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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가려내야 할 때

우연히 목격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여순사건을 다룬 소설 쓰기로 마음 먹어
남해군 출생이지만 유년기를 여수에서 보내 1948년 당시 다섯살이었던 작가
실존인물들을 형상화하고 해방 이후 정세를 파악할 수 있어 '역사소설' 기능도

  • 입력 2020.11.06 10:00
  • 수정 2020.11.06 10:33
  • 기자명 소설가 정미경(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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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종 장편소설, 여수의 눈물

어린시절 여수에서 지낸 중견작가 백시종이 장편 『여수의 눈물』을 펴냈다. 

『여수의 눈물』은 1948년의 여순10‧19를 다룬다. 창작동기에 대해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 하나는 작가 스스로 정해 놓았던 ‘숙제하기’, 다른 하나는 박물관에서 목격한 사진 한 장이다. 작가는 누더기를 걸친 채 떨고 있는 28명의 빨치산들을 담은 사진 속에서 그들의 ‘팽팽한 살아 있는 눈빛’에 함몰되었다. 무엇보다도 『여수의 눈물』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는 해마다 한 권씩 작품을 발간하는 것에 대하여 10년에 한 편 내놓더라도 '군계일학 같은 작품'을 만들라는 친구의 훈계였다.

작가는 그 군계일학 같은 작품이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 숙제라고 생각하고 『여수의 눈물』을 창작했다.

백시종은 남해에서 출생하였지만 1957년 여수 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동성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유년기 10여 년을 여수에서 보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여천 군청청사 뒤쪽이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여순10‧19가 발생한 1948년에 여수 공화동에 있었다. 당시 작가의 가족들도 공터에 도열해 있었는데 보따리에서 나온 성경과 찬송가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설에서 서울의 유명사립대학을 정년퇴임한 화가인 주인공 ‘나’(서병수)는 작업실로 쓸 폐교를 구하던 중 친구 김귀석에게서 어린시절 떠나온 고향 여수에 맞춤한 것이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김귀석은 여순10‧19 당시 하룻밤 22명이 죽었던 순천 낙안 신전마을 출신이다. 1살이었던 그는 가족을 모두 잃고 다행히 살아남아 작은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작가는 김귀석을 소개하는 장에서 신전마을의 비극적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여수는 ‘나’의 가족들에게는 금기된 말이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총 맞아 죽은 곳이고, 어머니가 고향사람들의 종잣돈을 거둬들여 야반도주한 곳이었다. ‘나’는 폐교에서 1948년 당시의, 28명의 빨치산들이 포승줄에 묶여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 배다른 형에게 보인다. 형은 그 속에서 자신의 친어머니와 아버지를 쏜 박상돈을 발견하고 어린시절을 기억해 낸다. 이로써 여순10‧19의 참상이 드러난다.

작가는 순천 낙안 신전마을 사건뿐만 아니라 실존인물인 김종원을 형상화해 낸다. 또한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실존인물인 최능진이 등장한다. 그는 절대 권력자였던 이승만에게 맞섰던 유일한 인물로 바로 그 점에서 작가는 이 소설에서 꼭 그리고 싶었던 인물이었다고 밝힌다. 소설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서북청년단 등 해방이후의 정세가 많은 부분 할애되고 있어 일종의 역사소설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백시종은 젊은 날 최능진을 보필했던, 치매를 앓고 있는 노년의 등장인물 김찬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는 작가의 외침으로 보인다.
“죄 없는 양민이 무한대로 죽어 넘어가고, 피 끓는 청춘을 한껏 즐겨야 할 남북의 청년들에게 군복을 입혀 서로를 향해 총을 쏘게 하고, 픽픽 쓰러지게 하고, 그 싸늘한 시체로 언덕과 산을 만들게 하는 저 참혹한 전장을 어찌 방관하며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그 말이야.”(390쪽)

결국 김찬구를 통해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는, 군자금을 탈취 민족을 배신한 사이비 독립투사였음이 밝혀진다.

올해는 여순10‧19 72주년을 맞은 해다. 백시종 스스로 부여한 ‘숙제하기’로서의 이 작품이 여순10‧19의 진실을 밝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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