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둘레의 특별한 지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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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둘레의 특별한 지명(2)
  • 김배선
  • 승인 2021.01.0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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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이야기㉑
'넘안에 돔(동네)' 라 해서 이름붙은 넘너리, '돔'은 동네의 옛말
부자가 많이 난다 해서 이름붙은 '다부산(多富山)'은 '따부산'으로 불려
따부산에서 치성을 드리면 여자는 남아를 낳고 어부는 만선을 이룬다는 속설도
[편집자 소개글]

<조계산의 눈물> 저자인 김배선 씨가 지난 2018년 3월 19회까지 연재한 '구봉산 이야기' 를 이어서 연재한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저자는 향토사에 관심이 많아 조계산 주변의 '여순사건'관련 이야기를 오랫동안 수집하기도 했다.

김배선 씨는 여수의 대표적 명산인 구봉산의 숨은 이야기를 19회까지 연재하다 사정으로 쉬었다. 이어서 독자들에게 구봉산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너리(마을)

'넘너리'는 여수 구봉산 남서해안 포구의 작은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여수항에서 서쪽으로 가막만과 거북선 건조장인 선소로 가는 협수로의 안쪽 살짝 굽이진 곳에서 소경도를 건너다보는 곳이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을 넘너(내)리로 불러 오고 있지만 이제는 그 뜻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저 앞선 사람들이 불러 온대로 이어 부를 뿐이다.

넘너리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넓은 너리(파도가 닿는 해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로서 '넓다'의 '넓'이 '넙'에서 '넘'으로 변하여 넘너리가 되었다고 하나 넘너리에는 넓은 해변이 없어 의아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두 번째 어원이라는 “넘안에 동네(돔)"에 대하여 자세하게 정리를 하여 본다.

그곳을 언제부터 “넘안에 동네”라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름에 담긴 뜻으로 보아 이웃의 큰 동네인 새끼미(생금)와의 지형적 관계로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 형태를 이루면서부터 불렸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 지형이라는 것이 구봉산 정상에서 남서로 해안까지 뻗어 내려 두 마을을 가로막은 산줄기이다.

새끼미에서 보았을 때 '산줄기(고개)너머 안쪽에 있다'하여 '넘안에 동네'로 불리던 것이 행정구역상 리가 되면서 '넘내(너)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넘안에 돔(동네) 이외에도 '넘안에 골', '넘안에 들'과 같이 '넘안에'로 불리는 지명이 곳곳에 있다.

넘너리의 어원과 변천을 살펴보면, '넘너리'는 넘내리의 '내'가 노인들에 의해 '너'로 변한 발음이다.

'넘내'는 '너머의 안' 이라는 '넘안'이 변화된 말로,  '넘내리'는 '넘안에 돔(똠)', 즉 '산줄기 너머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돔'은 동네의 옛말로 똠으로 발음한다.

광주전남 곳곳에서는  '아랫똠(아래동네)', '중똠(가운데 동네)', '웃똠(웃동네)' 등 ~똠(돔)이라는 옛 이름의 자취가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서편제의 마을인 청산도의 '중리'도 '리'로 부르기 전에는 '중돔'이었고 여수의 구봉산 북쪽 대치마을의 노인들은 지금도 '아래똠', '중똠', '웃돔'으로 옛 명칭을 사용하는 분이 있다. 대치마을엔 '건너몰','갓뒤','강남골' 명칭도 있다.  

지난 2012년 '넘너리' 지명의 어원에 관심을 갖고 처음 마을을 찾았을 때, 대를 이어 오래토록 살아온 노인은 거의 없고 비교적 젊은이들이 어업에 종사하는 포구로 바뀌어 마을 이름에 대한 내력을 아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시내나 타지로 나가 사는 노인들에게서는 예전처럼 '넘너리'로 부르는 사람을 흔히 만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마을주민들은 하나같이 '넘내리'라는 행정명칭인 표준발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넘너리**」라는 상호가 있어 반가우면서도 마음먹고 찾은 방문을 헛걸음으로 나오면서 요즈음 전통마을에 세워져있는 '마을의 내력(이름포함)' 안내판을 머리에 떠올리며 아쉬움과 함께 넘내리의 내력을 상상해 보았다.  


