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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당신의 권력거리지수는 얼마인가?

혹 당신은 윗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가

  • 입력 2022.06.10 10:25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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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와 꽃은 권력거리지수가 아주 낮다.
▲ 나비와 꽃은 권력거리지수가 아주 낮다.

당신은 혹 윗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가? 우리나라 사람은 보편적으로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왜 그럴까. 네델란드 조직 인류학자인 호프스테디는 이것을 권력거리지수(Power Distance Index)로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권력거리지수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말을 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 강도, 부담감 정도를 의미한다. 즉 권력거리지수가 높은 사람은 윗사람에게 무언가를 편하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권력거리지수는 OECD 국가들 중 네 번째로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그만큼 상사나 나이 든 사람에게 쉽게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조직에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할 때 구성원 간에 소통을 권장하기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을 더 인정하며 경쟁을 유도하는 게 현실이다.

2002년 월드컵을 돌아보자. 그때 우리나라 축구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8강도 아닌 바로 4강에 진입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히딩크 감독의 선수를 대하는 태도에서 찾고 싶다. 그는 이기는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 간에 위계질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든 선수가 공을 찰 때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처럼 편하게 공을 달라고 가르쳤다.

우리 문화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다. 우리는 지시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이른바 시키면 시킨 대로 하고, 죽으라면 죽은 시늉까지 해야 하는 일상이다. 혹여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면 적으로 몰리거나 몰매를 맡기도 한다. 모난 돌이 정 맡는다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이런 문화에서 히팅크 감독은 선수 간의 위계질서에 깨기 위하여 서로 간에 존칭을 생략하고 이름을 부르게 했다.

형, 동생이 아닌 동료이며 친구라는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경기장에서 상대에게 부담 없이 공을 요구하고,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쉽게 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히딩크의 마법은 결국 선수 간의 친밀감을 높였고 마침내 월드컵 4강 입성이라는 발자취를 남겼다.

▲ 당신은 윗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나요?
▲ 당신은 윗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나요?

한편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의 완곡 화법에 주목하며 비행기 추락에 관한 진실을 말한 적이 있다. 권위와 복종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화법으로는 정확성 및 신속성을 요구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대처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완곡 화법은 상대에 대한 겸양의 마음을 드러내고 세련되고 은근한 멋도 있지만 위급한 상황이나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에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항공기 조종실에는 기장과 부기장이 함께 탑승한다. 그 공간은 계급사회처럼 위계질서가 확실하기에 부기장은 기장에게 격식에 맞춰 말과 행동을 해야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 능력이 비효율적이다는 것이다. 즉 부기장은 기장에게 완곡화법으로 말을 해야 하기에 위급상황 시 기장에게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공기 착륙 시에 갑자기 폭우나 강풍을 만나 하강할 수 없을 때 부기장은 기장에서 빨리 스위치를 위로 올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조차도 ‘망설이다가, 기장님 스위치를 위로 올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한다. 순간 빠른 판단과 대처가 승객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위계질서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항공기 사고율이 높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사회도 권력거리지수를 낮추는 운동을 해야한다.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필요한 예절을 가르치되 말과 행동을 자신 있게 표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소수의 영웅만 받드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소통하며 다수의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혹 당신은 윗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가? 겸손과 겸양이 미덕이라는 공동체 문화에 익숙해져 자신만의 의견과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

Z세대의 용어 중 ‘누구(Who)와 친구가 되다(Friend)’는 ‘후랜드’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상대의 신상을 묻지 않고 격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즉 나이, 성별, 국적 등을 캐묻지 않기에 다양한 만남도 가능하고 친구 맺기도 쉽다.

▲ Z세대의 용어 중 ‘누구(Who)와 친구가 되다(Friend)’는 ‘후랜드’라는 말을 아는가?
▲ Z세대의 용어 중 ‘누구(Who)와 친구가 되다(Friend)’는 ‘후랜드’라는 말을 아는가?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나 자신을 극도로 낮추는 완곡 화법을 지양해야 한다. 우리 ‘다만추(다양한 만남을 갖는다)’하는 문화를 만들어 각자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대화의 즐거움까지 만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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