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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 칼럼/차성수] 설서당(薛誓幢) 과 주철현

  • 입력 2014.07.24 09:36
  • 수정 2014.08.04 09:01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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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 여수시장이 1일 오전 여수시민회관에서 열린 민선6기 출범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차성수 (전남대학교 교수)

얼마 전 구례 사성암(四聖庵)엘 다녀왔다. 한반도를 진동시켰던 네 분 고승의 수행처. 그 중에서도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족적이 뚜렷했다. 절집 높은 곳에 대사가 조각하여 남겼다는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지금도 여여했다. “모든 만병은 물렀거라! ” 일갈하며, 민중의 맘과 몸을 치유하는 법력을 떨치고 있었다. 이 원효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 1. 원효의 꿈

불교국가 신라의 대표적 승려 원효. 그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를 향해 유학을 떠난다. 어느 날 밤,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몹시도 목이 말라 그릇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켰는데, 참으로 달콤한 생명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벌어진 엄청난 반전. 그것은 바로 생명수가 아니라 해골 속에 고여 있었던 썩은 물이었고 구더기가 바글거렸다. 원효는 구역질을 해댔다. 그런데 그때 그는 홀연 깨달음을 얻는다. 똑같은 물인데, 왜 어제는 생명수였고, 오늘은 썩은 물인가? 그는 이 깨달음을 환희에 가득차서 시로 읊었다.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卽 種種法生) : 마음속에 생각 하나 일어나니 분별심 생겨나고,

심멸즉 종종법멸(心滅卽 種種法滅) : 그 생각 없어지니 분별심 사라져 온 세상이 하나이다.

모든 것을 깨달았는데 유학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그는 신라로 다시 돌아와 불교사상을 정리하여 융합을 주창한다. 나아가 불교인을 넘어 전 신라 사회의 소통과 화해, 이른바 화쟁(和諍)사상을 주도한다. 왕과 천민, 귀족과 평민, 지역과 지역, 종파와 종파가, 하나 되는 꿈을 꾼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차별하고 나누고 싸우냐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진실로 우리의 이 시대에 더욱 유효한 대사상(思想)이 아닐 수 없다.

# 2. 사랑과 야망

원효에게서 뺄 수 없는 참으로 인간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우리역사의 여유와 풍류, 멋과 해학을, 한방에 크게 솟구치게 한 러브스토리. 사나이 원효는 신라 서라벌 시내를 돌며,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허락 하겠는가?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 :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베어 만들리니.

걸물(傑物) 은 걸물을 알아보는 법. 태종 무열왕은 그의 딸 요석공주를 원효와 맺어준다. 온 신라를 진동시킨 대 사건이다. 이 얼마나 엄청난 파계인가? 허나 이 얼마나 엄청난 낭만인가? 생각하나 세우면 용서할 수 없는 대 파계인데, 그 생각하나 없애면 아름다운 인간의 큰 사랑이다. 또한 그로인해 설총(薛聰)이라는 민족사의 큰 인물을 아들로 얻었다.

또한 이것은 또 얼마나 거대한 대 융합인가! 남과 여, 성(聖)과 속(俗), 총각과 과부, 권력과 종교, 왕족과 백성. 이는 거칠 것 없는 무애(無碍)의 경지! 더욱이 입에 발린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실천한 그 모습.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이 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원효의 깊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화쟁사상이 인간적인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온 위대한 드라마인 것이다.

# 3. 원효의 시대, 우리의 시대

원효가 살았던 시대는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두고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붉은 피를 역사의 제단에 뿌려야했던 혼란기였다. 대체 무엇을 위한 피였을까? 통일에 성공한 신라인들이라고 어찌 승리감에만 기뻐할 수 있었겠는가? 자신들의 지아비와 자식들이 생떼같은 목숨을 잃었는데. 또한 백제 고구려인들은 망국인의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과연 인간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있었을까?

뒤죽박죽된 상황에 대해 원효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와 민족? 승리와 패배? 귀족과 천민? 부자와 가난뱅이? 삶과 죽음? 중생과 부처? 이런 구별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깊이깊이 고뇌했던 것이다. 모름지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이 최고의 화두이거늘!

그는 이 허망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온 몸을 던져 그 해결책을 찾는다. 확신 속에서 스스로 파계의 길을 나선 원효는 가엾은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 저자거리를 다니며, 심지어 거지의 친구가 되고 도적과 형제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처지에 스스로 서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마음 속 본성을 깨달으면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며 삶을 위로하고 살 길을 제시한다.

동시에 왕과 귀족들을 향해 진정한 부처의 자비와 상생의 깨달음을 일갈(一喝)하며, 왕궁과 귀족들의 곡간을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재물 보시(布施)를 통해 가련한 백성들에게 이익을 안겨주려 노력하면서 그들을 견책한 것이다. 원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역사상 어느 시대가 혼란스럽지 않았을까마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이시대야말로 진정 원효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이 시대에 과연 원효는 있는가? 누구인가?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기업인? 장삼이사?

# 4. 설서당(薛誓幢)과 주철현

설서당은 원효의 출가(出家) 전 이름이다. 설서당은 바로 원효이다. 자연인 설서당에서 스스로 작명하여 원효가 된 이후, 그가 평생 화두로 삼고 공부하고 실천했던 덕목은 “화쟁”이었다. 서로 다른 견해를 포용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 단순한 거래를 통한 물리적 봉합이 아니라, 일심(一心)으로 서로 통하게 되는 화학적 결합.

또한 “화쟁사상”과 더불어 삶의 여정을 통해서 보여준 그의 위대한 신념과 행적은 의미심장하다. 깊이 숙고하며 오늘에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신라시대에 있었던 에피소드로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깝고 소중한 가치이다. 그 사상과 실천의 핵심을 뽑아내어 창조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에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음을 강렬히 느낀다.

