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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의 꾀꼬리 한 쌍

구봉산이야기㉓
우연히 눈에 들어온 샛노란 꾀꼬리 한 쌍이 7년간의 관찰로 이어져
꾀꼬리 한 쌍은 새끼와 함께 네 마리가 되어 구봉산을 찾아
그러나 한국화약 외곽이 통제구역에서 풀리며 사람들의 왕래 잦아져
꾀꼬리 부부와의 만남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어

  • 입력 2021.01.21 09:40
  • 수정 2021.01.21 09:47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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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의 꾀꼬리

해마다 5월이면 여수 구봉산 북쪽 산비탈에 꾀꼬리 한 쌍이 날아든다.

그리 깊지도 않는 산에 꾀꼬리가 있다니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나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 왔다가 10월 어느 날 모습을 감추었다. 여름 한살이 번식을 마치고 월동을 위해 남쪽나라로 기나긴 비행을 떠났을 것이다.

내가 구봉산에서 처음으로 꾀꼬리를 발견한 것은 7년 전인 2013년 6월 어느 날 오후였다.

여서동 대치마을 뒤 큰방천 골짜기에서 텃밭 일을 하다 잠시 고개를 든 짧은 순간 이었다.

팔십여 미터 떨어진, 구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울창한 숲 가장자리에서 샛노란 점 하나가 나뭇가지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직감적으로 꾀꼬리임을 알아봤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날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다음날 오전 아홉시 넘어 구봉산에 오르는데 머릿속에는 오로지 꾀꼬리 생각으로 가득해 줄곧 어제 그 자리만 맴돌았다.

열시가 되어갈 무렵, 눈앞에 기적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서쪽 마을 건너편 산에서 가로질러 날아온 꾀꼬리 한 쌍이 고도를 낮춰 숲 언저리로 몸을 붙이더니 어제 그 자리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구봉산에 꾀꼬리가 있다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구봉산 위로 떠오른 햇살을 비껴받은 샛노란 꾀꼬리의 비행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집중하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알아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꾀꼬리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낮 동안 계속 주시하였다.

온종일 몸을 숨겼던 꾀꼬리는 오후 다섯 시가 되어갈 무렵 나타나더니 아침에 날아 왔던 방향인 건너편 한국화약 우측 정자가 있는 앞산을 향해 까만 점으로 사라졌다. 그날은 구봉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꾀꼬리를 처음 만난, 그야말로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 단 두 차례만 나타나는 꾀꼬리를 향한 7년간의 관찰, 아니 황금빛 대화가 시작되었다.

해가 바뀌어 봄이 되자 작년의 그 꾀꼬리를 기다렸다. 혹시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나 않았을까 했으나 공연한 걱정이었다.

정확히 5월 그맘때가 되자 노란 꾀꼬리는 어김없이 전과 같은 하늘길로 날아들었다.

그해 한여름에 나는 구봉산 꾀꼬리 한 쌍과 숨바꼭질 같은 짝사랑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해에도…

그렇게 4년째가 되던 해(2017) 오월, 꾀꼬리의 첫 모습이 4~5초가량 눈에 잡혔다. 하지만 이전과 모양새가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작년 그 녀석들이 아닌 것이 분명해!’

머리를 갸웃하고 생각하니 산짐승이나 새들이 번식을 하면 새끼들에게 터전을 물려주고 떠나는 습성이 떠올랐다.

지난 4년 동안 새끼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올해 찾아온 녀석들은 작년의 새끼가 분명하다는 확신에 대를 이어 구봉산을 찾아오는 그들이 한결 귀한 손님으로 여겨졌다.

 

마음 졸이는 기다림

멀리 날아가는 꾀꼬리

그후 해마다 구봉산의 꾀꼬리 한 쌍을 기다리고 만나는 것은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지난 2019년 가을로 접어들 무렵, 꾀꼬리가 눈에 띄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건너편 산에서 일정하게 날아오던 꾀꼬리의 방향과 시간이 불규칙해진 것이다.

이상하게 여기고 그 원인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 이유가 대치마을 입구에서 한국화약후문까지 신설하는 도로공사 때문임을 알아냈다.

비행이 시작되는 산 아래 골짜기에서 날마다 커다란 소음이 반복되니 그곳을 피해 정상방향으로 우회를 한 것이다.

꾀꼬리는 중간지점의 숲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이곳으로 출발했다. 시간과 방향이 바뀌고 숲 언저리에서는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자리에서는 발견이 어려워졌던 것이다.

연내로 공사가 끝나면 원래의 비행궤도로 돌아가리라 기대했지만 이후에는 건물이 신축되며(2020) 소음이 멈출 날이 없었다. 나의 기다림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것이 혹시 마지막 이별을 예고하는 징조가 아닐까 염려하고 있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10월 19일 오후 4시경 며칠째 보이지 않던 꾀꼬리가, 그것도 네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눈을 의심하고 있는데, 미처 놀랄 틈도 없이, 뒤따르는 새끼들은 행여 어미의 뒤를 놓칠세라 공중제비를 하며 숲속으로 사라지더니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새끼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준 그날이 이별인사였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어미새들이 그대로 올 지 새끼들이 그 비행을 이어받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누가 오더라도 나는 또 내년 5월을 마음 졸이며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한 해 사람들로 불안했던 마음이 깨끗이 잊히기 바라면서 말이다

 

사람들의 간섭만 없다면

구봉산의 꾀꼬리를 생각하면 DMZ가 떠오른다.

1970년대 말 신월동에 국가방위산업체인 한국화약이 들어서자 구봉산 서편 전체는 비무장지대나 다름없는 통제구역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아울러 인접한 대치마을과 뒤편의 골짜기까지 개발이 금지되어 저절로 확실한 자연보호구역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구봉산의 서북방은 오랜 기간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었고 덕분에 산림은 수많은 조수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치마을과 뒤편의 구봉산 골짜기는 새들의 천국으로 변했다.

계절에 따라 보이는 새들도 달랐다. 가장 높은 하늘은 매 종류가 차지했고 다음은 까마귀, 까치, 물까치, 때까치, 꿩, 산비둘기, 딱따구리, 직박구리, 곤줄박이, 오목눈이, 박새, 뱁새, 참새 등등이 무리를 지었으며 드물게는 할미새, 후투티, 굴뚝새 등도 눈에 띄었다.

그중에 최고로 귀한 몸은 해마다 잊지 않고 구봉산을 찾아오는 꾀꼬리 한 쌍이다.

그렇지만 올해 꾀꼬리 가족은 갑작스레 겪어야 했던 변화의 불안을 내게 전하면서 떠나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변화는 이전부터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10여 년 전 한국화약 뒤편의 경계군 초소 철수와 더불어 철조망의 외곽이 통제구역에서 풀렸다. 둘레길이 나면서 사람들의 왕래로 조수(鳥獸)들이 눈치를 보는 환경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십년 전(2010)까지만 해도 대치마을의 뒤 골짜기에서 눈에 띄었던 산토끼, 족제비, 삵 등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니 이는 조류들에게도 환경의 변화를 알리는 예고였을 것이다.

이대로 야금야금 도로가 나서 인간들의 활동영역이 확산된다면 예고대로 새들도 어쩔 수 없이 떠나버릴 것이다.

‘사람들의 간섭만 없다면…’

부디 반 세기를 키워온 조화로운 자연의 평화가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구봉산을 찾는 꾀꼬리부부의 아름다운 황금빛 사랑이 두고두고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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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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