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글은 오랫동안 천천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고 표현된 글이다. 내겐 그의 글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담백하면서도 깊고 날카로운 표현을 해 내는 그의 글솜씨에 반한지 오래다. 유명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밥벌이의 지겨움’, ‘연필로 쓰기’, ‘남한 산성’, ‘화장’ 등 웬만한 그의 책은 다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자전거 여행'이다.
자신의 내면에 담긴 생각들을 고단함 마다않고 매번 연필로 꼭꼭 눌러 쓰는 글쓰기를 하고, 자전거 두 바퀴로 흙을 밀어내는 두 다리 고단함도 이겨내고 여행에서 본 것들을 진주처럼 엮어 낸 글들에서 그의 작가정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고부터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자전거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책에 여수를 등장시켜서다.
이 책의 첫 꼭지글이 여수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깊고 유려한 문체로 표현된 내 고장의 봄은 특별했다. 어디서나 피는 매화, 동백, 산수유들이지만 여수에서 피는 꽃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꽃으로 다가왔고 봄을 이겨 낸 냉이,달래, 봄나물들도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겨졌다.
김훈은 봄꽃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숲은 바닷바람에 수런거린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고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 피어난다.목련은 자의식에 가득차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목련이 지고나면 봄이 다 간다.''
꽃들의 내면을 이보다 깊이 탐색하여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김훈의 글을 보고 난 후에 내 눈에 보이는 꽃은 그 전에 봤던 때와는 달랐다.
시들 때 누렇게 변해 한 잎씩 미련을 남기며 떨어지는 모습이 흉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목련도 김훈 작가가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라고 표현한게 멋있어서 추한 모습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오늘, 같은 이유로 좋아진 책을 또 발견했다.
모처럼 찾은 이순신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었는데, '여수에서는 군침이 돈다' 라는 첫 꼭지가 보였다. 빌려 와선 단숨에 읽어 버렸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이다.
여수에서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바닷가 식당이나 포장마차에 들렸던 작가의 경험들을 쓴 에세이였는데, 김훈 작가만큼 애정담긴 문체는 아니었지만 여수에 관한 내용이고 첫 꼭지에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난 이 작가가 충분히 좋아졌다.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들 중에 난 내가 발견하는 이 재미를 넣고 싶다. 유명작가들이 새롭게 그려 내는 내고장 풍경을 다시 발견하는 기쁨 말이다. 실제 내 고장 모습보다 과장되거나 부족하게 표현 될 수도 있겠지만, 유명 작가들의 글이니 내 고장 여수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때론 이곳에 사는 우리도 못 느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문득 유홍준 작가의 유명한 말이 떠 오른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김훈 ,김연수 작가에 의해 내게 여수는 더 이상 익숙함에 젖은 채 보던 곳이 아니었다. 알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한결같던 여수 풍경이 더 새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어디 못 나가는 덕분에 또 좋은 책과 하루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