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이순신광장에 세워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에서 예를 다하는 시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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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XXX들"
지난 25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여수앞바다를 굽어 내려다보는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며 조선수군을 지휘한 곳이다.
학교가 파한 밤 8시, 가방을 멘 고등학생 한 명이 엄숙한 모습으로 분향소에 절을 하고 나서 노란 리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생이 써 내려간 글은 정부를 향한 육두문자였다. 기사에 그대로 옮겨 쓸 수 없어 사진을 찍고 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심각한 얼굴을 한 학생의 대답이다.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분향소에 절을 하고 나온 고등학생이 단호한 얼굴로 쓴 노란리본. "정부 xxx들"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육두 문자라 모자이크 처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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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기원문이 적힌 솟대받침과 노란리본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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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학생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니 단호함까지 배어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을 안내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리본을 달기 위해 멀어져가는 학생을 보고 나한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방과후 시간에 고등학생들에게 강좌를 하는 분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학생을 보니 오늘 수업시간에 어느 여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2학년이라며 ‘2017년 저는 유권자가 됩니다.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2017년 투표할 때 똑바로 투표하겠습니다‘하고 말했어요."
무사생환을 희망하는 솟대에 쓰는 기원문
28일은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을 안내하는 날이다. 환경연합에서는 거북선축제(5월 3일~5월 6일)에 사용하려고 준비한 희망솟대 받침판을 가지고 와 시민들에게 글을 쓰도록 부탁했다. 거북선축제는 취소됐다. 환경연합 담당자의 말이다.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일행이 분향소에서 예를 다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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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담당자 말을 듣고 식당 주인 김상문씨를 만나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저도 자식 키우는데 마음 아프죠. 식당을 운영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고생하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는 겁니다. 세월호요? 뭐! 말이 필요 없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밤 9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여수석천사 주지인 진옥 스님과 일행 3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아 예를 올리고 리본과 솟대받침에 기원문을 쓴다.
"돌아가신 이는 왕생극락을, 구출되지 못한 분들은 빨리 구출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이 솟대받침에 기원문을 쓰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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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로터리 중앙에 늠름하게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본다. 울고 있었다. 빗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눈물이다. 거북선을 선두에 세운 채 바다를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은 뭐라고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