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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둘레의 특별한 지명(3)

구봉산이야기㉒
큰 고개, 한재라는 뜻의 대치마을과 감나무가 많아서 붙은 이름 강남골
한재고개는 과거 연곡재로 불려, 골짜기를 잇는다는 뜻..이후 '한재'로 명칭 공식화

  • 입력 2021.01.14 11:26
  • 수정 2021.01.14 11:36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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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마을 건너몰

조선 선조23년(1590)경 봉(奉)씨 일가가 최초로 이곳에 터를 잡았다는 대치마을은 구봉산의 자락에서는 유일하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구봉산이야기에는 대치마을이 가장 많은 소재로 등장을 한다.

대치(大峙)는 우리말로 한재 또는 큰 고개라는 한자말로, 특별할 것이 없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이 마을을 특별한 이름으로 소개하려는 이유는 말과 풍속들이 급격히 사라져버린 지금, 아직도 대치마을에는 귀한 옛 지명들이 그대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옛 지명이 연곡재이였던 한재가 여수시의 공식명칭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다.

 

대치마을의 지명들

대치마을 감낭골

*대치(大峙): 마을 이름, 우리말 '한재(큰 고개)'의 한자말

*마을의 구성: 아랫똠 + 중똠 + 건너몰 + 감낭골 + 갓뒤 다섯 모둠

-아랫돔(아랫동네): 현재 시가지로 변해버린 여서로터리 쪽의 아랫마을

-중돔(가운데 동네): 현재 마을회관 아래로 형성된 중간의 중심마을

-넌너몰(건너 마을): 중돔에서 보아 큰터골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의 건너라는 뜻으로 한재방앗간(부영초교 후문) 주위의 집들

멀리서 바라본 감낭골

-감낭골(감나무 골): 중돔 좌측 절이 있는 골짜기와 마을(대치2길)의 이름 최초로 터를 잡은 곳이 이곳이라고도 하며 감나무가 많았다고 함(낭은 나무의 옛말 -낭구)

-갓(깟)뒤(가+뒤의 합성어): 1940년 일제가 신월리에 군사비행장(수상활주로) 건설을 위한 강제 철거민 중의 일부가 고갯마루(한국화약 후문 앞)에 정착한 대치마을 가의 뒤에 있는 마을

*큰터골: 마을 뒤편 구봉산방향의 큰 골짜기(큰덕골로 발음)

*진(긴)등: 구봉산에서 한화후문으로 내려 뻗은 줄기가 긴 능선

*속등: 큰터골 뒤편(위) 큰 골짜기 중앙에 있는 구봉산 정상을 향한 가운데 줄기

*깨밋등(깨맷등 까맷동): 큰터골과 진등 사이의 작은 줄기: 어원은 ‘개미등’

*깨맷등 속등: 진등과 속등 상단 사이의 조그만 잔등

*큰까끔: 마을 뒤편 좌측의 산 (잔디밭 몬당 꽃뜰방 몬당이라고도 함) -까끔은 산의 이 지방 사투리-

*샘꼬랑: 큰터골에서 내려오는 건너몰과 경계인개울 -꼬랑은 도랑의 사투리-

*깨맷등 꼬랑: 진등과 속등 사이(진등 좌측)의 작은 골짜기에 형성된 개울

*큰샘(중돔 큰샘): 새마을슈퍼 뒤편의 샘 (부영7차 뒤편에 우물을 판 후 갈수 폐정)

*건너몰샘: 큰터골 진입구에 있는 건너몰 사람들의 샘(상수도가 놓인 후 폐정)

*심박골: 감낭골 좌측의 골짜기(감낭골과 부영7차 등산로 사이의 편백 숲 골짜기)

*당산: 현재 당산나무가 있는 곳이 아니라 마을회관 우측 건너편 부영7차후문등산로입구 이천 서 씨 중조 묘와 소나무 노거수가 있는 곳.

400년 수령의 세 아름드리 당산(느티)나무가 있었고 해마다 섣달그믐 무렵 마을 당산제를 지내왔으나 1976년 나무가 벼락을 맞아 죽은 이후 당산제가 끊겼다.

이후 그 자리에는 새로 느티나무를 심어 소나무와 어울려 크게 자랐으나 갑론을박 끝에 팔려 나갔다.

 

대치와 한재 그리고 연곡재

대치마을회관

현재 한재로 불리는 고개의 다른 이름은 연곡재이다. 다만 각각 불렸던 시기는 알려지지 않는다.

여수 교동에서 여서동으로 넘나드는 신도심이 개발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재를 ‘연곡재’라 부르는 노인들을 흔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마을의 이름이기도 한 ‘한재’와 골짜기를 잇는다는 뜻의 ‘연곡재’를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부른 것이다. 그러나 여문 신도심 개발에 따라 1989년 터널이 뚫리고 여수시에서 터널의 명칭을 ‘한재터널’로 공식화하면서 모두 이곳을 한재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시에서 자문위원회의를 열어 명칭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하나로 일치되지 않았다. 연곡재와 한재 둘 다 예부터 불러온 이름이기는 하지만 연곡재는 잊혀가는 이름이고 한재는 본래 그곳이 아니라 대치마을 뒤 신월리로 넘는 고개의 이름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대립 끝에 이곳 명칭은 현재 사람들의 귀에 익은 한재로 결정되었다. 그러자 옛 지명을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했다.

다음은 한재와 연곡재 관련 증언이다.

“옛날에는 한재가 대치마을과 신월리를 넘나드는 고개(한국화약 후문)였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대치가 되었다” (대치마을 주민, 이석주 85)

“한재의 옛 이름은 연곡재였다”(옛 지명 찾기 운동 여수모임)

"연곡재 터널 준공을 앞두고 시청에서 명칭 자문회의를 한다고 불러서 갔어요. 김충석 시장이었을 때인데 내가 자문위원이었거든. 한재로 부르자는 위원이 있었고 나는 연곡재를 주장했어요. 원래가 연곡재였으니까.

그러나 한재라고 부르기를 주장하는 위원도 옛날부터 한재라고 불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드구만요.

그런데 시장이 한재를 좋아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버립디다. 나는 한참 더 설명을 하다가 안돼서 퇴장을 해 버렸어요.

그렇게 터널 이름이 한재로 결정된 것이에요, 아무것도 모른 사람들이…" (2015년 대치 이석주 85)

증언을 하는 이 노인의 억양과 표정에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렇게 ‘한재터널’ 로 불리게 된 이후에 여수의 ‘옛 지명 찾기 운동모임’ 회원들의 노력으로 영취산으로 부르는 진례산과 연곡재가 옛 이름을 찾았다지만 한재가 여수시의 공식적인 이름이 된 후였으니 연곡재는 영원한 옛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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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 2021-01-19 10:57:10
연곡재는 본래 영고개에서 변한 말로 보입니다. 옛주민들이 발음 할때 '연꼭' 또는 '영꼭' 이라고 하여 연곡재라 하게 된 것은 영꼭에다 고개이니 한자 재를 더한 말입니다.
영고개는 한재마을 사람들이 고개 아래가 영이 있던 곳이니 영으로 가는 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수의 역사와도 일치하는 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