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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화정면 낭도 상산봉수대

  • 입력 2013.10.11 07:40
  • 기자명 yosu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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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화정면 낭도 상산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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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는 밤에는 횃불과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전달 체계에 의해 차례로 중앙에 전하던 군사통신 수단으로서, 1894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화가 들어와 봉수제가 폐지되기 이전까지 통신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봉수의 종류로는 봉수노선에 따라 직봉과 간봉으로 크게 나누고, 지리적 위치에 따라 경봉수, 내지봉수, 연변봉수로 구분되며, 조선 후기에 군사적으로 중요하였던 본읍.본진으로만 연락하였던 권설봉수가 있다.

봉수의 노선인 5거제는 조선 전기부터 성립되었으며, 전국의 모든 봉수는 5개의 노선을 따라 경봉수인 서울의 목멱산(남산)봉수로 최종 집결하게 하였다.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수마을 뒷산인 봉화산 정상의 돌산봉수대는 제5노선의 시작 봉수대로서 고흥 등 남해안과 전라북도 서해안을 따라 충청도 내륙지방을 거쳐서 강화도의 여러 봉수를 경유한 다음 최종 경봉수인 서울 목멱산 제5봉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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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답사한 낭도 상산봉수대는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해발 280.2m의 상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봉수대는 윈통형으로 자연돌을 이용하여 벽돌을 쌓듯 반듯하게 모를 맞추어 정교하게 축조 되었으며, 봉수대 상부로 오르는 오름길이 오른편에서 시작된 나선형으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봉수대라고 볼 수 있다.

세종지리지 등의 고문헌에 직봉인 돌산봉수와 백야곶봉수(여수시 화양면 장등 봉화산) 장흥 팔전산봉수의 기록으로 보아 낭도 상산봉수대는 백야곶봉수와 장흥 팔전산봉수의 연결을 위한 간봉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임란기록 등에 인근 사도와 추도 인근에서 이순신장군이 장수들과 상봉하고 전략을 논의했던 장소로 자주 이용했던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봉수대였음이 틀림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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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지난 여름, 오랫만에 낭도를 찾아 봉수대 답사를 왔었는데 봉수대로 가는 산길이 가시덤불로 덮혀 있어 아쉽게도 더 이상 산을 오르지 못하고 그만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을 주민들이 가시덤불로 막혀버렀던 산길과 봉수대 주변을 산뜻하게 정리하여 놓아 별 무리 없이 봉수대가 위치한 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 뒷산 정상에 위치한 봉수대가 자치단체에서 관리 안하여도 마땅히 주민들이 지키고 보존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임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하여 봉수대답사가로서 주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지역에는 오늘 답사한 낭도 상산봉수대를 비롯하여 앞에서 거론하였던 돌산봉수대와 백야곶봉수대 외에도 우리 주변의 산 봉우리 마다에 많은 봉수대를 가지고 있다. 봉수대는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속에서 백성들의 안녕과 통신의 역할을 담당했던 중요한 통신문화유적으로서 분명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지역에 존재하는 많은 봉수대의 실체들이 통신문화유적으로서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아져 오랫동안 관리.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민기자 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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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조선시대의 연변봉수, 김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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