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무산되는 일이 잦아서 공연문화를 누리는 기회가 줄어든 요즘 지역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가 관심을 끌고 있다
20일 여수 율촌면의 난화마을에서 열린 '조화현 시골집 음악회' 는 지난 6월 첫 음악회를 가진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인천에서 아이신포니에타를 결성하여 전국적으로 연주를 다니는 조화현 단장은 율촌에 둥지를 튼 후 지역 주민을 위해 소박하지만 알찬 연주회를 추진하고 있다.
아이신포니에타는 작은 연주팀으로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
자발적으로 결성된 마을 서포터즈들의 자원봉사로 간이의자가 거리두기 기준에 맞춰 배치가 되어 있고 마당 한 켠에 간단한 다과가 차려져 있었다.
마당에서 다과와 차를 즐길 수 있으니 클래식 음악회지만 락 페스티벌에 온 듯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실내 음악회로 기획했는데 코로나 염려로 야외공연으로 바꾸면서 야외용 피아노가 필요하게 되었고 조 단장님의 인맥을 통해 인근 순천에서 급하게 피아노를 가져오고 있었지만 음악회 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테너의 노래를 두 곡이나 미리 듣게 되었으니 음악회 기획자들의 입장에서는 위기였지만 관객에게는 공짜로 얻은 보너스 같은 시간이었다.
피아노가 도착하고 아이신포니에타 조화현 단장의 사회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미리 목소리를 선사한 정진성 테너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를 들려주었다. 눈 앞에서 미성의 테너 목소리로 듣는 아리아는 전달된 느낌이 생생했다.
이어서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 을 듣는데 곱고 맑은 목소리가 우리 가곡과 잘 어울렸다.
안지연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 김상호의 협연으로 들려주는 에드워드 엘가 <사랑의 인사 > 는 자주 듣는 익숙한 곡이지만 언제 들어도 이 곡만큼 사랑스러운 곡은 없는 듯하다.
이어지는 곡은 생상스 <백조> 아침에 어울리는 고요한 곡이지만 시골 마당에서 어스름 해질녁에 하늘을 보며 듣는 <백조>의 느낌도 새로웠다. 우아한 모습 아래에 쉴새없이 발짓을 하는 백조와 멋진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하는 음악인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마이크 없이 듣는 첼로음이 편안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고 우리를 아련한 감동속으로 이끌었다.
마을의 진돗개 진주도 하늘을 나는 새들도 모두 가을을 재촉하는 첼로음에 흠뻑 빠진 채 해질녁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다시 정진성 테너가 들려주는 <고향의 노래>와 <오 솔레미오>로 귀 호강을 했는데 국화꽃 피는 가을에 시골 마을음악회에서 듣는 고향의 노래는 정말 잘 어울렸다.
능숙하게 음을 갖고 놀 듯이 부르는 <오 솔레미오>는 정진성 테너의 대표곡이라고 해도 좋을 듯 보였다.
이어지는 김상호 첼리스트의 자작곡으로만 짜여진 연주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는 첼로로 하는 기도나 찬송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묵직한 저음으로 내면을 울리며 시작하는 연주는 듣는 내내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하는 마법같은 선율들이었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니엘의 기도>는 기도의 대상이 꼭 하느님이 아니라도 누군가 자신이 의지하는 중심인물, 아버지나 어머니 자식이라도 떠올리며 들으면 좋을 듯하다.
이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잘못을 고해하는 마음으로 읖조린다면 회개받고 자신의 죄가 옅어져서 새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영혼을 맑게 해주는 음악이다
누구에겐가 자신의 죄를 사하고자 고해하는 건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선한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연주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낮은 소리로 ''아멘''하는데 때 마침 마당에 불이 들어와 환하게 비춰준다.
이 연주를 듣는 이 순간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요한 감동의 늪에서 깨어나게 하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인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의 첫 음이 흐르자마자 순식간에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연주자나 듣는이나 모두를 흥겹게 하는 곡답게 박수와 어깨춤을 추게 했다. 탱고라도 출 수 있었으면 준비된 마당에서 한바탕 추고 싶었다.
나훈아의 <당신>, 지킬과하이드 주제곡 <지금 이순간>, <우리 가요 걱정말아요 그대>, <푸니쿨라>등을 들으며 시골 음악회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해질녁에 시작한 음악회가 컴컴한 하늘이 되고서야 끝났는데 시골집 마당에서 즐긴 자유함 가득한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고 있을 것 같다.
돌아가는 길에 서포터즈 주민께서 찬조한 대파를 한 주먹씩 손에 쥐고 돌아왔다.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정겨운 대파 선물까지 들고 돌아오니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음악회임이 틀림없다.
시골집 음악회가 널리 알려지고 이태리 베로나의 유명한 시골 음악회처럼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 오는 음악회가 되기를 바라는 조화현 단장님의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오늘 이 저녁 아름다운 가을을 열어주는 멋진 음악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