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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개의 급경사 계단이 눈앞에 딱... 아찔하네

  • 입력 2013.08.02 20:04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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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오녀산 모습. 너무 커 가까운 곳에서는 촬영할 수가 없다. 이곳에 고구려 최초의 수도인 오녀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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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고구려 유적 답사 여행기①]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 오녀산성
진작부터 별렀던 백두산 및 고구려 유적답사 여행에 나섰다(7.26~7.31). 중부지방에 장마가 계속돼 걱정을 했지만 어쩌랴! 이미 날짜가 확정됐으니 여행 운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7월 26일 오후 6시. ‘단동(단둥)페리호‘는 800여명의 손님을 싣고 인천항을 떠났다. 바람이 불어 멀미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여행은 설렘이다. 들뜬 손님들은 갑판 위에 올라와 바다 위에 길게 드리운 일몰을 즐긴다. 아이와 어른들은 과자를 손끝에 들고 따라오는 갈매기를 유혹한다. 제법 빠른 배가 바람을 가르며 가는데도 하늘을 향해 던진 과자를 놓치지 않고 날쌔게 낚아채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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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중국 단동으로 가는 배위의 모습. 해가 지는 광경에 갈매기가 멋진 모습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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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떨어지는 과자를 향해 날쌔게 비행하는 갈매기에 환호하는 사람들. 맥주를 마시며 흥에 겨워 노래를 하는 사람들. 노름에 열심인 중국 보따리상인들. 커다란 크루즈선은 또 하나의 사회를 이루며 단둥으로 향한다. 크루즈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북한쪽 공해를 지나 단둥으로 향하는 바닷길은 너무나 잔잔하다. 기차, 버스, 비행기, 배를 이용해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잔잔한 바다는 처음이다. 다음날 오전 9시, 드디어 단둥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모두 하선하기는 멀었다.

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5분쯤 걸리는 길을 버스 2대가 실어 나르지만 800명을 다 실어 나르기에는 역부족이다. 한 시간 반이 걸려 하선을 마친 일행은 입국장에서 또 시간을 지체한다. 입국 수속이야 이해하지만 여행객들을 위한 빠른 시스템 개선이 이뤄져야할 문제다.

중국 동북 3성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의 중국 동북 3성은 중국 6대 지리구의 하나로 중국 동북부 지역을 말한다. 현재 중국 전체 인구의 8%인 1억명의 인구가 사는 이곳에는 200만명 이상의 조선족이 산다.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한민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이다.

동북 3성은 중국의 한족과 한국의 한민족 및 여러 북방 민족이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역사상 한국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중국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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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 가파른 계단이 999개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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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왕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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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중국이 힘이 없을 때는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당해 러시아에 뤼순을 조차 당했고, 청나라 멸망 이후에는 중화민국의 영토가 된 후, 1931년 일본에 점령되어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세워지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동북3성을 여행하면서 가장 편리한 것 중의 하나는 한국 돈이 그대로 통용된다는 것. 그만큼 한국의 국력이 신장됐고 조선족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난공불락의 요새, 오녀산성

일행이 방문할 첫 번째 목표는 고구려 첫 수도인 오녀산성이다. 오녀산성은 랴오닝성 환인 만족자치현에서 동북쪽으로 8.5㎞ 떨어진 오녀산에 자리하고 있다. 오녀산을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배가 물 위에 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쪽에서 보면 기암괴석들이 솟은 산봉우리가 늘어선 절벽이며, 남쪽에서 보면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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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주민들의 생명수인 천지. 사람들이 서있는 곳이 발원지로 사시사철 마를 때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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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은 지각변화를 겪으며 주변이 침식당했지만 단단한 바위부분이 침식당하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평평한 바위다. 바위 위에는 나무가 우거져있고 사람이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물과 주거지가 있다.

주차장에서 999개의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빈 몸으로도 땀을 뻘뻘 흘리는데 무거운 짐이나 무기를 들고 올랐을 옛날 고구려 사람들을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험준한 산 위에 자리한 오녀산성은 길이가 1540m, 너비 350~550m인 장방형이다. 평균 높이가 해발 800m로 둘레가 4754㎡이다. 인공적인 산성이 자리한 동쪽을 제외한 3면은 천혜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성에는 왕궁, 병영, 초소, 저수지, 장대, 주거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몽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터에는 7개의 기둥이 남아있다. 왕궁터에서 숲길을 따라 동남쪽으로 가면 ‘천지‘라 불리는 작은 못이 있다. 장방형으로 생긴 못은 너비 4m, 길이 11m, 깊이 1.5m로 아담하지만 성안에 있는 주민을 먹여 살린 생명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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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태극정에서 바라본 환인현성 태극도.강물이 태극을 이루며 흐르고 현성에는 태극 팔괘성이 있다고 한다. 태극기의 시작이 여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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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점장대에서 바라본 환용호 모습. 환인 저수지댐에 물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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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지나 남쪽으로 10여 미터만 가면 정자 중앙에 태극무늬가 선명한 태극정이 나온다. 저멀리 주몽이 건넜다는 비류수의 흐름이 ‘S‘자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를 띠어 태극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 땅에서 태극기 중앙에 있는 태극모습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태극기의 출발이 여기는 아닐까?

태극정을 지나 동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산성에서 가장 높은 점장대가 보인다. 수백 미터의 절벽위에서 환인댐에 물을 공급하는 환용호의 모습이 절경이다. 구름에 싸인 산 정상부만 남아있고 구불구불한 호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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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좁은 하늘만 실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일선천‘이다. 오녀산성에서 밖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로 초기에는 계단이 없었지만 1999년에 새로 만들었다. 7~80도 정도의 경사를 이뤄 발이라도 헛디뎠다간 큰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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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천에서 나오면 벼랑을 따라 만든 사디리길을 내려와야 한다. 절벽에 만든 벼랑길을 따라 내려오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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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대에서 동문으로 가면 특별한 길이 있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수직절벽의 좁은 틈 사이를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70~80도 정도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다 만약 잘못해 맨 뒤 사람이 구르기라도 하면 앞선 모든 사람이 굴러떨어질 것 같다.벼랑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만 실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일선천‘이다. 이 길은 오녀산성에서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다. 원래는 계단이 없었는데 1999년에 돌계단을 놓고 절벽을 따라 다리를 만들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이 개척한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이 산성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 3년 주몽의 아들인 유리왕이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길 때까지 40년 동안 고구려 수도였다. 랴오닝성과 지린성에 아직 남아있는 100여개의 고구려산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규모가 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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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으로 가는 길에 만난 오녀산 성벽모습. 오녀산성은 2천년전 고구려 최초 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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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관광지에 가보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국가의 언어로 유물에 관한 설명을 많이 한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관광객은 한국인들이었다. 오녀산성 박물관과 산성에 있는 유물에는 한글 안내문이 아예 없다.구경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우리가 힘이 없어 그래!"라는 한탄을 한다. 동북공정에 나선 중국인들이 일부러 그랬기 때문이다. 일행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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