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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이 가져다준 행운, 책에서 ‘여수’찾기

김훈 ‘자전거 여행’에서 향일암도 둘러보고
소설가 김연수 에세이에서 만나는 ‘여수’의 모습도
유명 작가는 ‘여수를 어떻게 볼까?’ 궁금증 채워줘

  • 입력 2020.08.29 07:40
  • 수정 2020.08.30 10:17
  • 기자명 손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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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자전거 여행'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글은 오랫동안 천천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고 표현된 글이다. 내겐 그의 글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담백하면서도 깊고 날카로운 표현을 해 내는 그의 글솜씨에 반한지 오래다. 유명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밥벌이의 지겨움’, ‘연필로 쓰기’, ‘남한 산성’, ‘화장’ 등 웬만한 그의 책은 다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자전거 여행'이다.

자신의 내면에 담긴 생각들을 고단함 마다않고 매번 연필로 꼭꼭 눌러 쓰는 글쓰기를 하고, 자전거 두 바퀴로 흙을 밀어내는 두 다리 고단함도 이겨내고 여행에서 본 것들을 진주처럼 엮어 낸 글들에서 그의 작가정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고부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자전거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책에 여수를 등장시켜서다.

7월의 여수 돌산 향일암 ⓒ정종현

이 책의 첫 꼭지글이 여수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깊고 유려한 문체로 표현된 내 고장의 봄은 특별했다. 어디서나 피는 매화, 동백, 산수유들이지만 여수에서 피는 꽃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꽃으로 다가왔고 봄을 이겨 낸 냉이,달래, 봄나물들도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겨졌다.

김훈은 봄꽃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전거여행" 첫 꼭지글 '여수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풍경' 해당 부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고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 피어난다.목련은 자의식에 가득차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목련이 지고나면 봄이 다 간다.''

꽃들의 내면을 이보다 깊이 탐색하여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김훈의 글을 보고 난 후에 내 눈에 보이는 꽃은 그 전에 봤던 때와는 달랐다.

시들 때 누렇게 변해 한 잎씩 미련을 남기며 떨어지는 모습이 흉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목련도 김훈 작가가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라고 표현한게 멋있어서 추한 모습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오늘, 같은 이유로 좋아진 책을 또 발견했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표지, 여기 첫 글도 '여수에서는 군침이 돈다'

모처럼 찾은  이순신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는데, '여수에서는 군침이 돈다' 라는 첫 꼭지가 보였다. 빌려 와선 단숨에  읽어 버렸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이다.

여수에서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바닷가 식당이나 포장마차에 들렸던 작가의 경험들을 쓴 에세이였는데, 김훈 작가만큼 애정담긴 문체는 아니었지만 여수에 관한 내용이고 첫 꼭지에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난 이 작가가 충분히 좋아졌다.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들 중에 난 내가 발견하는 이 재미를 넣고 싶다. 유명작가들이 새롭게 그려 내는 내고장 풍경을 다시 발견하는 기쁨 말이다. 실제 내 고장 모습보다 과장되거나 부족하게 표현 될 수도 있겠지만, 유명 작가들의 글이니 내 고장 여수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때론 이곳에 사는 우리도 못 느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문득 유홍준 작가의 유명한 말이 떠 오른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김훈 ,김연수 작가에 의해 내게 여수는 더 이상 익숙함에 젖은 채 보던 곳이 아니었다. 알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한결같던 여수 풍경이 더 새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어디 못 나가는 덕분에 또 좋은 책과 하루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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