 
따부산

여성의 생식기 상징 산의 형태 

따부산은 여수 구봉산의 동남쪽 산비탈 봉산동의 웃머리에 아주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다.

산세를 보면 정상에서 동으로 뻗어 내리는 부혈(富穴)에 해당하는 이강산줄기가 한산사를 감싸 내리는 지점에서 우(남)로 한줄기 분기하여 큰대문집 앞 비탈로 절 찾을 사람들 힘 좀 덜라고 잘록하게 「사질목」을 내고 나서 다시 힘주어 솟은 다음 두 갈래로 나뉘어 토실한 양쪽줄기를 정 대칭으로 옥아 미리 구상했던 형상대로 끝마무리를 하였다.

그 결과 생김새가 한눈에 보아도 우물(尤物)을 떠올릴 여인의 생식기와 흡사한 작품이 되어 점점이 섬으로 가득 수놓인 여수의 해안 서쪽의 뱃길을 향해 앞을 열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앉아 구봉산에서 '다(따)부산'이라는 독립된 이름의 주인이 되었다.  

따부산은 한자로 多富山(다부산)으로 쓴다. 그러나 사람들이 불러 오는 과정에서 첫소리가 된 발음으로 변하여 따부산이 된 것이다.

마을노인당을 찾아 이름에 대하여 물으니

“주변에서 부자가 많이 난다는 뜻이고 전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

"사람들은 따부산이라고 안 그러고 '보지산'이라 그러는구만, 꼭 그렇게 생겼제”

산의 생김새가 여자생식기와 흡사하여 모두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이 치부로 여기는 신체부위이기에 들어 내놓고 부르기 거북한 말이기는 해도 누구라도 보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름이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살면서부터 줄곧 불려와 지금도 인근 주민들이나 낮 익은 사이에는 '따부산'이 아닌 '보지산'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부르기가 민망했으리라. 

사진에서 보듯이 지금은 나무가 자라 실감이 떨어지지만 민둥산이었을 때는 정말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따부산'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호기심 가득할 여체의 특정부위를 이르는 보지산은 그 모양이 있는 한 사람들의 입에 머무를 이름이다. 아쉽게도 다부산이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었다.  

따부산 그곳에서는 소원을 빌기도 했다.

따부(보지)산 골짜기의 중앙 생식기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에는 물이 나고 오래된 묘 하나가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에게 풍수적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제부턴가 그곳은 생남과 만선을 기원하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이 낳기를 원하는 여인들 중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찾아가 치성을 드리는 이도 있었고,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어선을 부리는 선주나 선장들이 제수를 차려 놓고 만선을 기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로 인해 그곳에서는 가끔 불이 나기도 했다. 원인은 제를 드린 후에 소지를 하거나 소품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과실로 발생하기도 했지만 불이 나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속설을 믿고 일부러 불을 내는 경우(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라면 물론 어처구니없는 일로 생각되겠지만 자연을 의지하고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신을 향한 간절한 소망에서 비롯된 풍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따부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는 주변의 육지가 아니라 가막만 안쪽의 가까운 섬과 그 사이 항로의 수로이다.

그래서 여수에서 서쪽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뱃사람들은 포구로 돌아올 때마다 풍요로운 여인「따부」의 마중은 어로의 고달픔을 녹이고 늘 만선의 희망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이름과 모양이 특별한 '따부산'은 부와 생명의 기를 품어 주민들과 교감해온 구봉산줄기의 볼수록 어여쁜 산이었다.

 * 사질목¹: 절(한산사)로 가는 길(질)의 목진 곳. 시내(서교동 방향) 사람들이 한산사를 가기 위해 이강산 끝자락에 있는 큰 부잣집 대문(瑞興門)앞에서 오르던 비탈길중간지점의 고갯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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