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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탐구와 의심으로 삶을 다시 해석하자

의심의 도끼로 삶을 조각하라

  • 입력 2022.05.25 10:44
  • 수정 2022.05.25 10:51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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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와 의심의 도끼로 삶을 조각하자.
▲탐구와 의심의 도끼로 삶을 조각하자.

탐구하라, 의심하라, 입증하라, 바꾸어라.

이 단어에는 다른 생각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진리나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사실이나 진리를 생각 없이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혹, 영국 왕립 학회의 신조를 아는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그대로 믿지 말라.’이다.

탐구와 의심, 바꿈은 삶과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이다. 신 중심의 세상을 주창했던 중세 시대에 유럽인은 종교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런 시대에도 탐구와 의심의 끝판왕을 보였던 마르틴 루터나 코페르니쿠스가 있었다. 그리고 종교개혁 후 이성주의가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 유럽인의 삶의 양식에 질문을 던졌던 프리드리히 니체 또한 역발상의 끝판왕으로 이름을 올렸다.

‘예’만이 통용되었던 시대에 죽음을 무릅쓰고 ‘아니오’를 말했던 그들에게 엉뚱이, 새롬이, 꿈튼이라고 이름을 붙어주면 어떨까?.

그 당시 종교에 딴지를 걸거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뜻했다. 일명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화형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르틴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여 교황과 신부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였으며, 성경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신념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루터가 주장한 95개 조항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면죄부 판매였다. 교황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강조하였으며 그는 교황의 권위와 면죄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 교리를 회복하자는 의식뿐만 아니라, 이 교리에 맞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회복하자는 운동을 이끌어, 잘못된 교리를 성경에 맞춰 올바로 해석하자는 입바른 말을 서슴없이 했다.

▲더 큰 변화를 위하여 아픔을 사랑하라.
▲더 큰 변화를 위하여 아픔을 사랑하라.

중세에 반기를 들었던 또 한 명의 거인은 바로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였다. 그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펴내며 천체를 관측한 내용을 바탕으로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을 주장하였다.

중세는 모든 것이 신 중심으로 해석되었기에 신을 거부하는 어떤 말과 행동도 이적행위로 간주하여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신이 모든 만물을 창조했기에 인간이 사는 지구가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며 수많은 천체는 지구의 부속물쯤으로 생각하였다.

당시 교회는 신이 창조한 우주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가르쳤다. 코페니르쿠스의 주장,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은 종교에 대한 반항이요 중세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는 종교적 탄압을 불러올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으니 그를 어찌 꿈튼이라고 부르지 않으리오.

중세를 지나 이성주의가 활발했던 근세의 마당에서 홀연 니체라는 철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또 한 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선언으로 서구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그들이 ‘옳다’라고 믿었던 신념 체계, 도덕 체계, 초월적 가치관 등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던 사고체계를 무너뜨린 큰 사건이었다.

니체는 신을 기독교의 신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서구인의 정신을 지배했던 사상과 문화, 형이상학적 신념과 초월적 가치 일체를 지칭했다. 그동안의 서구 철학과 전통을 지배해온 생각과 가치를 버리고 거기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그는 신에게 죽음을 선고하면서 사람에게 삶의 지침을 주었으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그는 허무주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현실주의를 그려냈으며 사람에게 이 지구의 참 주인이 되어 지금을 즐기며 노래하라는 ‘아모르 파티(운명을 사랑하라)’를 주문하였다.

또한 힘든 현실과 맞서기 위해서 강한 의지와 자아를 가져야 한다는 ‘위버멘쉬(초인)’를 강조했으며, 다시 태어나도 같은 삶이 그대로 반복될 것이니 항상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영원회귀’까지 부르짖었다.

변화를 바라는가? 의심하고 탐구하라.
변화를 바라는가? 의심하고 탐구하라.

세 명의 사상가는 이전의 삶을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해 탐구와 의심이라는 생각의 도구를 긴요하게 사용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자유로움과 인간다움의 가치를 깨우쳐 주었다. 특히 인간중심의 근대와 다양성이 꿈틀거리는 현대를 선물하였다.

‘탐구하라, 의심하라, 입증하라, 바꾸어라’ 이 단어에는 주어진 삶에 대하여 자각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진리나 사실에 질문하고 또 반문하라는 것이다.

우린 일반적으로 사실이나 진리를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되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며 특수적인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표출해야 한다.

다시 한번 영국 왕립 학회의 모토를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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