 실수 좀 하면 어때?’ 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피아노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 보여줄거에요.”

삶을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예술과 일상을 동등하게 품고 있는 그에게서 삶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관조하고 승화시킨 후 다져졌을 내공이 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 속에 피아니스트로서의 긍지가 느껴진다.

 리스타 이혜란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자긍심이 크다 

“쉬운 길로 가는데도 인정받는 사람들을 볼 때 때론 억울하기도 하지만 다른 방편은 찾지 않고 여태 살아 온 내 방식대로 나 자신의 향기를 그대로 지닌 채 살고 싶어요. 음악에 집중하는 일 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게 여기구요, 음악 이외의 것은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불편을 느끼지는 않으면서 살려고 하지요”

비록 코로나가 진정되지 않아 음악회 개최가 불투명하더라도 일단 뜻을 세우고 도전을 시작하고자 한다.

“쇼팽의 음악을 나만의 해석으로 섬세하고 고급스럽게 표현하고 싶어요. 남편의 1주기 때 삭혀지지 않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전곡 완주를 하지 못했어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할 요량이었는데 그때 마침 남편 동영상이 나오면서 살아생전 육성을 들으니까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부분만 연주하고 말았죠. 이제 10년이 지났거든요. 올해에 그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꼭 완주하고 싶어요.”

예술과 현실적인 삶을 분리하지 않은 통찰의 마음은 그녀가 독서를 통해서도 얻지 않았나 싶다.

불교서인 금강경과 성경의 시편을 병합하여 읽고, 두 세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된 지향점을 찾는다고 하는 말에 인문학적인 관심과 소양을 엿볼 수 있었다.

“제가 스페인의 유명한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를 존경해요. 시대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곧은 정신을 지녔고 노년까지 평생 연주를 멈추지 않은 카잘스처럼 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주를 멈추지 않고 싶어요”

그의 새벽 연주는 우리를 흥분시켰다.

흐르는 물처럼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습 중인 쇼팽의 곡을 들려주었다. 순식간에 쇼팽의 겨울바람으로 카페의 빈 공간이 휘몰아치는 광풍으로 가득찬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주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너무 행복했다. 단 3명을 위한 연주를 경험하는 이 아침의 흥분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우선은 계획한 독주회가 코로나의 방해없이 마쳐지길 바란다. 먼 훗날까지 흰머리 성성한 모습으로 자신의 분신인 스타인웨이 앞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이혜란의 모습을 그려본다.

새벽에 들어 간 진섬다리를 피아노 선율을 가슴에 담고 돌아나오는데 그 사이 차 오른 바닷물처럼 온 몸에 스멀스멀 행복감이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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