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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살피게 하는 자기성찰
헛된 것에 손발 쓰지 말라고 손발 없는 토르소가 내게 말한다

  • 입력 2020.11.29 17:02
  • 수정 2020.11.30 10:46
  • 기자명 김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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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작가의 작업실서 처음 만난 작품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동이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닌 보는 것.

그림을 샀다. 돈과 그림을 바꿨다. 효용의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림 앞에서 감동 어린 눈물을 흘린 경험으로 그 순간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흘러가는 그림도 있지만 그림이 내게로 다가 올 때가 있다. 그림이 내게 다가온 날, 그림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 갔다.

방문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림속으로 들어갔다.

그림 앞에서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이 내 의식을 확장 시켰다. 그림을 바라보며 지난 날의 쓰라렸던 감정이, 무거웠던 상황들이 작품에 배어들어 내 머리를 스친다.

글을 읽으며 풍경을 그린 순간이 있었다면, 그림을 마주하며 내 이야기를 꺼낸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니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넨다.

낡고 늙은 어깨지만 이 그림엔 기대고 싶었다.

그림을 소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산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소장하는 것은 향유하고 보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평범하지 않아 팔리지 않는 그림, 그래서 나는 토르소가 더 좋다. 사람을 느끼고, 삶을 읽어가는 그림, 나는 박치호의 토르소를 샀다.

내가 사는 우두리 바닷가 마을 집에 그 그림을 걸었다.

돈을 주고 산 작가의 토르소는 낮은 지붕들이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우두리 바닷가 마을 집에 걸려 있다.

밀려오는 파도의 투덜거림을 밤낮으로 들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 엄마의 모습이기도 하다. 텃밭의 일손을 잠시 멈추고 땀을 식히며 의자에 몸을 기댈 때 벽에 걸린 토르소와 마주한다. 늘 보는 그림이지만 내 생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손 발 잘린 저 토르소와 나는 함께 산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살피게 하는 자기성찰, 헛된 것에 손,발 쓰지 말라고 손,발 없는 토르소가 내게 말한다.

한 점의 그림이 풍요로운 영혼을 담아 내게로 왔다. 어둡고, 무거운 토르소를 마주 한 후의 세상은 더 밝고 희망차다. 창문 가득 푸른바다를 담은 맑은 하늘이 더 없이 아름답게 다가 온다. 매 순간이 삶의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닫는다.

가을은 가고 동백이 온다.

가을은 가고 동백이 오는 마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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