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미영 시인, 첫 시집 '북에 새기다' 발간

남도 시인의 독특한 내면 풍경과 서사 담아
무등한 세상을 꿈꾸는 해원의 시편들

  • 입력 2022.11.22 12:44
  • 기자명 곽준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성미영 시인
▲ 성미영 시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작가회의 여수지부에서 시 창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성미영 시인이 그의 첫 번째 시집을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017년 작가로 등단 이래 6년 만에 시와 에세이를 통해 출간된 성미영의 시의 첫 번째 시집 ‘북에 새기다’는 작가가 살고있는 남도의 독특한 내면 풍경과 서사가 풍성하고 다양한 변주를 담아 내고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 지역과 역사에 깃든 정신의 터를 다지고 있는데 특히 판소리와 민요를 하는 시인만의 독특한 율격 구조가 반영되어 시를 따라가는 재미가 더해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선열은 해설에서 단언하듯 "성미영 시인의 시집 속에는 한을 풀어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이 있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집의 제1부에서는 시 한 편 한 편이 마치 어류도감을 읽는 것과 같은 서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들은 여수 바닷가에서 잡히는 각종 어패류를 통해서 바닷가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조명하고 있다.

제2부의 시들은 과거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에둘러 살펴보면서 민중들의 삶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를 세심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현재의 시국 문제로부터 과거의 여순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중들이 겪었던 삶의 애환을 풀어내는데 그야말로 한 판 굿을 펼치고 있다.

제3부의 시들은 주로 여수 지역의 장소성에 깃든 삶의 한을 서술하고 있다. 장소를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그곳에 스며 있는 아픔들과 공감하고 있다.

▲ 성미영 시집, 북에 새기다
▲ 성미영 시집, 북에 새기다

시인의 작은 몸집에 너무도 많은 한들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숙연하게 읽힌다.

제4부는 시인의 주변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실 담담함의 이면에는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낸 아픔이 있다.

자신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타자의 한을 풀어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시를 측은한 마음으로 대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갯벌에 나가 사투를 벌였습니다/허벅지까지 빠져 들어가 뻘을 뒤집어쓰고/커다란 낙지가 되어/어스름 저녁 빛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버팅기며 달라붙는 낙지 빨판 같은,/한 발을 빼면 다른 발이 빠져드는 질척이는 생/결국,/어미 뻘낙지 온몸을 풀어 새끼들 몸으로 돌아갑니다/나는 어머니를 먹고 자란 뻘낙지//퍼덕거리는 여자만으로 하루가 빨려듭니다/한 다리로 서서 바다를 견디는 새처럼/삶을 견디는 일이 쓸쓸해질 때/복천마을 바닷가로 갑니다

「뻘낙지」 전문

성미영 시인의 시에서 지역은 바다라는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 가족과 이웃이라는 보편적 삶을 소환하고 있다.

이 시는 갯벌에서 낙지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어머니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갯벌은 삶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사투를 벌여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 발을 빼면 또 다른 발이 빠지고 마는 고통과 고난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삶은 말 그대로 갯벌 위의 삶과도 같은 것이었다.

낙지를 잡아 온 어머니는 어미 뻘낙지가 되어서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화자는 이 시에서 어머니의 삶을 여자만 바닷가, 복천마을 바닷가로부터 소환하고 있다.

그에게서 바다는 어머니의 신산했던 삶을 떠올리며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성찰의 공간이기도 하다.

게딱지 같은 인생이라 말하지 마라 생각이 굳어질 때마다 허물처럼 벗어던지며 탱글탱글 다져온 속아지를 아느냐 옆으로 슬슬 피해 다닌다고 비겁하다 말하지 마라 힘없는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퇴로가 필요할 뿐이다 앞보다는 등을 조심해야 하고 부딪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일 때도 있는 법, 무턱대고 핏대 곧추세운다고 가소롭다 하지 마라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놓지 않는 끈질긴 투지를 아느냐 결정적인 순간엔 몸의 일부를 버리고라도 생을 구하는 용기, 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이더냐 야박하고 치사한 세상을 향해 거품 물고 달려드는 붉은 성정이 잇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니랴 누군가를 위해 내어줄 달달한 사랑 가꾸고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테고

─「꽃게와 마주하고」 부분

이 시는 남도의 가락이 흠씬 묻어 있는 사설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소리꾼으로도 알려는 그는 판소리의 사설을 끌어와서 갯벌의 삶을 진탕하게 풀어놓고 있다.

들고 나는 삶을 살았지만 갯벌은 그 굴곡진 삶을 더욱 단단하게 여미고 있다.

이 시에서는 세월의 더께를 견디면서 억만년을 살아온 따개비들과 같이 어두운 개펄과 모래톱을 헤집으면서 끈질기게 살아온 민중의 삶이 꽃게의 삶에 투영되고 있다.

인적 끊긴 늦은 밤 벅수골 입구에 서 있는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 두 벅수 사이에 금줄을 치고 치성을 드리고자, 궂은 데 가지 않고 궂은 것 먹지 않고 제수 값 깎지 않고 바깥출입 삼가고 주변 소지 깨끗이 하고 목욕재계 정갈히 하고 향불 촛불 피워놓고 진설을 마치나니

─「비손」 부분

비손은 순우리말로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행위를 말한다.

