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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리의 환생

겉보리로 엿기름 키우기
안 해본 일 해보기 '도전' 시리즈

  • 입력 2020.09.25 10:39
  • 수정 2020.09.25 11:45
  • 기자명 김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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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리를 불려 바구니에 담았다

시판 음료수를 싫어하는 남편을 위해 꾸준히 식혜를 만들어왔다.

그러다 문득 식혜의 원재료인 엿기름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친정어머니께도 방법을 여쭤봤다.  

육체파 주부인 나는 몸을 쓰는 일이 취미이다. 친정어머니의 설명대로 겉보리를 물에 푹 담궈 하루 세 번 물을 주었다. 콩나물을 키워 본 터라 하루 세번 물 주는 일이 매우 익숙하게 여겨졌다.

겉보리에서 하얀 뿌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틀 뒤 누런 겉보리에서 하얀 눈이 틔며 알알이 있던 것이 짧은 실타래를 뿜어내며 서로서로 엉키며 자라기 시작했다.

안 해 본 일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겉보리의 변화가 신기하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삼베로 만들어진 보를 걷어 밤새 자라난 겉보리를 쳐다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에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다. 미묘한 설렘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서로 엉키듯 자라는 겉보리

집안일을 하는 중에도 자꾸만 겉보리가 담긴 대바구니에만 눈길이 갔다. 틈만 나면 삼베보를 들춰 뽀얀색으로 변해가는 겉보리에게 말을 걸었다.

“히~야! 잘 자라고 있네, 고마워~”

5일째가 되니 연초록 싹도 샘을 내듯 싹을 티웠다. 초록싹이 나기 시작하면서 삼베에 덮인 겉보리가 세상 밖으로 나갈 때, 그때가 엿기름이라는 새 이름을 달 때이다.

겉보리에서 초록잎이 나오고 있다

아파트에서 숙식을 함께 했던 겉보리는 이후 축축한 바구니에서 벗어나 하늘을 지붕 삼는 우두리 테라스로 왔다.

가을 햇살 가득한 해풍을 맞으며 삼베 위에서 제 몸을 바싹 말린 엿기름은 '우두리햅번표 엿기름'이라고 성과 이름을 갈았다.

인간과 합작한 겉보리의 환생이다.

엿기름을 햇볕에 바싹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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