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수전통시장 수선·리폼 명인을 찾아서

여수서시장내 20개 즐비한 수선집...부부수선사 다니엘수선
코로나 여파로 힘들지만 손님 꾸준한 이유는 '착한가격'
수선은 천직...건강만 허락하면 정년이 없는 직업

  • 입력 2020.10.02 16:29
  • 수정 2020.12.02 23:52
  • 기자명 심명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륵...

미싱작업중인 허윤희씨

네모난 기다란 원단을 펼쳐 놓고 재봉틀 돌아가는 잰 소리가 들린다.

보일 듯 말듯 빠르게 움직이는 바늘사이로 옷을 움직이는 손놀림은 스릴이 느껴진다. 정신줄을 놨다간 손가락이 벌집이 될 수도 있다. 찢어진 블라우스가 어느새 새옷으로 탄생한다. 몸에 맞지 않는 새로산 원피스는 맞춤복으로 뚝딱 변신한다.

헌옷도 새옷도 이곳에 오면 '날개를 단다'

추석을 앞두고 지난 29일 여수의 가장 큰 전통시장인 서시장을 찾았다. 시장내 여기저기 즐비한 수선집에 눈길을 사로잡는 낯익은 기계들이 있다. '미싱'과 '오바로크' 그리고 일반인에게 생소한 '스꾸이'와 '인타로크' 돌아가는 소리였다.

바느질 기계인 '미싱'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오바로크는 한 장 이상의 천 위에 바느질하는 기계다. 스꾸이미싱은 주로 홈패션이나 정장바지 밑단 등에 많이 사용되는 단뜨기 전용 미싱이다. 라운드티를 리폼할때는 인타로크미싱이 사용된다.

예전에는 헌옷을 많이 고쳐 입었지만 요즘엔 새 옷을 사면 꼭 거처야 하는 곳이 수선집이다. 명절에 수선집을 다녀온 꼬까옷은 명절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그래서 우리 곁에 멀고도 가까운 단어 수선집의 미싱 돌아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서정시장내 위치한 다니엘수선은 착한가격으로 손님이 줄을 잇고 있다

미싱이 등장하는 80년대 운동가요 '사계'는 그 당시 미싱공들의 고된 노동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중략)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또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미싱'은 우리말로 재봉틀을 말한다. 영어의 소잉머신(Sewing Machine)에서 머신이라는 말을 일본식 발음 '미싱'으로 사용된 데서 유래됐다.

당시는 그랬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미싱을 돌리고 또 돌렸던 평화시장내 어린 미싱공들은 직업병으로 쓰러졌다. 이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한국 노동운동사의 큰 전기를 마련했다. 미싱공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노동조건은 쉽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허윤희씨가 수선핀을 팔에 차고 있는 모습

부부 수선사의 성공비결 '착한 가격'

수선집만 20여개가 즐비한 서정시장내 수선전문 '다니엘수선'은 4평 규모다. 부부가 운영한다. 딱 받을 금액만 받는 착한 수선집으로 소문났다. 단을 줄이는데 2,000원 선이다. 다른곳에 비해 저렴하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40대 단골고객의 말이다.

"버려야 될 옷을 새롭게 리폼하면 새 옷이 탄생해요. 새 옷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이분들이 늘 고맙죠.

옷이 작아 판매 못하는 옷을 고객에 맞게끔 늘려주면 우리도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수선을 하지 못하면 고객은 구매를 포기하게 되고 입고자하는 옷을 입지 못하면 매출도 안 나오죠. 수선 때문에 우리는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어요"

주인장 허윤희(63세)씨는 항상 손목에 핀꽂이를 차고 일한다. 단을 줄이고 늘릴 때 사용되는 고정핀은 대개 수선대 위에 놓고 일을 하지만 밀려드는 손님들이 그만큼 많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허씨는 젊어서 식당을 운영하다 수선집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YWCA에서 수선과 재단을 배운 뒤 늦게 전업한 케이스다. 중앙시장에서 3년간 일하다 어느덧 이곳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다. 착한가격에 시골에서도 많은 단골이 몰린다.

서정시장내 다니엘 수선 허윤희씨 모습

수선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어렸을 때부터 바느질에 소질이 있었다. 젊은 시절 구로공단에서 수선 일을 해본적은 없지만 시골에 미싱이 있어 어렸을때 언니 옷을 줄여 입었을 정도였다.

수선하면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리폼해 손님이 맘에 들면 보람이 크다"면서 "그 모습을 보면 저도 만족하고 미싱을 하면 성질이 차분해진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안 좋은 점은 "손님이 까탈스러워 수선을 서너번 해줄 때도 있다. 일이 밀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12시간도 일을 해본적도 많다"라고 들려줬다.

한참 바빠야 할 명절대목이지만 코로나 여파로 요즘은 한가하다. 가장 바쁜 때는 철이 바뀌는 봄이나 가을철이다. 수선전문가인 그의 말이다.

"수선은 서비스업인데 이제는 천직이라 생각해요. 큰돈은 못 벌어도 노후에 나이 들어서도 눈만 허락하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단을 줄이고 늘리고 원피스도 만들고 옷감을 떠다주면 원하는 대로 뚝딱 만들어준다. 또 리폼을 통해 디자인도 바꾸고 원하는 취향대로 옷을 새롭게 리폼해 준다. 요즘 취업이 어려우니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사람이 배워두면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수선이라고 말하는 그녀. 우리 곁에 점점 사라져가는 재봉틀 소리가 오랫동안 꼭 있어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