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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도시락 전달 봉사 마무리, '시원'보다 '섭섭함'이

여수시노인복지관 '독거노인도시락봉사' 사업이 끝났다는 소식 접해
일주일에 두번 행하는 '도시락전달봉사', 종교수행과 다를 바 없어
봉사로 도움을 드린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르신들을 통해 힘을 얻어
전국에서 묵묵히 남을 돕는 '봉사고수'들께 절로 존경심이

  • 입력 2021.01.02 19:29
  • 수정 2021.01.06 13:24
  • 기자명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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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께 도시락을 전달해드리기 전에 사진 한장을 찍었다

이십년간 이어온 도시락봉사가 오늘(12월 31일) 마무리됐다.

여수시노인복지관이 '독거노인도시락봉사' 사업을 지난 12월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에 사업이 끝나니 더 이상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접하자 기분이 묘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시간 봉사를 이어올 각오를 한 건 아니었다.

2001년 어느날, 지역을 위해 봉사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정보지에서 도시락을 전달할 차량 운전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지금까지 봉사는 특별한 장기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는데 도시락배달은 나같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겼다.

그동안 아이들한테 입버릇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살았는데, 당시 이번이야말로 직접 모범을 보일 기회라 여겨, 즉시 정보지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했다.

보온통에 담긴 국을 냄비에 덜어 끓여드린다

떳떳한 선생이 되고자 시작했던 발걸음이었는데 어느덧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무술 도장 문을 열고 거의 동시에 반찬배달 봉사를 시작했으니, 이 일도 두 번째 직업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웅천에 아파트 대신 논과 밭이 펼쳐져 있을 때였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 문안 인사드리는 기분으로 다니던 길이 이제는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모습에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20년 전 웅천할머니의 “내 강아지 왔는가”라는 말씀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부러 챙겨두었다”며 한 구석에 아껴두었다 내어주시는 떡 한조각의 사랑이 벌써 그립다.

20대에 시작한 봉사활동이 40대에 마무리됐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기고 젊은 청춘이 흘러 어느덧 중년의 반열에 올랐다. 40년간 이어갈 생각으로 시작했기에 이렇게 마무리됐다니 갑작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자연마을 길을 추운 겨울에도 아버지를 따라 봉사를 다니는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함께 봉사를 다닌 아들 둘도 이같은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더니, 내 아이들도 방학이면 봉사를 따라다녔다.

너다섯 살때부터 데리고 다니다보니 어느 날은 아이가 먼저 "왜 도시락을 전해드리러 가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아빠 옆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보고 배운 아이들은 학교에서 ‘인성이 바르다’는 말을 들으며 다녔다.

매주 두번씩 복지관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순간이 되었다. 경건하게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니 독실한 종교의식이 따로 없는 세월이었다.

초창기에는 복지관에서 밥과 국을 직접 도시락에 담는 일도 겸했다. 복지관 관장님은 그때마다 "설렁설렁 담지 말고 꾹꾹 눌러 담아라"라는 말을 반복하시곤 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이 한 그릇에 생사가 달려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번 받은 밥과 반찬,국을 몇차례 나눠드신다는 걸 알고나니 더욱 정성을 다했다.

영양사분들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과 밥은 보기만해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고봉밥까진 아니더라도 꾹꾹 눌러담은 음식으로 가득한 그릇을 보면 안심이 됐다. 영양사분들이 만든 음식을 단순히 전달만 했을 뿐인데도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맡은 구역은 화양면 주변이었다. 도시락을 건네며 아픈 곳이 없으신지 묻고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떠올랐다. 불편한 곳이 있다고 하시면 복지관에 알려드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욕심없이 살아온 이유가 그동안 도시락을 전달하며 만난 어르신들이 생활의 활력과 힐링이 되어 주신 덕이 아닐까 싶다.

불평 한번 없이 아빠를 따라 봉사를 다니는 아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특히 성장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성이 뛰어난 학생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을 알고 나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큰 선물과 보람이다.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묵묵히 땀흘리고 계시는 우리 선배 '봉사고수'님들과 사회복지사분들이 많다. 그분들에게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섭섭해서 어쩔까잉~”하는 할머님의 마지막 울먹거리는 말씀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라지더라도 선한 영향력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면면이 이어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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