그가 주창한 덕목들은 보편성과 세계성을 지녔기에, 그 옛날 신라와 종교를 개혁하는 구심력이 되었고, 이후 고려와 조선을 통해 그 사상적 핵심가치가 백성에게 구원의 힘이 되는 원심력을 발휘하였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또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지금은 크고 작은 많은 원효가 필요한 시대임이 분명하다. 종교적 울타리를 초월하여 그의 가슴과 머리에 절절히 흐르던 깊은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원효들 말이다.

아시다시피 “주철현”은 여수시장이다. 나는 시장 당선 이후 그의 각종 인터뷰기사를 보면서, 특히 취임사를 읽으면서 원효를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왜 원효가 생각났을까? 신임시장은 그의 가슴 속에 있던 포부를 내놓았는데, 유독 “하나된 여수, 소통하는 여수”를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잘사는 여수, 문화예술의 여수, 미래지향의 여수를 선포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고 진심이라고 믿는다. 이 초심이 지속되길, 아니 더욱 강렬해지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이는 원효의 바램과 다르지 않다.

# 5. “원효” 아닌 “주철현”에 대한 기대

“설서당”이 진정 “원효”가 되었듯이, “주철현”이 진정한 “여수시장” 되기를 기원한다. 이를 위해 다시 그의 취임사를 읽으면서 다음 몇가지를 당부 드린다. 보편성과 세계성을 지녔기에 큰 위력을 발휘했던 원효의 사상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 여수에 적용해본다.

첫째, 지역토호, 탐욕스런 사업가, 부패관료, 그리고 기득권자들과 절연(絶緣)하라. 설사 선거과정에서 이들의 후원과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과감히 외면하라. 이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원효는 아들 설총이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불교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그의 성장의 요람이었던 불교를 외면하라는 것이다.

바로, 종교에 기생하여 이익과 향락을 탐하던 당시 대덕고승들을 질타한 것이다. 기득권세력과 인연을 끊고 소외된 시민을 품으라. 오히려 추상같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라. 시장은 분명히 취임사에서 밝혔다. “정의롭지 못한 구태와 기득권을 깬다.”라고.

둘째, 아래로 내려오라. 원효는 왕실과 귀족을 크게 견책(譴責)하였고, 그들과의 동지적 유대를 과감히 끊었다. 그리고 스스로 낮추어 가련한 백성들에게로 내려와 그들과 손잡았고, 이마를 맞대었고, 가슴을 나누었다. 백성들은 위대한 스승이 자기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마치 원효의 무애(無碍)행처럼, 구석구석 다니며 삶에 지친 시민들을 손잡아주고 살 길을 함께 고민해주는 시장이 있다면 얼마나 감동일까? 최소한 일주일 중 하루는 이 일로 채우기를 기대한다. 시장은 분명히 취임사에서 밝혔다. “노후가 불안하지 않고, 사회 돌봄 계층이 행복해질 수 있게 하겠다.”라고.

셋째, 인사(人事)에서 청렴을 제일덕목으로 삼으라. 진정한 능력은 자기 일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애정이 있으면 연구하게 되고 다양한 실천을 통해 그 업무의 이데아(Idea)를 끊임없이 모색 실천한다. 뇌물을 탐할 여력이 없다. 이것이 행정능력이고 행정발전이다. 탐관오리는 돈과 승진에 집중한다. 협잡이 있을 뿐이다.

반드시 승진후보자의 재산현황과 형성과정을 조사하라. 청렴한 공직자를 발탁하라. 여수에서는 이미 엄청난 사건이 있지 않았던가? 원효는 당시 귀족들의 물질탐욕을 질타하며 부당한 재물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려했다. 시장은 분명히 취임사에서 밝혔다. “시민혈세로 생활하는 공복으로서 주인인 시민들을 모시겠다.” 라고.

넷째, 문화 예술과 학문을 장려하라. 원효는 전 국토를 돌면서 기도하고 교화하며 백성들을 위로한 실천가였는데, 동시에 그는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학자 사상가 이론가였다. 그가 남긴 저서만 해도 300권에 가깝고, 이 중 “금강삼매경론”이나 “대승기신론소” “십문화쟁론” 등은 세계적인 종교적 철학적 걸작이다. 큰 학승이었다. 이런 깊이에서 높은 실천이 탄생한 것이다.

부디 여수시민 남녀노소, 특히 젊은이들의 진정한 지성 함양을 위해 고심해주기 바란다. 또한 문화예술을 통해 깊고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장은 분명히 취임사에서 밝혔다. “인재 양성,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결합, 교육이 꽃피는 여수를 만들겠다.” 라고.

마지막으로, 재선(再選)을 꿈꾸지 마시라. 이런 경구(警句)가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逢佛殺佛 逢祖殺祖)” 즉, 사람에 구애받지 말고, 사물에 구속당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야만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자재하여 초심(初心)과 양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재선? 국회의원? 도지사? 꿈꾸지 마시라.

여수시장, 얼마나 영광스런 직위인가! 단 한번 “여수시장”만을 황홀해하시라. 이야말로 참 지혜이며 아름다운 일이다. 예수는 기꺼이 십자가에 달릴 때 구세주 하나님이 되었으며, 붓다는 즐거이 왕위를 포기할 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고, 원효는 스스로 저자거리로 내려왔을 때 왕을 넘어서서 역사의 스승으로 우뚝 섰다. 진심으로 포기해야한다. 이 지혜를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글을 맺으면서, 자신의 취임사에서, “사심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시민만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 라고 고뇌하면서 마음을 고백한 주철현시장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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