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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봄날은 지금이다

일이여! 그대는 나의 숨결이노라

  • 입력 2021.01.21 09:44
  • 수정 2021.01.21 11:16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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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인생의 봄날이다. 파이팅!!!

삶은 정답이 없다. 오직 오답 투성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마치 인생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삶의 풀이 방법을 배우고 있다.

삶에는 당연히 A플러스 인생도 없으며 F플러스 인생도 없다. 그 누군가가 처음에 삶은 정답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한 이후에, 우린 별 생각 없이 삶의 전 과정에서 정답만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삶에는 당연히 A플러스 인생도 없으며 F플러스 인생도 없다. 그 누군가가 처음에 삶은 정답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한 이후에, 우린 별 생각 없이 삶의 전 과정에서 정답만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K씨는 '학교에서 인생의 정답을 배웠고, 사회에서는 인생의 오답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흔히 말하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요 우등생이었다. 그는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고, 장차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도 한결같이 말했다.

K씨는 초등부터 대학까지 A플러스 공부를 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한 후에는 F플러스 인생을 살고 있다. 굳이 여기서 말하는 A플러스 인생은 많은 돈을 벌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삶을 의미하며, F플러스 인생은 적은 돈을 벌며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삶을 뜻한다.

K씨는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끝내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다. 10년 넘게 매달려 봤지만 운명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인생에는 정답만 있다고 믿고 자랐기에 오답의 길을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정답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고 오답은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K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학대하며 쓸모없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누군가는 사는 것을 공평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받아 지금은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오답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를 들어보자.

삶은 생계를 넘어 자아실현까지 달려가는 마라톤이다.

 

Q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K : 식당업하면서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Q : 무슨 의미이죠?
K : 삶을 사랑하다는 거죠. 어릴 때는 학교의 우등생으로 생활을 했기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죠. 대학 선택도, 고시 준비도 다 제 뜻보다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허수아비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부모님의 가업인 식당일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죠.

Q : 특히 자존심이나 체면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요?
K : 처음에는 죽음을 생각했죠. 그렇지만 부모님의 성실한 삶을 보면서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어요. 그래도 핏줄이라고 품에 안아주시며 눈물을 흘리시더라구요. 배움은 낮지만 체면을 버리고 아들의 목숨을 선택했던 거죠. 동안 참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에 집중하다보니 잡념도 없어지고요, 노동을 통해서 삶아있음을 느꼈어요.

Q : 처음에 '지금을 살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의미죠?
K : 제가 지금 50대 중반입니다. 이제야 사는 것이 조금 보여요. 그래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을 살게 되더라구요. 어느날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어요. 돈을 벌기 위한 거잖아요. 그럼 그 돈은 왜 벌지요? 나를 위해서였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였죠. 그런 결론에 도달하다보니 지금의 행복을 미래로 미루지 않기로 했지요.

Q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네요.

 

과연 사는 게 무얼까? 우린 살면서 있지도 않은 정답을 꼭 찾아야만 하는 걸까? 노동을 하며 돈을 적게 버는 삶은 정말 가치가 없는 걸까? 그냥 하루하루를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쉬는 삶은 문제가 있는 걸까?

철인 헤겔과 니체를 초대해보자. 그들은 노동을 '자아실현'과 '생계유지'라는 의미로 달리 해석했다.

헤겔은 '노동은 자아실현을 위한 필수적 수단이며 해방의 도구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노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유럽 사람은 산업화 이후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았기에 자연을 희생양으로 삼아 인간이 문화를 만들었으며, 그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노동이 유일하다고 보았다. 그 노동이 바로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니체는 노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헤겔처럼 노동을 예찬(자아실현)하는 경향이 생긴 것은 노동자를 일의 노예로 만들려는 지배층의 계책이 숨어있다고 말했다. 즉 오로지 생존을 위해 이루어지는 반복적이고 단순한 노동은 인간이 꿈과 사랑 그리고 사고까지 근원적인 가치를 변질시킨다고 생각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사색 능력을 마비시켜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 상실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주장했다.

우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과 노동을 자아실현보다는 생계유지로 해석해 왔다. 즉 삶은 성실이요 근면이며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할 신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혹여 여가생활이나 여행이야기를 꺼내면 바쁜데 한가한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다만 나는 나일 뿐이다.

당신은 직업과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생계유지인가 아니면 자아실현의 방편인가.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K씨는 왜 공부를 했는가? K씨는 왜 노동을 하는가? K씨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삶은 천박하지 않고 고귀한 것이다. 삶을 학대하고 천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지도 않은 A플러스와 F플러스의 인생을 머리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다만 오늘을 살자. 지금을 내 생애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자. 오늘도 자신을 사랑하는 멋진 삶을 살길 바란다. 일이여! 그대는 나의 숨결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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