발원문이나 축수문이라는 한자어와 같은 뜻이지만 우리말 비손을 제목으로 삼았다.순우리말이 갖는 의미와 더불어 이 시는 시인의 기원을 담은 한바탕 사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시인의 시 중에서도 특이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의 특징은 우선 남도의 가락이 물씬 풍기는 율격도 율격이지만, 여수에서만 볼 수 있는 벅수를 끌어와서 한바탕 해원의 굿 사설을 펼쳐놓는다 데 있다.

길 가던 자 누구든 하마비 앞에 경의를 표하라/사당 입구부터 걸음 걸음 경외심 깃들어/뜰에 돋은 작은 풀 한 포기에도 눈길 깊어집니다//지키고자 하는 의지, 살아 있는 것만 가진 것은 아니어서/땅의 정기 말이 되어 적이 오는 길목 막았다는 마래산(馬來山)/중턱에 공(公)이 자주 마시던 석천수(石泉水) 한 모금/모시듯 마십니다

─「충민사(忠愍祠) 풍소(風騷)」 부분

위의 시처럼 이순신과 관련한 시편들은 「쇠철마을 이야기」, 「다시 그곳에서」와 같이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도 있지만, 「영웅(베토벤 교향곡 N.3 에로이카)」과 같이 한 편의 서사 구조로 서술된 작품도 있다.

특히 「영웅(베토벤 교향곡 N.3 에로이카)」은 각 장의 선율을 서술로 꾸미는 방식이 돋보인다.

베토벤의 「영웅」은 제목 그대로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선율로 담아낸 곡이다.

보통 신화에서 영웅의 일대기를 서술할 때는 비범한 출생, 고뇌, 실패, 그리고 성공으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독특한 서술 방식 때문에 여수 지역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의 정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성미영 시인의 시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든지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시들이 높이를 지향하지 않고 넓이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인의 시가 다양한 서술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도 넓이의 사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의 시는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끝없이 고민하고 있다.

시인은 바닷가의 삶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하지 않고, 그 아래 스며 있는 고통의 삶을 끌어내고 있다. 이런 관점으로 시인은 여수 지역 곳곳에 스며 있는 한을 소환하고 있다.

세상 어디인들 한의 장소가 아닌 곳이 있겠는가마는 시인이 바라보는 여수는 더욱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시인은 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자청하고 나섰다. 시인의 시편 곳곳에는 한을 풀어내는 사설 한마당을 열어젖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한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굿거리와 같은 한마당이다.

복효근 시인은 성미영 시인의 이번 작품을 놓고 "시인의 시적 상상력 저변엔 삶과 생명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검질긴 희망이 깔려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극도의 불안 속에 죽음의 공포를 자주 경험했던 시인은 “생의 모든 찰나가 꽃이라는 것을” 체득한다. 그렇게 도달한 생명 인식은 자신을 포함하여 뭇 생명과 역사로 확대된다.

이어 "성미영 시인의 시는 생을 짓누르는 모든 억압 기제를 거부한다. 소외되고 부당하게 죽어간 약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 노래가 그의 시다"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필연적으로 시인은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에 맞서 살맛나는 세상을 외치다 스러져간 제주의 4·3과 여순사건, 1980년 광주의 아픔에 마음이 머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어둠의 능선을 넘다 스러져간 이들”을 위한 해원의 진혼가이며 “비손”이기도 하다.

“왼쪽으로 눈이 쏠렸다는 이유”로 역사의 제물이 된 시대의 아픔을 넘어 그는 “어떤 방향도 바른 가치가 될 수 있다는,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를 향한 갈망이며 “무등한 세상에 대한 꿈”이기도 하다. 그 꿈이 “끊임없이 떼를 이어가는 정신”으로 끝내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한 마리 새조개에서도 희망의 파랑새를 본다.

따라서 시인은 역사의 “하천이 구불구불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고 수용해 “굴곡진 생을 견디는 향기”를 시에 새겨넣는다. 그러한 역동적 상상력으로 우리를 다시 꿈꾸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인의 시 세계가 빛나는 것은 그러한 주제들을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찾아낸 시적 발상과 굳건한 형상화 위에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며 평하고 있다.

박혜연 시인은 "시는 시인 마음 안 가장 어둡고, 힘들고, 큰 상처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 면서 사회적 일이든 개인적 일이든 마음 안에 눌러둔 상처를 발굴하고 생성해내어 시어라는 날개를 입히는 작업은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면서 이 생을 지극한 사랑으로 포용하는 애틋한 몸짓이 아닐까 싶다.

여기 “소원은 늘 깎아지는 절벽에서/일어나는 것”이라며, 상처받은 이가 어떻게 아름다이 제 생을 보듬고 일어서는가를 보여주는 성미영 시인이 있다.

화사한 봄날 같은 성격으로 주변을 빛나게 하는 시인이 들려주는 개인적, 사회적 아픔은 시어라는 날개를 달고 생생한 생명으로 도약하고 있다. 우리는 시집을 읽는 내내 그 생명의 도약에 함께 즐거이 동참하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이번 첫 번째 시집 ‘북에 새기다’를 펴낸 성미영 시인은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모두의 것인 별, 바다, 꽃을 사랑하듯 세상에 일어나는 작은 일도나의 일처럼 분노하고 슬퍼하고 때로 기뻐하며 그대에게 이르기 위한 징검다리 몇 조심스레 놓아본다. 면서 그대를 향해 가는 길이 나를 다스리고 치유하는 구도의 길, 끊임없이 나아가겠다"며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길을 전했다.

성미영 시인은 완도 출생으로 전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17년 ‘작가’로 등단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